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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희 Jun 27. 2019

당차게 활보하고 설치는 여성들의 이야기

넷플릭스, <투카 앤 버티>

넷플릭스 오리지널, <투카 앤 버티 Tuca & Bertie> 2019


오묘하게 화음이 엇갈리는 멜로디와 정신없는 화면 전환으로 오프닝부터 눈을 의심했다. 설마 이게 뭐지? 어머. 하다 보면 리드미컬한 캐릭터 소개로 첫 번째 에피소드가 시작 중. 새(bird)로 그려진 두 여성 캐릭터가 아주 큰 보폭으로 당차게 거리를 활보하며 시작되는 넷플릭스 오리지널의 애니메이션 <투카 앤 버티> 이야기다.


대도시에 사는 미혼의 30대 여성들의 이야기는 줄곧 다른 이야기를 하는 듯하다가도 결국엔 결혼이나 사랑의 주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그러나 <투카 앤 버티>는 이것이 훨씬 자연스럽다는 듯이 결혼이라는 선택지는 아예 제거하고 시작된다. 그 자리는 커리어에 대한 진중한 고민, 우정, 사회생활 중 여성으로서 겪는 고충, 가족 문제, 어린 시절 트라우마 극복 등 다양한 주제들이 대신 차지한다. 이렇게 훨씬 풍요로워진 주제의 에피소드들 덕분에 캐릭터들의 성격은 더욱 생동감 있게 그려진다.

 

약간은 산만하지만 불의를 못 참고 활달하며 다양한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는 투카. 그리고 걱정을 많이 하는 완벽주의자이면서 베이킹에 소질이 있는 회사원 버티. 둘의 성향은 정 반대이고 서로 그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 모습들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배려하려 노력한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는 차이들이 발생하지만 둘은 각자의 성향 차를 이해하며 적당하고 알맞은 거리로 우정 관계를 유지한다.


시종일관 특이한 설정과 컨셉을 오가는 애니메이션의 세계관은 초반엔 다소 산만하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톡톡 튀는 원색의 색감들과 다양한 동물, 식물까지도 캐릭터로 등장하니 자칫하면 어디서부터가 진담인지 헷갈릴 법도 하다. 그런데 과장되고 비현실적인 표현들 가운데에서도 인물들의 내면이나 집중하고 싶은 문제들에 대해서는 진중하게 파고들어 풀어내는 스토리텔링 솜씨가 탁월하다.


제빵을 배우고 싶은 버티에게 관계의 권력 구조를 이용해서 가스 라이팅을 가하는 페이스트리 피트의 집요하고 악랄한 괴롭힘이나, 남자 친구를 사랑하지만 정작 중요한 순간에서는 대화를 피하고 숨고 싶어 하는 버티, 그리고 가족과의 관계에 답답함을 느껴 연락을 끊고 홀로 지내지만 또 가족과의 해소되지 않은 문제들을 고민하는 투카 등 어느 것도 단순하고 납작하게 접근하지 않는 편이다.


예를 들면, 걱정 없이 일상을 헤집고 다니는 것 같지만 버티와 투카에게는 스스로를 가두고 있던 연약한 내면이 있다. 그리고 이를 외면하고도 싶고 극복하고 싶기도 한 복잡한 심경들이 동시에 존재한다. 각 에피소드는 이런 모습을 쉽게 단숨에 풀어내지 않는다. 작은 설정과 농담 섞인 대사들로 조금씩 유추하게 만들다가 마지막에 짠 하고 밝혀준다.


한편 둘의 우정에는 서로에게 오해하여 다소 냉랭해지는 권태기가 생길 때도 있다. 그러나 마냥 좋은 시절을 함께 하다가 연애 관계가 생기면 소원해지는 식의 클리셰로 표현되던 여성들의 우정 서사로 푸는 것이 아니다. 둘의 문제는 개별적이므로 편견을 강화시키지도 않지만, 또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심리적 상태이므로 불편함 없이 공감할 수 있다.


자, 여성 캐릭터의 면모도 이렇게나 복잡하다. 웃기게 일탈도 하고, 사고도 치고, 욕도 찰지게 잘하고, 서로 싸우기도 하고, 어떤 면에 대해선 도덕성이 낮을 때도 있다. 그러나 불의를 바꿔 놓을 용기가 있고, 내면에 풀지 못한 상처를 갖고 있기도 하고, 누구보다 친구를 아끼고 걱정하며, 어떤 면에선 윤리 의식이 높을 때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 모든 특징들을 '역시 여자는 복잡하고 신비로워.' 따위의 말로 무너뜨리며 다시 여성을 타자화 시키지도 않는다.


그냥 그런 것이다. 우스꽝스럽고 사고뭉치이지만 의리도 있고 내면의 상처도 가진, 수없이 많이 존재하는 남성 캐릭터와 마찬가지로, 여성도 인간인 셈이다. 어느 면은 부족하고 어느 면에선 뛰어나기도 한, 그런 복잡한 인간 말이다. 투카와 버티는 매 에피소드마다 쉼 없이 그 메시지를 말하고 있을 뿐이다. 꾸밈없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선하다니, 여전히 우리에게 당차게 활보하고 설치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더 많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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