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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씨앗 May 10. 2023

[부부일상] 두고 온 화분

키워주지 못해, 미안하다


오래전 화분 이야기를 브런치에 쓴 이유는 최근에 찍은 사진 한 장 때문이었다.

오래전 주워온 화분을 꾸역꾸역 살려내는 남편을 보고 언젠가 글로 써보겠다고 다짐했지만 쉽지가 않았다.


 화분관리를 잘 안 하는 나지만, 화분이 작은 화분에서 끼여있으면 어쩐지 마음이 불편하다. 5월 황금연휴, 아이들이 감기에 걸리는 바람에 집콕하는 김에 오랫동안 미뤄뒀던 분갈이를 하기로 했다.


 "분갈이하려면, 큰 화분이 필요한데? 지금 잠깐 화훼단지 갔다 올까?"

 "잠깐만...."

 남편은 잠시 말을 멈추더니 씩 웃었다. 

 "왜?"

 "갈 데가 있어. 나랑 산책 좀 하고 오자."

 나는 남편의 말을 듣고 바로 알아챘다.

 "뭐야? 화분 주우러 가자고? 전에 내가 화분 주워와서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그리고 여보가 나 화분 주워왔다고 얼마나 구박했는지 생각 안 나?!"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아니, 잘못했다면 다야. 내가 주워올 때 뭐라고 하고, 자기가 필요할 때 주우러 가자고 하구!"

 딱히 화분을 주우러 간다기보다 한 소리(?)하고 싶었던 마음이 컸다. 아침을 먹고 우리 부부는 산책 겸 아파트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집 앞 분리수거장에 화분하나가 버려져 있었다.

"여보, 우리 저거 쓰자."

 "안 이뻐. 저거 쓸 바엔 새로 살 거야."

 디자인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다시 걸었다. 그러다  아파트 어린이집 앞에서 딱 좋은 빈 화분 하나를 발견했다. 하지만 이미 누군가 맡아놓은 듯 보여 포기하고 아파트 한 바퀴를 돌고 집으로 향하다가 멈춰 섰다.

 "처형네 아파트로 가볼까?"

 언니가 살고 있는 바로 옆 아파트는 우리 아파트보다 대형평수라 큰 화분이 종종 버려져 있을 때가 많았다. 어차피 산책 겸 나온 거라 흔쾌히 옆 아파트로 향했다.

 아파트 초입 분리수거장엔 이삿짐과 함께 커다란 화분 2개가 놓여있었다.

"와! 대박~ 화분 진짜 좋다. 근데 식물도 괜찮은데? 크기도 크고 아직 상태가 괜찮은데?"

"이사 가면서 버리고 간 거 같아. 근데 너무 아깝다. 식물도 잘 키우면 될 텐데..."

 문득 5년 전 내가 주워온 화분이 생각났다. 물론 그 화분보다 크기도 크고 식물도 훨씬 건강해 보였다.

 "고무나무는 모양만 잡아주면 바로 예뻐질 거고, 테이블야자는 말라죽은 애들만 정리해 주면 보기 좋을 것 같은데... 근데, 너무 크다. 우리 집에 이걸 놓으면..."

 "그렇지? 우리 집에 들어가기엔... 집이 너무 작지."

 "우리가 큰 집이었으면 당장 들고 갔을 텐데.. 너무 아깝다."

 "아, 우리가 큰 집으로 이사 갔으면 이거 키울 수 있을 텐데..."

 둘은 분리수거장 앞에서 한참을 망설였다.

 "고무나무 이건 엄마가 키웠던 건데 겨울에 베란다월동도 가능한데. 베란다에 두고 키워볼까? 테이블 야자도 이쁜데, 가지 몇 개만 잘라다가 우리 거랑 합목 시켜서 키울까?"

 남편과 나는 어떻게 하면 예쁘게 키울지, 어디에 둘 건지는 머릿속에 그려보고 이야기했다.

 "근데, 우리 예전에 고무나무 들고 와서 고생했잖아. 우린 화분이 필요한 거지, 새로 식물을 구하러 온 게 아니잖아. 근데 이 식물을 버리고 화분만 가져가진 못하겠다. 여보한테 옮았나 봐."

분리수거장에 버려진 대형 화분

 화분에 식물들은 우리 집에 있는 어느 나무보다도 크고 싱싱했다. 그런 나무들을 화분이 필요하다고 죽일 수도 없었고, 예쁘다고 무작정 집으로 들고 와서 키울 수도 없었다. 

 "여보, 우리 큰 집 이사 가면 키우자. 화분은 그냥 두고, 화분 받침대만 가져가면 안 될까?"

 남편이 나를 노려봤다. 

 "알았어. 우리 어차피 화분받침대도 사야 하는데... 하긴 누군가 화분 데려가는 사람이 같이 들고 가면 더 좋겠지. 알겠어. 포기! 여보도 나도 저 화분을 건들 수 없을 것 같아."

 잎도 떨어지고 말라죽어가던 나무도 살리겠다고 3년을 매달린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싱싱한 식물을 화분을 갖겠다고 죽이진 못할 것이다.

화분을 포기하고 돌아가는 남편의 뒷모습

 남편은 아무 말 없이 빈수레를 끌며 집으로 돌아갔다. 그 뒷모습이 쓸쓸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몰래 사진을 찍었다.


 좋은 주인 만나 잘 자랐으면 하는 마음으로 나무에게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나무야. 키워주지 못해 미안해. 내 공간을 너에게 양보하지 못해서 미안해. 부디 좋은 주인 만나서 다시 잘 자라길 바랄게.'


나무가 듣지 못하게 조용히 속삭였다.

언젠가 어느 시골 마을에서 만난 낯선 고양이에게 그랬던 것처럼... 비겁하게 돌아섰다.


남편과 나는 집으로 돌아와서 기존에 주워왔던 고무나무 화분을 화분은 그대로 사용하고 분갈이만 해주기로 했다. 화분이 잘 자라지 못한 이유가 있었다.

커다란 몸짓과는 달리 화분에 뿌리가 거의 없었다. 화분은 하얀 스티로폼으로 가득 차 있었다.

5년 전 주워온 고무나무 분갈이 중


스티로폼을 빼고, 새 흙과 영양제를 뿌려주었다.

아마 나무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

새로운 화분은 아니지만, 죽은 윗둥을 잘라내고, 스티로폼 대신 새로운 흙으로 갈아주었으니 말이다.

두고 온 화분은 아쉬웠지만, 우리에게 있는 나무들에게 집중하기로 했다.

세상의 모든 식물을, 모든 동물을, 모든 사람을 사랑해도 다 잘해줄 수는 없다.

적어도 우리 집에 있는 우리 식물들에게라도 최선을 다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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