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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씨앗 Jun 20. 2023

[일기] 댓글에 진심입니다.

과공감 증후군, 프로공감러(?)의 삶은 피곤하다.

 

자주 이용하는 네이버 카페의 이용내역 2023.06 기준

 아이의 성장과 발달을 위해 가입한 카페, 동네 정보 카페하나, 작가의 꿈을 놓치지 못해 머물던 작가카페, 거기에 작년 가입한 병원 관련 카페까지... 총 5개의 카페를 이용한다. 그중 2개는 거의 놓고, 아이의 성장카페 하나 내 병원 관련 카페하나 이제는 2가지 인터넷카페에서만 활동한다.

 나는 친절한 댓글러, 오지라퍼 댓글러이다. 모르는 사람에게도 아주 친절하고 세세하게 알려주어야 마음이 편하다. 그리고 누군가의 세세하고 따뜻한 댓글을 보면 마음이 울컥해서 절이라도 하고 싶어 진다.

 나 역시 처음 카페를 가입했을 때 막막하고, 슬프고, 궁금한 것 투성이었다. 카페에서 눈팅을 밥 먹듯이 하다 보니 아는 게 많아지고 다른 사람들의 경험이 내게 쌓였을 뿐이었다.

 코로나 이후 만남도 많이 줄다 보니 유일한 재미는 나와 비슷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고 공감하고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그림 그리고, 가끔 글을 쓰고, 아이들을 돌보는 거 이외 내가 가장 많이 하는 것은 댓글을 달아주는 일이었다. 가끔은 그 긴 댓글에 호응하듯 몇 개월이 지나고도 나의 안부를 묻거나 반가워하는 분들도 있었지만, 사실 난 기억을 잘 못한다. 모두에게 최선을 다해 댓글을 달아줬으므로 누가 누군지 잘 알지 못한다. (카페 활동에 진심인 게 아니라, 특정 내용에만 진심인 카페인)


 카페에 올라온 글에 하나의 댓글을 달기 위해 아이의 과거 성장과정을 뒤져보고, 나의 병원 치료일지를 뒤져보고, 사진첩의 오래된 사진을 찾아서 댓글에 달아준다. 그러면 누군가는 정말 도움을 받았다며 고마워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그저 댓글을 읽고 그 정보만 쏙 이용하고 만다.


 어떨 때 보면 나 혼자만 댓글에 진심인 게 아닐까 싶을 때도 있다. 사실 그 사람들을 탓하고 싶어 하는 건 아니었다. 그저 어디에나 과한 진심인 나를 탓할 뿐이다. 우연히 유튜브에서 본 드라마에 '과공감 증후군'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공감은 좋은 것이지만, 과하면 병이 될 수도 있다. TVN의 <이로운 사기>의 남자주인공 한무영이라는 변호사가 있다. 변호사인 한무영은 과공감 증후군을 앓고 있는 환자이기도 하다. 성격상 동조성과 공감 경향이 지나치게 높아 타인의 심정을 이해하다 못해 감정마저 자신의 몸으로 받아들인다. 마음에 상처를 받고 아파하는 사람을 보면 그도 똑같이 그 아픔을 느끼는 것이다. 그의 변호사라는 직업은 천직이면서 고역이다.

공감증후군을 가진 변호사 한무영 역  드라마 <이로운 사기>

 한 때는 나도 변호사라는 직업을 꿈꾼 적이 있다. 약하고 억울한 사람들을 위해 대신 변호하고 도와주고 일을 해결해 줄 수 있다는 점이 참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변호사라는 직업이라고 해서 모두 정의로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포기했다. (정확히 말하면 법대 들어갈 실력도 없고, 사법고시 패스할 능력도 없으면서 범죄자를 무척이나 무서워한다는 것이 진짜 이유이긴 하다.)


 그래서 변호사가 아닌 동네 오지라퍼 아줌마가 되었다. 내가 아는 선에선 도와주고, 모르는 건 공부해서 알려주고, 서툰 사람들과는 기꺼이 내 시간을 함께 해주기도 했다. 나를 아는 주변 사람들에겐 '편리'였지만 진정 내가 챙겨야 할 가족들에겐 '피해'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좀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의 삶은 그다지 쓸모 있는 삶보다는 무쓸모(?)에 가까운 삶을 살고 있다. 그렇기에 가끔 누군가에게 작은 쓸모(?)라도 될까 해서 시간을 내서 장문의 댓글을 달곤 했던 거 같다.

 


 어떤 날이었다. 댓글의 장문을 쓰고 올리기만 하면 되는 마지막 과정이었다. 남편이 나를 불렀다.

 "뭐 해?"

 "아, 카페에서 뭘 물어보길래 댓글 달고 있었어. 금방 이것만 올리고...."

  잠시 정적이 흘렸다. 나는 댓글을 올리는 버튼 위에 손가락만 올리고, 댓글을 다시 훑어봤다. 혹시라도 잘못된 정보는 아닌지, 실수의 말이 있는 건 아닌지 다시 되짚어가며 읽었다.


 '후....'

 남편의 한숨소리가 들렸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남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나는 남편의 말이 아닌 내 마음속에서 들리는 소리를 들었다.

 '지금 댓글 쓰는 게 중요해? 그럴 시간에 차라리....'

 언젠가 들어본 듯한 말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카페활동이 너한테 도움이 돼?"

 "나도 힘들 때 여기서 도움 많이 받았으니까.. 내가 아는 것만 알려주는 거지."


 사실 알고 있었다. 사실 그런 행위는 나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게임이나 오락, TV드라마처럼 내 귀한 시간을 뺏아가는 행위에 가깝다. 내가 카페에서 정보를 얻고, 댓글을 다는 시간 동안 아이들은 '엄마'를 남편은 '아내'의 시간을 양보한다.

 남편의 한숨소리에 길게 써 놓은 장문의 댓글을 공중에 날려버린다. 지금 중요한 건, 누군지 모르는 카페 인물의 질문이 아니라 내 가족의 일상이었다.


 "알았어. 지금 닫을게. 그리고 카페 활동도 줄여볼게."


 친절한 댓글을 굳이 길고 정성스럽게까지 달지 않아도 된다. 정보 문의 댓글에 굳이 궁금하지 않은 내 상황이야기를 덧붙일 필요도 없다. 그런데 왜 나는 매번 그렇게 정성스레 댓글을 다는 걸까.

 

 '과공감 증후군'

 나는 공감이 과하다. 그래서 슬픈 영화도 못 보고, 범죄영화도 못 본다. 눈물이 먼저 나와서 영화를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칼을 맞으면 내가 맞은 듯 괴롭다. 주인공이 도망치면 내 심장이 터질 듯 뛴다. 영화니깐, 드라마니깐 이라는 말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예전 친구와 함께 영화관에서 '태극기 휘날리며'라는 영화를 보러 간 적이 있었다.

전쟁 전 평화로운 마을에 두 형제가 해맑게 웃으며 달리기 시작하는데,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영화가 시작한 지 10분이나 됐을까? 슬픈 장면은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너무도 평화로운 화면에 너무 행복한 음악이 나오자 코끝이 찡해지더니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눈물이 흐르다 못해, 콧물까지 줄줄 흘러내려 훌쩍이기 시작했다. 옆에 앉아있던 친구가 나를 흘깃 쳐다봤다.

 "울어?"

 "....."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말하면 울음이 터져 나올 거 같아서 입술을 꽉 깨물고, 입을 바르르 떨며 눈물을 참았다. 차라리 주인공이 총에 맞아 죽거나, 남들이 다 울만큼 슬픈 장면에서 눈물이 나왔더라면 조금 더 편했을까?

 나 혼자 영화를 보다가 너무 몰입한 나머지 울어버린 거였다. '곧 전쟁이 일어날 거니까. 곧 형제가 이별해야 하니깐, 지금 웃고 있는 행복한 미소가 그들의 마지막 행복한 순간이니까.'

 과몰입으로 눈물을 참느라 영화는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고문만 당하다가 영화관을 나왔다. 그 뒤로 영화관을 가기가 꺼려졌다. 영화 속의 장면들이 너무 생생하게 전달되어 가슴이 아파오고 눈물이 나온다. 누가 같이 가기라도 하면 '울보'인 걸 들키지 않으려고 더 악착같이 참았던 것 같다.

 

 나는 과공감러인데, 그래서 감정을 숨기고 싶다. 남들보다 너무 급하게 슬프고, 사소한 것에도 너무 깊이 감동한다. 변화무쌍한 감정에 솔직하지 못한 나라서 감정을 받아들이는 게 더 힘들었던 것 같다.

겁쟁이인데 의젓해 보이고 싶었고,
잘 모르지만, 알려주고 싶었고,
약한 데 강한척하고 싶었던 것 같다.


 가끔 슬픈 영화나 노래를 들으면 일상이 마비가 된다. 그렇게까지 '공감'하지 않아도 되는데, 눈물이 제멋대로 나와버린다. 나이가 들면서 감정이 예전보다 메말라버려서 다행이라고 여겼는데, 아직도 문득문득 '울컥'하는 마음이 올라온다.


 어린 시절 나는 불필요할 정도로 정의(?)로울 때가 있었다. 정의라고 믿고,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약한 힘이라도 보태고자 노력했었다. 하지만 가끔 살다 보면 이런 마음이 누군가에게 이용당해지고, 하찮게 여겨지는 것 같아 슬플 때가 있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도 누군가는 그것을 '오지랖'혹은 '착한 척'이라고 무시하기도 한다. 매 순간을 단단하고 차갑게 살고자 마음을 다잡는다.

 

나는 뜨거운 심장 대신 차가운 이성을 가지고 싶었다.

그렇지만 타고난 기질이 쉽게 바뀌지는 않는 거 같다.

나는 오지라퍼(?)보다는 프로공감러(?)이고 싶다.

 

 슬픔과 걱정과 분노에 쌓인 사람들에게 '공감'한 줄을 선물하는 사람.

오늘도 집안일은 밀렸고, 할 일은 쌓여있지만, 내 마음의 온도가 1도씨 올라가는 일을 하고 싶은 사람.

그래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댓글을 단다.

누군가에게는 하찮아 보이는 일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진심일 수도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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