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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푸른솔 Oct 01. 2015

잘츠부르크에서의 카우치서핑 3

마음씨 좋은 형 Niko와 그의 친구들

다음 목적지는 뮌헨이다. 뮌헨도 워낙 유명한 도시라 카우치서핑을 하기가 쉽지가 않았다. 아직까지도 잘 곳을 구하지 못했다. 모레(8월 8일)면 떠나야 할 텐데 참 난감한 상황이다. 일단 무작정 보내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다행히도 뮌헨은 인구가 많아 신청을 보낼 사람이 많았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뮌헨 근처의 작은 도시에도 신청을 보내 놓았다. 

오늘은 한국에서 온 친구를 만나고 오페라 한 편을 보는 날이다. 일단 친구와 함께 잘츠부르크 시내를 구경하기로 했다. 작지만 아름다운 미라벨 정원, 깨알 같은 간판의 게트라이데 거리, 시내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잘츠부르크 성을 차례로 돌아다녔다. 미라벨 정원에 분수가 있었는데 새가 날아와 사람이 음수대의 물을 마시는 것처럼 분사되는 물을 마시는 것을 봤다. 참 똑똑한 새가 아닐 수 없다. 영상으로 찍었는데 보여주고 싶다. 오후에는 친구에게 인절미를 받고 쉬다가 오페라를 보고 돌아오니 밤 10시가 넘었다. 돌아다니느라 피곤하기도 했고 늦었기도 해서 그냥 잤다. 


처음 만든 인절미

늘어지게 자고 빈둥빈둥 거리다가 일어났다. 인절미가 밥거리가 될 순 없으니 점심을 먹기 전에 간단히 해먹기로 했다. 우리나라에서 인절미를 믹스를 이용해서 만들어 먹는 경우가 많을 것 같지 않다. 나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기에 약간 걱정은 되었다. 그저 ‘설명서보고 따라하면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일단 요리를 시작했다. 막상 해보니 딱히 어려운 건 없었다. 전자레인지에 돌린 떡이 너무 뜨거웠던 것 말고는. 가루를 뿌리고 알맞게 자르니 꽤나 볼만한 모양새를 갖추게 되었고 요리과정을 구경하던 니코와 친구들의 눈에서 기대가 보였다.

인절미는 완성되어 그릇에 담겼다. 나는 당연히 포크로 먹을 줄 알았는데 니코가 ‘Asian Food!’라면서 젓가락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젓가락질이 어렵지 않냐 물어보니 중국식당에서 써봐서 괜찮다고 했다. 그럼 됐지 뭐. 조그마한 인절미 믹스에 5명이 붙어서 먹다보니 금방 끝나서 맛에 대해 제대로 물어보진 못했지만 다들 입에 집어넣으면서 연일 ‘good’을 외쳤으니 괜찮았던 것 같다. 나도 오랜만에 인절미를 먹어서 좋았고. 

의외의 젓가락질 실력

인절미를 먹고 카우치서핑을 확인해보니 나의 요청은 답이 없거나 모두 거절당했다. ‘다시 위기를 맞았나...’라고 생각하려는 때에 절묘하게도 뮌헨의 카우치 호스트로부터 초대가 와있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이렇게 마음에서 지옥과 천국을 오갈 때마다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이 힘을 보태어 가는 것 같다. 이때까지도 그렇게 잘 견뎌왔으니까. 


니코에게 이제 다음 목적지인 뮌헨으로 갈 이동수단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는데 니코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해주었다. 카풀을 이용하라는 이야기였다. 독일,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널리 사용되는 홈페이지가 있는데 그걸 이용해서 뮌헨에 가면 기차 가격의 1/4, 버스가격의 1/2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약간 긴가민가하기도 하고 독일어도 잘 못하니 어렵지 않겠냐고 말하니 자기가 전화를 해서 약속을 잡아주겠다고 했다. 거절할 이유가 없어서 좋다고 했다. 그렇게 단돈 10유로에 뮌헨에 갈 수 있는 약속을 잡았다. (드라이버가 여자인 것을 알고 니코는 자기가 뮌헨으로 가면 안 되냐고 농담을 했다) 

잘츠부르크 축제(salzburg festspiele)는 세계적인 클래식 축제다.

밤에는 잘츠부르크에서의 마지막 공연인 틸 펠너 피아노 리사이틀을 보러갔다. 원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피아니스트 예프게니 키신의 리사이틀이었는데 건강상의 문제로 연주자가 바뀐 것이다. 이 사실은 우연히 이메일을 확인하다가 알았는데 하마터면 공연 당일에 알 뻔 했다. 뭐 어쩌겠나. 공연도 생각보다 괜찮았다. 


집에 돌아오면서 쿵짝쿵짝거리는 소리를 들었는데 그 음악은 바로 니코의 집에서 틀어놓은 것이었다. 대문을 열자마자 친구들이 오더니 늦게 왔다면서 도수 높은 술을 연이어 먹여댔고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거리며 깔깔거리고 있었다. 알고 보니 내가 가는 날이랍시고 니코와 플렛메이트들이 하우스 파티(파티라고 하기엔 거창하지만)를 연 것이었다. 나는 이렇게 노는 게 익숙하지는 않았지만 이것도 경험이겠거니 하면서 어울렸다. 반쯤 미친 상태로 놀았던 것 같다. 중간에 강남스타일과 젠틀맨도 틀어줬던 것이 기억이 난다. 정신없이 흔들다 보니 다들 지쳐서 집 앞의 작은 정원에 다들 쓰러져서 쉬었다. 클래식 공연을 보고 와서 이렇게 놀다니 웃기다면서 킥킥거렸던 기억이 난다. 


잘츠부르크처럼 작은 도시에도 클럽이 여러 개 있었다.

다들 자러가는 분위기였는데 니코는 2차를 제안했다. 클럽을 가자는 것이었다. 피곤해 죽을 것 같았지만 마지막 날이기도 하고 권유해준 게 고맙기도 해서 어울리기로 했다. 여자들은 모두 자러갔고 살아남은 사람은 나, 니코, 히지 3명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시내로 가잔다. 음주 운전이라니.. 뭐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따라 갔다. 이 친구들은 자전거를 평소에도 자주 타서 그런지 쌩쌩 아주 잘 갔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따라갔지만 이때까지 마신 술과 흔들다 지친 몸으로 매우 힘들었다. (적어도 5km는 되어보였다!!) 클럽에 도착하니 사람이 정말 붐볐다. 나는 이렇게 작은 도시에 이렇게 젊은 사람이 많이 모여 있을 줄 몰랐다. 한국 사람같이 생긴 사람이 있길래 말을 걸어봤더니 중국 사람이었다. 여행이냐 여기서 사느냐 같은 시덥잖은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시끄러워서 귀에다가 대고 소리를 질러야 했다. 그냥 ‘여기는 이런 곳이구나.’라고 생각하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니코와 히지가 집에 가자고 했다. 클럽을 나오니 술에 취해 여기저기 기대어 있는 젊은 사람들이 보였다. 자전거를 타고 가기엔 너무 피곤해서 택시를 타고 가기로 했고 집에 도착하자 바로 침대에서 기절했다.


드디어 떠나는 날이다. 일어나니 몸 전체 구석구석이 쑤셨다. 왜 이렇게 아픈지 처음에는 잘 몰랐는데 이내 어제 미친 듯이 놀았다는 것이 기억이 났다. 걷기는 엄청나게 걸었기 때문에 다리나 발이 아픈 경우는 있었는데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여행자인 것을 잠깐 잊은 것 같은데 앞으로는 컨디션 관리가 조금은 필요할 것 같다. 짐을 다 정리해서 가방을 메고 거실로 나오니 엘케가 인사를 해왔다. 떠나서 정말 아쉽다는 말을 주고받다가 엘케가 떠나는 기념으로 오스트리아 전통요리 카이저슈마렌(Kaiserschmarrn)를 해주겠다는 이야기를 해왔다. 나는 거절할 이유가 없으니 냉큼 감사히 먹겠다고 했다. 이내 니코도 일어나서 합류했고 요리는 점차 완성이 되어갔다. 카이저슈마렌은 잼 같은 것을 발라 먹는데 우린 사과무스를 발라 먹었다. 솔직히 말하면 별 맛은 없었고 사과무스가 더 맛있어서 아예 범벅을 해서 먹었다. 

초점이 나가서 아쉽다.

다 먹고 우연히 한글이야기가 나왔는데 한글에 대해서 설명해줬고 읽는 법을 알려주었다. 재밌는 일은 내가 니코들이 사는 건물 현관 쪽 벽에 한글로 이름을 써주게 되었다는 것이다. 적당한 위치에 매직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써내려가면서 이름을 읽어주고 복습해줬다. 글씨가 그렇게 좋진 못했지만 그들은 모를 것이고 완성해놓으니 꽤 괜찮은 작품처럼 보였다. 니코와 엘케도 좋아했다. 정말 떠나기가 아쉬웠지만 시간이 되어 쿨하게 작별인사를 하고 집을 나왔다.


1주일이나 머물러서 그런지, 걸으면서 보이는 잘츠부르크의 풍경이 정말 익숙했다. 그건 이제 다른 곳으로 떠날 시간이 되었다는 뜻이겠지.

아직도 이 글들이 적혀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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