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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지 May 23. 2020

인덕션과 내방

 2018년 11월 21일, 내 생일 딱 하루 지난 그날 아침 8시 반에 드디어 탕갈루마 리조트에 도착했다. 지난번에는 면접을 보러 왔지만 이제는 정식 직원으로. 사실 면접을 본 게 15일이니까 불과 일주일도 채 안돼서 다시 온건 데도 도착하고 나서도 내가 여기 있다는 게 믿기지가 않아서 시간에 대한 감각조차 잊은 듯했다.

 지난번 면접 보러 왔을 때는 팀 덕분에 혼자 있을 겨를도 없었지만 이번에는 선착장에부터 섬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도 내게 말을 걸거나 먼저 다가오는 사람이 없었다. 바람과 파도가 세서 섬으로 가는 길 내내 배가 이리저리 요동쳤는데 몇몇 관광객들은 멀미가 난다고 난리인 와중에 내 바로 뒷자리에 앉은 두 명의 호주 십 대 소녀들은 배가 흔들릴 때마다 쉴 새 없이 꺄르륵 웃어서 나까지 덩달아 터져 나오는 웃음을 주체하지 못했다.

 면접을 보러 가기 위한 배편은 왕복인데도 무료였지만 이번에는 편도 티켓 직원가로 $15를 지불해야 한다는 게 충격이었다. 섬에 살아야 하니까 당연히 육지로 왔다 갔다 하는 게 직원들에겐 무료로 제공되는 혜택일 거라고 생각했던 게 오산이었다. 직원 숙소도 물론 렌트비는 지불하더라도 꽤 저렴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은 건 좀 아쉬운 부분.

 어쨌든 이메일에 안내되어 있던 대로 배에서 내리자마자 리셉션으로 찾아가 방금 막 새로 온 직원 누구라고 했더니 저 옆에 보이는 인사팀 직원 마이클을 따라가란다. 마이클과 나를 제외하고 이번 주에 새로 온 신입 직원이 여섯 명 더 있었다. 알고 보니 매주 수요일이 인덕션이 있는 날이란다.

 리셉션이 있는 본관 옆에 있는 카트리나 홀이라는 곳에서 인덕션이 진행되었다. 한국에서는 오리엔테이션, 줄여서 오티라는 말이 더 익숙했는데 이곳에선 인덕션으로 소개된다는 걸 처음 알았다.
 탕갈루마 리조트에 대한 소개, 급여와 복지에 대한 안내, 이곳에서 일하고 생활하는 동안 지켜야 할 규율과 지키지 못했을 때의 처벌 안내 등등 직원으로서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전반적인 사항들에 대해 마이클이 먼저 우리에게 구두로 전달하고, 우리들은 그와 관련된 문서마다 각자 서명을 해서 하나는 개인이 보관, 다른 하나는 마이클에게 건네야 했다.
 안내사항이 너무 많아서 당연히 한꺼번에 기억을 할 수도 없지만 내 평일 기준 급여는 시간당 $23.20라는 것은 확실하게 기억했다. 호주에서의 첫 직장이고 호주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사실 일과 관련해서는 아무런 개념이나 상식이 잡히지 않을 때라 그냥 그렇구나 싶었다.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에 우리끼리 다 같이 통성명을 나눴다. 호주인 3명과 뉴질랜드인 1명, 대만인 한 커플, 그리고 한국인인 나. 부서는 각자 달랐다. 대만인 커플은 예전에 탕갈루마에서 일을 했다가 세컨 비자를 따고 나서 다시 돌아온 거라는데 역시 예전에 일해봤어서인지 한눈에 봐도 여유가 넘쳐 보였다.
 나머지 친구들은 모두 나처럼 새로 왔는데 그중에 무려 3명은 이미 이곳에서 일하고 있는 남자 친구, 여자 친구, 친누나를 따라서 왔단다. 뒤늦게서야 안 사실이지만 여기는 인맥을 통해서 들어오는 경우도 빈번했다. 이후에도 여기뿐만이 아니라 호주에서 많은 곳들이 인맥과 지연을 통해 일자리가 알선되는 것을 보고 들었는데 내가 지나치게 정직하게 들어와서 그런지 약간 억울한 마음도 안 들진 않지만 호주 친구들에게 물어봐도 이런 일은 꽤 흔하단다.

 점심을 먹고 나서는 마이클을 따라 다 같이 리조트 투어를 돌고 자기 부서 사무실에 들러서 매니저님들께 인사를 드리고 내 유니폼을 받고 그렇게 오후 2시쯤 인덕션이 마무리되었다. 본격적으로 자기 로스터에 맞게 일을 시작하는 것은 그다음 날부터라 이날 하루는 온전히 내 자유였다.

 리조트 본관 건물 바로 뒤편으로 다양한 형태의 직원 숙소들이 퍼져 있는데 내 방이 있는 건물은 High Rise 1 건물의 2층에 위치한 10번 방이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숫자 중 하나가 10이라 방 키를 받자마자 기분이 좋았는데 방문을 열어보고 나서는 저절로 탄성까지 나왔다. 비록 화장실만 딸려있는 방 한 칸이지만 나 혼자 지내기엔 넉넉하고 무엇보다도 침대 옆쪽에 나있는 창문으로 바로 보이는 바다와 야자수 풍경이 그림 같아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좋았다. 심지어 화장실 변기 위로 난 창문으로도 야자수와 파란 하늘이 보인다. 화장실 주제에 이런 뷰라니. 침대 위에 가지런히 접힌 수건 위에 놓인 MINJI라고 적힌 명찰도 눈에 띄었다. 그걸 보니 그제야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이건 꿈이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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