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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씨앗 May 10. 2023

[부부일상] 화분 전쟁

버려진 화분이 반려식물이 되기까지...

봄이 되니 집안에도 변화가 생겼다.

3월 말, 4월 초에 1차 분갈이하고 2차 분갈이를 하기 위해 베란다로 나갔다.

분갈이를 해줘서일까, 조금씩 자라던 화분들이 갑작스레 폭풍성장을 했다.

식물을 좋아하는 우리 부부는 신혼 때부터 화분을 키우고 있었다. 둘 다 식물을 좋아하지만 좋아하는 식물이 달라 남편이 좋아하는 식물, 내가 좋아하는 식물, 우리 둘 다 좋아하는 식물들이 베란다를 항상 차지하고 있었다. 


  17평 신혼집에서도, 24평 첫 아이를 키울 때도, 26평 두 아이를 키울 때도, 34평 네 식구가 사는 집에서도 식물은 항상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식물을 좋아하면서도 가끔은 식물이 버거울 때가 있었다. 식물은 좋지만 겨울엔 거실 한편을 모두 식물들에게 내어주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나도 식물을 좋아하긴 하지만, 내 공간은 한 평도 안 되는 이 집에서 식물에게 거실을 양보한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다. 남편이 청소하라 정리하라 말하면 나는 식물을 줄이자고 말했다. 

 남편은 살아있는 식물을 어떻게 버리냐고 했다. 

 "너는 살아있는 고양이, 강아지 길 가에 막 버릴 거야? 그래도 된다고 생각해?"

 "아니.. 고양이, 강아지가 아니잖아."

 "고양이, 강아지나 식물이나 둘 다 살아있는 생명이잖아. 그럼 식물은 말도 못 하고 움직이도 못하니깐 버려도 돼?"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남편의 말을 듣고 나서는 마음이 불편해졌다. 우리 집 식물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가끔 보고 '예쁘다'라는 말만 하고 물도 안 주고, 분갈이 한 번 안 해주면서 맨날 갖다 버려라. 화분 좀 줄여라.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싫을까?

 애들 보기도 버거운 내가 식물들 마음까지 헤아리고 있어야 하나?

 

 사실 식물에 대한 첫 시비는 4~5년 전쯤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식물을 너무 좋아한 남편은 식물도 좋아했고, 남편의 정성 때문인지 우리 집 식물들은 너무 잘 자랐다. 한 번 산 식물은 큰 이변(?)이 없는 한 잘 자랐다. 가끔 장기간 여행을 가거나 해서 말라죽은 식물을 제외하곤 우리 집에 들어온 식물의 80% 이상은 잘 자란다. 그중 장수하는 식물들은 10년 이상씩 되고, 나눔을 하고도 계속 자란다. 

 비싸게 돈 주고 사온 큰 나무가 아니라 대부분 소형화분으로 사서 오래 키우고 있는 것들이다. 그러다 보다 봄이 다가오면 화분이 작아진 식물들이 눈에 보였다. 화분 가격도 만만치 않았다. 그때 분리수거장에 있던 깨끗하고 튼튼해 보이는 화분이 보였다. 


2017년 11월 - 분리수거장 앞 화분

 '화분도 새로 사야 하는데, 크기도 좋고 색도 무난하고 딱 좋은데... 주워가서 저기에 분갈이할까?'

 

 분리수거장에서 남이 버린 거 주워온다고 한 소리 할 남편을 생각하다가 화분가게에 가면 3~5만 원 하는 화분가격을 생각하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동네 언니에게 그 말도 안 되는 고민을 털어놨다. 

  "누가 버린 건데 어때서 화분만 깨끗하면 그냥 써도 되지 않아?"

  "화분이 대형인 데다가 식물까지 들어있어요. 혼자 들기는 무거워서 남편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그 안에 누가 들고 가지 않을까요? 그래서 포기했어요."

 그 말을 듣자마자 동네 언니는 나를 데리고 화분이 있는 분리수거장으로 가서 화분을 집까지 옮기는 것을 도와줬다.  

  나는 공짜화분이 생겨서 기분이 아주 좋았다. 남편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 저녁에 집에 들어온 남편은 내가 주워온 화분을 보고 경악했다.

 "여보, 우리 이거 화분 쓰면 안 돼요? 근데 날씨도 춥고 힘도 없어서 나무는 못 버리고 그냥 데리고 왔어. 나무랑 흙만 버리고 우리 거 옮겨 심어요."

 나의 말에 남편은 쓸데없이 화분을 들고 왔다고 화를 냈다. 또한 그 심겨 있는 화분은 어떻게 처리할 거냐고 물었다. 

 "버리면 되는 거 아니야?"

 "어떻게 버릴 건데?"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어떻게 버릴지는 생각도 안 해봤고, 몰랐다. 화분만 들고 오면 남편이 뚝딱뚝딱 다 해줄 거라 믿었던 것이었다. 결국 버린 화분을 들고 왔다고 욕을 진탕 먹었다. 다시 갖다 놓고 온다고 해도 남편은 화를 냈다. 결국 화분 욕심에 나는 그날 하루 종일 우울해야 했다.

  '차라리 주워오지 말 걸...'

 분리수거가 있는 주말이 되자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 오늘 분리수거하는 날이니까 내가 다시 갖다 놓고 올게."

 "그거 돈 내야 해"

 "그럼 내죠뭐. 내가 잘못한 거니까."

 "안 그래도 돼. 내가 키워볼게."

 ".......?"

  남편의 말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키운다니... 뭘? 나는 화분만 쓰려고 가져왔는데...? 나무는 잎도 마르고 다 죽어가던데..."

 "아직 안 죽었잖아. 내가 살려볼게."


 화분을 가져왔다고 화를 내던 남편은 어디로 가고, 이제는 화분을 최선을 다해 살려놓겠다고 말했다.

 '나는 식물을 주워온 게 아니라, 화분을 주워온 건데... 우리 식물 키우려고...'


 "여보, 내가 잘못했어. 다시는 안 주워올게. 우리 지금도 식물 많잖아. 화분만 쓰려고 가져왔어. 이거 키울 거면 안 주워왔다고. 그냥 다시 그대로 갔다 놓을게."

 "네가 주워왔잖아. 책임을 져야지. 3개월만 줘봐. 내가 다시 살려놓을 게."

 

 딱 보기에도 다 죽어가는 나무였다. 이걸 살린다고? 하지만 이미 남편의 마음은 확고했다. 내가 꺾을 수 없었다. 나는 잎이 다 말라가는 화분을, 분갈이하려고 가져온 화분을 남편에게 맡기고 우리 집 거실 한 편을 내어주고 말았다. 그렇게 한 3년이 지났다. 



다시 키우기 위해 가지를 다 잘랐다.

 나는 종종 우리 집에서도 큰 몸집을 차지하고 있는 그 화분이 미웠다. 화분을 주워왔는데... 쓰지도 못하고 식물하나를 더 키우고 있는 셈이었다. 

 화분을 볼 때마다 분리수거장에서 화분을 주워온 나를 원망했으며 시시때때로 남편에게 제발 잘못했으니 화분을 버려달라고 사정했다.

 화분 하나만 없어도 공간이 생기는데, 정말 앓는 이였다. 

 "여보, 3개월이 아니라 6개월이야. 그냥 버리면 안 돼?" 

 "안돼!"


 "여보, 1년도 넘었어. 그 나무는 이미 죽은 거야. 내가 잘못했으니 버리면 안 돼?"

 "안 돼. 아직 안 죽었어. 나만 믿어봐."


 남편의 지극정성이 통했는지 어느 날에는 새 잎이 하나둘 올라왔다. 하지만 얼마 못 가 똑같이 말라갔다. 남편이 잎이 시들 때마다 잎을 모두 자르고 새로 키웠다.

 "여보, 나 저 식물 볼 때마다 화가 나.. 예쁘지도 않고, 덩치는 제일 크고, 화분 쓰려고 주워왔는데 이게 뭐야."

 "조금만 시간을 더 줘. 살아있다니까. 잎이 새로 나는 거 여보도 봤잖아."


거실 한 편에 자리 잡은 나무 (맨 왼쪽)

 정말 괴로운 시간이었다. 화분을 볼 때마다 나는 우울하고 짜증 나는데 남편은 포기하지 않았다. 

 "여보, 나 저 화분 볼 때마다 스트레스받아서 우울증 오겠다. 진짜 버리면 안 돼? 지금 1년이 뭐야. 3년을 내가 저 화분을 이고 살았어. 그러니깐 이제 제발 버려줘. 그리고 잎이 난다고 해도 모양도 너무 이상하고 우리 집에 없었으면 좋겠어. 우리가 산 것도 아니잖아."

 내 말에 남편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딱 3개월만 기다려달라고 말했다.

 화분은 분명 나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녀석은 아니었다. 화분을 볼 때마다 나는 숨이 턱턱 막혔고 후회와 한숨이 밀려왔다.

 '내가 그때 화분 욕심을 덜 내고 주워오지만 않았더라면....'

왼쪽 - 모양잡기 전 / 오른쪽 - 모양 잡은 후

 그리고 남편은 제멋대로 난 식물의 가지를 실로 연결해 수형을 잡았다.

 '어?! 뭐지?'

 남편이 수형을 잡아놓는 순간 깜짝 놀랐다. 분명 못난이 화분이었는데... 생각보다 꽤 괜찮게 변해있었던 거였다.

 "훨씬 낫다. 훨씬 보기 좋아. 여보가 살린 거 같아. 이게 살아날 줄 몰랐는데... 여보 진짜 대단하다."

 달라진 나무를 보며 나는 엄지를 치켜세웠다.

 정말 살아날 줄 몰랐다. 3년간 물 주고, 매주 영양제를 꽂아주었다. 나무는 남편에게 보답하듯이 살아났다. 


 나무는 비로소 우리 집의 식구가 되었다. 나는 더 이상 나무를 보며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 나무가 시들하며 물도 주고, 마른 잎도 떼어주고, 종종 햇빛 쪽으로 이동시켜주기도 한다. 

 나무에게조차 '외모지상주의'같아 보이는 내가 좀 속물 같아도 그래도 남편의 말을 듣고 참았던 스스로에게도 칭찬을 해줬다. 그렇게 분리수거장에서 주워온 나무는 우리 집 식물식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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