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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희 Jan 31. 2022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디즈니 <엔칸토: 마법의 세계>를 보고

*디즈니 <엔칸토: 마법의 세계>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흔한 마법사 옆에 마법사 가족사진


콜롬비아 깊은 산속, 이곳엔 조금 특별한 가족들이 산다. 일정 나이가 되면 특별한 마법의 재능을 얻게 되는 이들은 자신들의 능력을 발휘해 마을 사람들을 돕고, 마을의 중요한 역할들을 해낸다. 어떤 음식을 만들어도 병을 치유할 수 있는 능력, 기분에 따라 날씨를 바꿀 수 있는 능력, 지나가는 곳마다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능력, 초인적인 힘을 가진 능력까지. 누군가에겐 아주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신기하고 다채로운 능력들을 가진 가족들은 서로의 재능을 마음껏 뽐낸다. 


가족의 일원인 미라벨은 어린 시절, 다른 가족들과 다름없이 마법을 받게 되는 의식을 치르게 된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미라벨에겐 마법의 능력이 내려지지 않는다. 그렇게 제대로 통과의례를 거치지 못한 미라벨은 특별하다 못해 대단한, 마법 가족들 사이에서 혼자만 아무런 능력을 가지지 못한 채 지극히 평범하게 성장한다. 


미라벨은 가족들과 달리 특별한 능력이 없다


그래도 미라벨은 누구보다 밝고 긍정적이다. 그러니까, 겉으로는 그래 보인다. 자신의 엄마, 이모, 언니들이 바쁘게 마법 능력들을 발휘하고 다닐 때 더 바쁘게 움직여야 했을 테다. 그렇게라도 해야 무슨 역할이든 할 수 있게 되니까. 늘 바쁘고 힘차게, 발을 동동 거리며 온 집안과 마을을 다니며 자신이 도울 수 있는 일들을 찾아 한다.  


아마도 미라벨은 오랜 시간 동안 스스로 괜찮다고, 아무렇지 않다고 자신을 다독여왔을 것이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전혀 괜찮은 것이 아니었다. 드디어 사촌 동생이 마법 능력을 받게 되는 날, 자신의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도진 것을 보면 말이다. 미라벨은 진심으로 동생에게 내려진 새로운 마법을 축하하기 어려웠다. 미라벨이 마법을 받는 것을 실패한 후 처음으로 새로운 마법 능력이 생기게 되는 날이기에, 내심 기대하기도 두려워하기도 했을 것이다. 


어쩌면, 오늘은 나도 능력을 받을 수 있는 건 아닐까. 어쩌면, 내가 능력을 받지 못한 것처럼 내 동생도 받지 못한다면. 덜 외로워질까. 아니 어쩌면, 나를 시작으로 마법이 끊겼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뭔가 달라질 수 있진 않을까. 싶었을 것이다. 


당최 이유를 알 수 없는 자신의 능력 없음은 얼마나 미라벨의 마음속 무거운 짐으로 남아 있었을까. 


꾹꾹 눌러 담아 왔던 트라우마가 터져 버리는 그날


대체 난 무슨 이유로 인해, 마법을 받지 못했던 것일까. 풀리지 않은 의문을 품은 채 미라벨은 가족들과 함께 있는 공간을 탈주한다. 그러다 미라벨은 마법을 지켜주던 촛불이 희미하게 약해지고 있음을, 가족을 지켜주는 마법의 집에 조금씩 금이가고 있음을 목격한다. 할머니에게 달려가 말해 보지만, 큰일 날 이야기라며 미라벨을 꾸짖기만 한다. 


그렇게 미라벨은 가족들의 마법의 힘이 희미해지는 이유를 찾고자 움직이기 시작한다. <엔칸토: 마법의 세계>는 완벽하게만 보였던 마법의 비밀을 가장 평범한 미라벨이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늘 빛나는 사람들 곁에서 자신의 평범함을 견뎌야 했던 미라벨. 미라벨은 털어놓는다. 


나는 늘,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미라벨의 마음속 엉켜 있는 수치심, 자기혐오, 열등감은 결국 미라벨의 발목을 꽉 잡고 있었던 셈이다. 애써 웃으며 가족들을 보필하지만 어딘가 충족되지 않은 느낌은 스스로 풀어내지 않으면 더욱더 엉켜 버리고 말 것이다. 


다행인 점은 미라벨은 그것을 알고, 마주할 용기가 있었단 것이다. 자신만의 답을 찾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이 해야 한다. 주체적인 발걸음을 뗀 미라벨은 가족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들어 보면서, 그들도 나름의 고충이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언니들, 그렇게 완벽하지 않아도 돼


자신과 달리 대단하고 쓸모 있는 마법 능력을 가진 언니들의 고충을 듣게 되는 미라벨은 곧 알게 된다. 언니들도 많이 힘들었구나. 마법 능력을 완벽하게 지켜내느라, 그리고 할머니의 마음에 들도록 행동하느라 숨이 막혔구나. 


그렇다. 언니들은 늘 자신들의 특별한 능력을 할머니의 기준에 맞추어 완벽하게 발휘했어야 했다. 언제나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 그 부담감을 이해하자, 이 영화 속 특별한 마법이 할머니로부터 여성들에게 이어진다는 점도 의미 있게 다가왔다. 이런 행동은 하면 안 되고 이런 행동은 해야만 하고. 그것을 위해 원치 않은 상대와의 사랑까지도 꾸며내야 하는, 그런 강박적이고 오래된 여성들의 압박감이 엔칸토 자매들의 이야기로 비유된 것으로 느껴졌다. 


가장 마지막으로, 결국 집이 다 무너져 버린 후에야 미라벨은 그 마법의 시초인 할머니의 진짜 이야기를 마주한다. 


나는 특별한 삶을 살고 싶었단다. 그런데 사랑에 빠져 버렸지 뭐야. 내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켜내야 할 소중한 것들이 생겨 버렸어. 게다가 한 번 무언가를 잃어 보고 나니, 잃어버리지 않으려면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할머니와 미라벨은 진솔한 고백들로 세대를 넘어 서로의 관점의 차이를 이해하게 된다. 할머니의 세대는 그랬던 것이다. 피난길에 할아버지를 잃고, 뜻밖에 얻은 마법의 능력은 가족들과 마을까지도 지켜 주었지만 할머니는 평생을 불안에 떨며 살아야만 했다. 그래서 강박적으로 완벽을 지켜야 했고, 실수하면 안 되었다. 


완벽에 대한 강박이 없다면, 우린 더 멀리 갈 수 있어


완벽함이 곧 강인함이었던 어느 세대를 지나, 이제 미라벨의 세대는 달라졌다. 강인하다는 것은 부족함을 인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각자의 불완전함을 이해하고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어야 한다. 나 아닌 나를 꾸미지 않아도 된다. 그저 나일 수 있다면 괜찮다. 


미라벨의 이야기를 듣고 할머니와 가족들은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는다. 예쁜 분홍빛 꽃만 피워 냈던 아름다운 언니 이사벨라는 자신의 감정을 부인하지 않고 더 다양한 색상과 모양의 꽃을 피워내게 된다.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을 지우자 더 많은 가능성이 열리게 된다. 언제나 예쁘고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되면, 우린 더 멀리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더 많은 가능성과 잠재력은 완벽주의나 불안함이 가득한 마음속에선 충분히 발휘될 수 없으니까. 


그렇게 미라벨은 대대로 내려오는 마법의 비밀을 가장 먼저 깨닫는다. 억지로 꾸며내지 않고 내가 나일 수 있는 곳에서만 나의 능력을 완성할 수 있다는 비밀을 말이다. 미라벨이 찾아낸 그 비밀은 나에게도 따뜻한 위로로 다가온다. 내게 없는 누군가의 다른 능력을 부러워하며 나를 자책했던 시간들을 딛고서, 나의 평범함을 있는 그대로 긍정한다면, 그제서야 나만이 할 수 있는 일들이 보이지 않을까? 


지금도 여전히 불안하고, 완벽하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는 모든 이들에게 미라벨의 이야기를 추천한다. 그리고 함께 토닥이며 묻고 싶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은 것 아닐까요? 혼자서 불안하게 빛나는 대신, 도움의 손길들을 내밀고 잡으며 더 오래 따뜻할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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