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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씨앗 May 23. 2023

[부부일상] 너 도대체 정체가 뭐니?

제가 바질을 한 번 심어보겠습니다.

학교에서 온 공문

아이 학교에서 안내장이 왔다.

얼마 전 받은 무시무시한 버섯(?) 키우기도 다 처리하지 못했는데...(버섯은 나왔는데, 먹기가 싫다)

이번엔 바질을 심어보라셨다.

물론 아이들이 스스로 심어야 하는데...

호기심 많은 어미는 인터넷에서 본 기발한 화분(?)을 한 번 만들어보고 싶었다.


일명 재활용 자동급수화분(?)이었다.

마침 재활용쓰레기로 버려지는 두 개의 페트컵이 있었다.



급! 재활용화분 만들기

준비물) 과일소분용 작은 사이즈컵과 일반 커피매장에서 보이는 흔한 컵, 두꺼운 털실, 송곳과 라이터


1) 페트컵을 깨끗이 씻어서 말려준다.

2) 작은 사이즈컵 하단에 라이터로 살짝 데운 송곳으로 구멍을 뚫어준다.

3) 컵 안 쪽에서 한 번 묶어서 빠지지 않게 고정시켜 주고 아래도 묶어준다.

4) 컵 위쪽에 원하는 식물을 심는다.

5) 컵 아래쪽에 물을 채워주고 햇빛 좋은 곳에 둔다.


너무 간단해서 적을 것도 없지만, 아주 간단한 방법이라 한 번 만들어보고 싶었다.

간단히 설명서만 읽고 몽당씨앗연필을 새로 만든 재활용자동급수화분에 심어주었다.



거실장 위에서 키우던 어느 날, 새싹이 자라났다.

무엇보다 즐거웠던 것은 재활용 자동급수화분이 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첫날을 제외하고는 물을 단 한 번도 주지 않았지만 흙은 촉촉하게 유지되었다.

Good!


첫 번째 새싹이 났을 때 남편이 의문의 말을 던졌다.

"혹시 이 거 파프리카 아니야?"

"무슨 소리야! 내가 바질을 심었는데... 어떻게 파프키라가 날 수 있어?!"

"아니... 나랑 얘들이랑 베란다에 파프리카를 심어놨는데 누가 다 파버렸더라고. 그 흙 쓴 거 아니야?"

"어?... 그 흙을 쓰긴 했는데... 이건 바질일 거야."

"근데 바질은 어떻게 심는 건데?"


나는 안내장에 나왔던 문구를 기억나는 대로 남편에게 설명해 주었다.

"이 연필이 특수 연필이라서 캡슐이 물에 닿으면 녹거든, 녹으면서 주변으로 씨앗이 퍼져서 나는 거지."

"그럼 연필 밑에 씨앗이 있다는 건데. 그러면 그 주변에서 나야 하는 거 아니야?"

"... 그렇긴 한데... 그래도 이건 바질이야. 파프리카 심었던 화분에는 다른 새싹이 아무것도 없잖아. 만약 이게 파프리카 씨앗이라면 그 화분에서도 잎이 나야지"

"그건 그렇네."


 결국 남편과의 토론 결과 잎의 정체는 바질로 결정 내렸다.

그 뒤로 잎은 쑥쑥 자랐다. 

그리고 며칠 뒤, 베란다로 나간 남편이 소리 질렀다.

"여보! 빨리 와봐. 빨리!"

"와~ 대박! 이거 봐."


남편은 바질 화분을 들고 소리치고 있었다.

"얘는 파프리카가 맞아."

"뭔 소리야. 바질이래두."

"내가 증거를 보여줄게. 이거 봐봐."

 

빈 화분에 홀로 피어난 새싹(미니 파프리카로 추정)


남편은 베란다에 방치해 둔 화분의 흙을 손으로 가리켰다. 그 안에는 아주 작게 내가 바질이라고 우겼던 잎싸귀와 똑같은 잎이 자라나고 있었다.

"파... 프리카라고? 바질을 심었는데? 파프리카가 나다니!"

믿을 수 없었지만 분명 자동급수화분에서 자라고 있던 것은 파프리카였다.


누구냐? 너란 새싹!?


그리고 며칠 뒤, 화분의 진짜 주인인 '바질'의 새싹이 나왔다.

바질이와 파프리카의 모습은 달랐다.

요놈들 분갈이해줘야되는데...


콩 심은 데 팥이 날 수 있다는 걸 실생활적으로 증명(?)해냈다.

콩 심을 때 팥씨도 같이 뿌리면 팥이 날 수도 있다는 걸!


베란다의 두 새싹의 아름다운 공존을 응원하며

파선생(?)과 바선생(?)의 공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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