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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지 May 07. 2020

끝은 또 다른 시작, 나와 친해지기

나의 시작, 나의 도전

  

 발도르프 교육과정을 적용한 학교 교육체제와 공동체적인 삶 두 가지를 접목한, 창의적이고 인성적인 특수 공동체라고 생각했던 영국 스코틀랜드에 있는 캠프힐에 가겠다는 내 도전은 오랜 시간과 노력 끝에 마침내 현실로 이루어졌다. 도착 후 처음 2주간은 그렇게 오고 싶어 했던 곳에 내가 있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에 벅찼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들로 인해서 과연 그곳에서 1년이란 시간을 모두 채우는 게 정말 의미 있고 옳은 것인지에 대한 회의감이 점점 커져만 갔다. 표면상으로 보이던 것들과 실제와의 격차에서 비롯되는 괴리감이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웠지만 딱히 누군가에게 도움을 구할 수 있거나 마땅한 해결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라 답답한 마음만 하루하루 더 깊어져 갔다.
 끊임없이 수없이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주변에서도 다들 내가 캠프힐에서 1년을 있다 올 것으로 아는데, 어렵게 거기까지 갔으면서 고작 몇 달 만에 제 발로 스스로 떠나겠다는 게 다른 사람들에겐 어떻게 비칠지 너무나도 뻔했다. 끈기나 책임감이 없어 보이는 것도 사실이었고 이런 여러 가지 이유들 때문에 내가 캠프힐을 떠나겠다고 했을 때 처음에는 부모님조차도 나를 이해하지 못하셨다. 그렇지만 나름대로 할 수 있는 만큼 노력해봤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바뀌지 않을 것들 때문에 내가 불행하고 괴로울 바에야, 내 인생을 위해서는 나 자신이 믿는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젊음과 시간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까. 쉽지 않은 결정이었던 휴학까지 하고 얻은 이 귀중한 시간을 매일같이 불행감과 무력감이랑 맞바꾸고난 1년 후 나에게 남는 건 후회라는 감정이 가장 클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젊을수록 잃을 것이 없다는 것은 큰 장점이기에 일단은 살면서 내가 해보고 싶은걸 최대한 다 해보고 싶었고 내 의지에 따라서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도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4개월 후인 2015년 1월 9일, 나는 캠프힐을 떠나게 된다.

 처음에는 떠난 후에 북유럽의 세 나라에서 각각 한 달씩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캠프힐에 있는 동안 미리 각 나라에 있는 친구들에게 부탁해 그 친구들 집에서 지내는 걸로 얘기까지 다 끝마친 상태였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정말 내가 원하던 대로 세상, 인생, 사람에 대해 제대로 배워볼 기회가 있을까? 그래서 원래와는 달리 마지막에 급히 계획을 변경했다. 계좌에 남아 있던 돈과 캠프힐에서 아껴 모은 돈을 합쳐도 고작 400만 원 정도밖에 안되지만 이 돈으로라도 유럽에서 최대한 오랫동안 떠돌아다니다가 한국으로 돌아가는 걸로. 그렇지만 하루하루가 어디에서 어떻게 흘러갈지, 또 얼마나 오랫동안 그게 가능할지는 나조차도 장담할 수 없었다. 말 그대로 운과 용기에 맡기는 수밖에.
 따뜻한 집 있고 맛있는 밥 먹을 수 있고 안정적이고 규칙적인 생활 유지하며 지낼 수 있는 캠프힐을 떠나 왜 굳이 사서 고생을 할까 싶을 정도로 시작부터 험난하기 짝이 없었다. 떠난 당일, 하필이면 버스에 탄 직후부터 갑자기 예고에도 없던 심한 태풍이 몰려온 바람에 목적지에 도착한 새벽 1시에 온갖 비바람을 맞으며 급히 눈앞에 보이는 호스텔로 들어가게 됐다. 원래는 버스 터미널에서 몇 시간 기다린 후에 내가 가려던 섬으로 가는 버스로 갈아타고 바로 떠날 참이었는데, 태풍 때문에 당분간 섬으로의 통행이 아예 금지된 바람에 괴물 네시가 있는 호수로 유명한 인버네스라는 작은 도시에 발이 묶이고 말았다. 한정적인 자금 때문에 지출이 적을수록 그만큼 더 오랫동안 있다가 돌아갈 수 있는 나로서는 이렇게 생각지 못한 상황에서의 비용이 더 큰 부담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얼떨결에 들어간 그곳 호스텔 사장님께 내 상황을 설명드리고, 일을 도울 테니 무료로 숙박할 수 있게 해 달라는 제안을 드린 것이 내 여정의 첫 시작이었다.
 
 그렇게 1월부터 시작해서 복학 준비를 위해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야 했던 8월까지 대략 7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방랑생활을 계속 이어 나갔다. 정해진 곳 없이 그냥 마음 내키는 대로 이리저리 떠돌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유럽이라는 대륙 전체가 내게 작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2년 전 처음 혼자 유럽에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역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생활방식들을 경험하고 놀라운 일들을 보고 겪으며 깨닫고 배운 것들이 많았는데 그때와 다른 점은 이번엔 타인뿐만이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도 많았다는 것. 그때보다도 시간적 여유가 넉넉한 만큼 전처럼 시간에 쫓기거나 조급해하지 않고 이번에는 나라는 사람을 제대로 깊이 들여다볼 여유도 생겼다. 그동안 학업, 학과 생활, 아르바이트, 놀러 다니기 등등으로 바쁘다는 이유로 나 스스로를 돌아볼 기회가 거의 없었던 것 같았다. 20년도 넘게 김민지라는 사람으로 살아오면서 나 자신은 내가 제일 잘 안다고 자부해왔으면서도 정말 그런가 싶은 의문이 드는 때도 있었다. 그런데 이 7개월의 시간은 내가 나와 진심으로 마주하고 허물없이 더 가까워질 수 있는 소중한 바탕이 되어주었다는 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마음에 와닿는다. 연애든 인간관계든 일이든 모든 것의 시작은 나를 먼저 제대로 잘 아는 것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지금은 잘 안다.
 어차피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정해진 답은 없다.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매일같이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야만 했던 그 7개월 동안에도, 그리고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지금에도. 하지만 캠프힐에서의 경험과 방랑생활 이후로 나는 더 이상 다른 사람의 시선을 두려워하거나 의식하지 않고 내 마음이 진정으로 바라고 이끄는 걸 따라갈 줄 알게 되었다. 이제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바라고 원하는지, 어떤 생각과 가치관을 추구하는지에 대해 누구보다도 제일 잘 알게 되었으니까.
 캠프힐에서의 끝이 있었기 때문에 유럽에서의 방랑이라는 시작이 있을 수 있었다. 시작과 끝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 중요한 건 그 두 가지 모두 너무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시작에는 끝이 있지만 또 끝이 있어야 또 다른 시작이 있다. 인생에 찾아오는 수많은 도전들의 시작이 마냥 아름답고 설레기만 한 것은 아닐지라도 어쨌든 ‘내’가 내 의지로 결정했다는 점에서 도전이라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멋지고 빛나는 것 같다. 또 다른 내 도전의 시작이 되어주었던 캠프힐도, 그리고 끝이자 또 하나의 시작이 되어주었던 유럽 방랑생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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