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락사와 자살에 대하여
..그래서였을까. 옛날부터 내려오는 말에는 이런 말이 있지 않나. 자꾸 상상하고 보는 것이 결국 현실이 되기도 한다고. 그렇게 안락사에 대한 관심은 결국 남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가 되어 돌아오고 말았다.
정확히 말하면
나의 문제가 아니라 가족의 문제,
아버지의 문제이지만.
사실 한국은 안락사 문제에 대해 관대한 편은 아니다. 2018년 연명의료결정법이 통과되어 얼핏 이젠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환자가 의식이 있을 때 연명의료 거부 서약서 같은 법적 장치를 마련해놓지 않은 이상 가족이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다. 또한 병원에도 역시 환자의 생명을 연장하지 않는다는 가능성에 대해 묻지조차 않는다.
그래서 식물인간 전단계인 자가호흡이 가능한 아버지는 5개월째 의미 없는 연명의료 중이다. 이제는 일상에 다시 익숙해져서 거의 잊고 살 때도 많은데, 이렇게 연명의료에 관한 책을 무심코 집어 들 때면 다시금 생각이 나며 착잡해진다.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는 서가명강 시리즈로, 서울대 교수들이 강의한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꽤 흥미로운 시리즈여서 벌써 몇 권째 읽고 있는데, 사실 이 책이 시리즈의 첫 번째이다.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저자 유성호 교수는 서울대 법의학자다. 그는 죽음의 이유를 찾아 매주 시체를 보러 가는 사람이다. 특히 행복한 죽음이라기보다는 사연 많고 슬픈 죽음을 주로 다루고 있는데, 특히 안락사 문제와 자살이라는 한국의 죽음을 심도 있게 다룬다.
안락사 같은 경우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비율이 낮은 편이다. 생명을 귀히 여기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말이다. 한편 자살 같은 경우 모두가 알고 있듯 한국은 자살 공화국이다. 매일매일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는 이 두 가지 형태의 죽음에 관하여 우리에게 죽음의 의미와 더 나은 삶의 자세를 말한다.
이제는 죽는 게 무척 어려워졌다. 그렇다고 해서 환자의 고통이 경감되는 건 아니지만, 어찌 됐건 의학적인 소멸, 죽음 전의 상태를 꽤 오랫동안 연장시킬 수 있는 것.
이제는 자연스럽게 죽음으로 가는 단계라 보는 졸음의 단계, 혼수상태를 무한정 연장할 수 있다. ..
이렇듯 우리에게는 현재 연명의료로 발생하는 그레이존 gray zone, 즉 삶과 죽음 중 어느 영역에 있는지 불분명한 중간 지대의 존재가 새롭게 부상했다.
책은 이러한 연명의료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담고 있다. 특히, 안락사의 역사를 되짚어보며 왜 한국에서 안락사가 힘든지 그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거기에는 시스템의 문제도 있지만, 무엇보다 환자의 죽음에 대해 의사의 책임이 과도하게 높다. 그래서 의사들은 섣불리 안락사를 결정하지 못한다.
또한 어느 정도 수준까지 안락사를 허용할 것인가도 문제다. 스위스나 미국 몇몇 주는 의사가 도와주는 자살을 허용하고 있다. 적극적 안락사라는 것도 있는데, 이는 치료했던 의사에게 죽을 수 있도록 주사를 놓아달라고 하는 것을 포함한다. 이런 나라는 벨기에와 네덜란드가 있다고 한다.
2019년 한국 통계에 따르면 자살률은 10만 명 당 26.9명이다.. 하지만 법의학자로서 저자가 보기엔 이 통계가 잘못돼있다 지적한다. 자살자는 시신이 발견되어도 명백한 유서가 없는 경우 자살이 아니라 기타로 분류된다 한다. 또한 사회 분위기가 자살을 쉬쉬하는 분위기여서, 자살을 숨기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이런 자살에서 놀라웠던 것은
자살 시도를 하다 실패한
사람들을 조사한 내용이었다.
뛰어내리고 처음 떠오른 생각은 '방금 무슨 짓을 한 거지' 였습니다. 나는 죽고 싶지 않았습니다.
자살시도한 사람들을 담당하는 정신과 의사들은 이렇게 말한다 한다. 자살자들이 죽음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해온 건 맞다. 그리고 자기가 죽으면 모든 것이 해결될 거라 생각해서 자살을 택하는 것도 맞다.
하지만 막상 자살을 실행한 순간,
그들은 살고 싶다고 한다.
후회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자살 이야기 부분은 자살을 하는 심리 상태와 함께 특히 자살과 술에 관한 이야기도 있는데, 44~49%의 사람들이 음주 상태에서 자살을 기도한다는 이야기가 충격적이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어볼 만한 대목이다.
그래서 이런 죽음을 통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고
또 어떻게 죽음을 준비해야 할까?
첫째, 사랑하는 사람에게 평소 사랑한다는 말을 직접 그리고 자주 해야 한다.
둘째, 죽기 전까지 자신이 진정 하고 싶었던 일을 꼭 해야 한다.
셋째, 내가 살아온 기록을 꼼꼼히 남겨 사랑하는 사람에게 남겨줄 자산이 있어야 한다.
넷째, 장례 비용 등에 필요한 최소한의 돈을 모아두어야 한다.
이러한 죽음의 준비를 통해
덜 후회스러운 삶을
살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