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씨 좋은 형 Niko와 그의 친구들
성수기에는 유럽 여행객이 워낙 몰리기 때문에 런던이나 파리같은 유명한 관광도시에서 카우치서핑을 하기가 쉽지 않다. 대부분의 여행지에서도 거절을 많이 당했지만 그런 큰 도시에는 인구가 많아 계속 도전을 해볼 수 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내가 빈을 떠나기 전날까지 나는 잘츠부르크에서 카우치 호스트를 구하지 못했다. 잘츠부르크는 규모가 작고 인구도 적지만 아름다운 도시이고 클래식 축제로는 세계적으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잘츠부르크의 거의 모든 호스트에게 요청을 보냈는데 실패했다. 위기가 온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떠오른 방법이, 잘츠부르크 근처 도시에서 카우치 호스트를 구해보는 것이었다. 당장 내일 아침 빈을 떠나야하니, 근처의 3개 도시의 모든 카우치 호스트에게 요청을 보냈다. (‘모든’이라고 적긴 했지만 수는 얼마 안 되었다. 큰 도시가 아니기에 카우치서퍼의 수도 매우 적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나를 재워줬던 세자르와 작별 인사를 하고 무작정 빈을 떠났다.
잘츠부르크에 도착한 나는 늘 하던 대로 와이파이를 이용할 수 있는 곳을 찾아 노트북을 켜고 카우치서핑을 확인했다. 다행히도 나의 요청을 수락한 호스트가 둘이나 있었다. 그렇게 나는 잘츠부르크에서 묵을 곳을 성공했던 것이다. 나를 수락한 사람은 둘이었는데 한 명은 8/2-8/5, 한 명은 8/5-8/8 일정으로 나를 재워줄 수 있다고 했다. 이런 작은 도시에 내가 일주일이나 머무른 이유는 8월 4일, 6일, 7일에 예매한 공연이 있기 때문이었다. 카우치서핑의 특성상, 한 호스트의 집에서 일주일 이상 머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린 처음 만나는 사이다!!) 애초에 일주일 이상 머무는 것을 수락할 호스트도 없겠지만. 그런 이유로 일주일을 나누어서 3박 4일로 호스트를 찾은 것이다. (참조 - 심화 예제 - 위성도시에서의 카우치서핑)
8/2-8/5 일정으로 나를 재워줄 사람은 니코(Niko)라는 오스트리아인이었다. 나보다 한 살 많았고 시원스런 인상의 청년이었다. 그의 플렛메이트(flatmate)중 방학이라 집으로 돌아간 사람이 있어서 빈 방이 생겼고 내게 그 방을 쓰게 해줄 수 있다고 했다. 마침 니코는 친구 엘케(Elke)와 나름의 오스트리아 전통 음식인 시금치가 든 스투르들(Sturdel)을 요리하고 있었다.
나는 옆에 앉아 구경하며 어색함을 풀기위해 지나온 여행에 대해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여행이야기는 만국공통이라 초면인데도 이야기를 풀어나가기가 쉬웠다. 어느새 익숙해진 영어도 한 몫을 했던 것 같다. 그렇게 수다를 떨다보니 요리가 완성되었고 시금치가 든 스투르들은 오스트리아 맥주와 함께 훌륭한 저녁이 되었다. 니코는 2주 후에 인도로 여행을 간다고 했다. 카우치서핑을 해보고 싶다며 눈을 반짝거렸던 것이 기억이 난다. 내일 잘츠부르크 근교 어디를 가볼지 이야기하다가 피곤함을 느껴 아침에 이야기하기로 하고 방에 돌아왔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새로운 도시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다음 날. 잠을 도저히 못잘 정도까지 잔 후에(그래봤자 아침 9시였지만) 방을 나오니 니코가 일어나 있었다. 아침을 먹자고 해서 평범한 빵과 버터 그리고 커피가 있는 유럽의 아침식사를 시작했다. 어제 나온 이야기는 두 가지였다. 산에 갈 것이냐, 호수에 갈 것이냐 였다. 나는 어딜 가든 상관이 없었지만 수영복이 없어서 산에 가는 게 어떻겠냐고 했는데 니코는 왠지 호수에서 수영하면서 놀고 싶은 눈치였다. 수영복은 니코가 빌려준다고 했으니 문제는 해결되었고 준비해서 놀러가기로 했다.
나는 딱히 준비할 것이 없어 아이폰, 방수팩 정도만 챙겨서 나왔다. 우리가 갈 곳의 이름은 볼프강호수(Wolfgangsee)였다. (see는 독일어로 호수) 이 호수는 잘츠부르크 근처에 있는데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알겠지만 자료가 별로 없다. 그만큼 우리나라 사람에게 알려지지 않은 곳이고 대중교통으로 가기가 쉽지 않다. 더군다나 내가 짐을 풀어놓고 수영하던 곳은 월세처럼 어느 정도의 비용을 내고 이용할 수 있는 곳이라 (니코의 부모님이 비용을 지불함) 관광객이 이곳에서 수영을 하며 노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겠다.
우리는 몰랐는데 니코의 부모님도 우연히 여기에 놀고 있다고 해서 현지에서 합류했다. (니코는 플렛메이트들과 살고 부모님은 따로 산다) 더욱 좋았던 것은 니코의 부모님이 2인용 카약을 가지고 오셔서 타고 놀 수 있었다는 점이다. 헤엄치고 카약타고 수건 깔고 누워서 쉬다보니 금방 시간이 갔다. 셀카는 찍을 수 없었지만 신나게 놀았으므로 아주 만족스러운 하루였던 것 같다.
오늘 저녁은 바비큐를 해먹는다고 해서 집에 오는 길에 필요한 재료를 사러 슈퍼에 들렀다. 독일어로 솰라솰라 거려서 잘 몰랐지만 니코가 엘케에게 시어머니같은 표정으로 ‘저번엔 내가 샀으니 이번엔 니가 사라.’ 뭐 이런 정도의 이야기를 한 것 같았다. 유럽에서는 더치페이가 아주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는 느낌을 또 한 번 받을 수 있었다. 바비큐라 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약간 거창하게 생각하는데 이곳에서는 그냥 그릴로 즉석에서 뭔가를 구워먹기만 하면 바비큐인 것 같다. 여튼 그렇게 닭고기와 돼지 목살, 그리고 소세지를 구웠고 호박씨오일(오스트리아 특유의 초록빛깔 오일)을 곁들인 간단한 샐러드에 찐 감자를 먹었다. 우리 나라에서도 감자를 쪄서 먹는다니까 신기해하는 눈치였다. 감자는 18세기쯤에 한국에 들어왔다고 말하며 나의 국사 지식을 뽐내기도 했다. 하하.
저녁 식사를 대충 정리하고는 모히토를 직접 만들며 술자리가 만들어졌다. Niko가 귀여운 악어 장난감을 들고 와서는 게임을 하자고 했다. 장난감 악어는 이빨이 10개가 있는데 이걸 하나씩 누르다보면 악어 입이 닫히고 그 사람이 벌칙으로 독한 술을 마시는 것이다. 처음엔 좀 킬킬거리고 가슴 졸이며 악어 이빨을 눌렀는데 이내 지루해졌다. 그래서 이 친구들에게 한국 술 게임을 몇 가지 소개해주기로 했다. 공공칠빵은 세계적인 게임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영어로 룰을 설명하느라 약간 애를 먹었지만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잘 알아들어 재밌게 놀 수 있었다. (Zero, Zero, Seven, Bo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