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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씨앗 Sep 18. 2023

장례식장에서 생긴 일 (3)

하필 그 자리에 내가 있었다고?!


"그게 뭐냐니깐? 내가 뭐 이상한 행동을 했어?"

 "이상한 행동은 아니고, 보기에 따라 이상하게 볼 수도 있는 행동은 있었지."

 "그게 뭐냐고..."

 언니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다.

 "예를 들어 이런 거야, 네가 거기서 하윤이랑 밥이랑 국을 펐잖아. 그럼 밥을 풀 때는 미리 밥솥에서 뒤적거린 다음 한 번에 확 덮어서 퍼야 예쁘게 되는데 너는 조금씩 조금씩 조금씩 푸더라고. 왜 그런지 나는 아는데 다른 사람들 눈에 그게 이상해보일 수도 있는 거라고."

 "밥 푸는 게 뭐가 문제야? 얼마나 먹을지 모르니깐 양 조절하면서 풀 수 있는 거잖아. 그게 이상한 거야?"

 "그리고 밥을 담고 주걱으로 모양을 잡는 것도 나는 왜 그러는지 아는데, 사람들이 볼 때는 이상하게 볼 수도 있어. 한 번에 푸면 되는데 쪼금쪼금 나눠서 푸더니 또 모양이 이상하니 그걸 살리겠다고 주걱으로 막 헤집으니까..."

밥 못 푸는 여자

 

 언니의 말을 듣고 할 말을 잃었다. 세상에 밥 푸는 법이 따로 존재한다는 걸 나는 몰랐다. 아니 들어본 적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게 공적인 룰(?)인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내가 밥 푸는 것도 그 공식으로 퍼야 해? 그거 때문에 날 구박했다고? 그 공식은 누가 만든 건데??“

 "아니야, 공식은 아니고 그냥 다들 바쁘니까 한 번에 빨리빨리하자는 거지. 그냥 그건 하나의 예이고... 그 아줌마는 너만 구박한 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짜증이 난 거라고. 일이 힘드니까 그냥 짜증을 낸 건데.. 하필 그 자리에 네가 있었던 거야. 네가 그 아줌마랑 동선이 많이 겹쳐서 그래."

 동생이 옆에서 거들었다.

 "맞아. 나는 아예 주방 근처에도 안 갔잖아."

 "그리고 주방에 있을 거면 주방에 있던 지, 상도 치웠다가 손님이랑 얘기도 하다가 밥도 펐다가 자꾸 왔다 갔다 거리니까 그냥 짜증 낸 거야. 암튼 그냥 잊어버려. 너라서가 아니라 그냥 네가 그 근처에 있어서 그런 거야. 차라리 네가 안 보이는 데 그냥 앉아있거나 덜 열심히 했으면 되는데 너무 열심히 해서 그래. 암튼 기분 풀어. 그래도 난 잘 끝나서 다행이다."

 "응, 잘 끝나서 다행이다."


 둘은 남은 맥주를 건배하고 마셨고, 나는 그 앞에서 여전히 씩씩대고 앉아있었다. 모든 것을 알게 되었는데 알수록 짜증 나는 상황이었다.

 언니와 남동생의 말을 들으니 모든 것들이 이해가 됐다. 몇십 년 전에 알바 사장님이 웃으면서 일 못한다고 놀린 것도, 시어머니가 무심결에 버럭 한 것도, 장례식장에서 유독 나에게만 땍땍대던 이모님의 이유도 말이다.

 '그래. 결국 내가 일을 못해서 그렇다고? 일머리 없는 애라 욕을 먹은 거라고? 둘은 사회생활해서 눈치껏 행동해서 대우받으니 좋겠네.'

 

 어릴 적 버릇이 튀어나왔다.

'일 머리 없을 수도 있지. 내가 날마다 장례식당에서 그 이모처럼 일을 했으면 잘했겠지. 근데 모를 수도 있잖아. 얘기해 주면 되잖아. 괜히 짜증을 내고 그래.'


 일머리 없고, 성실하고, 불합리함에 저항하는 내가 사회생활을 못하는 이유가 있구나를 새삼 깨달았다.

 결론은 그렇게 뼈 빠지게 일을 하고 그 이모눈에는 '일도 지지리 못하면서 꾀만 파는 어린 여자애'라는 거였다. 뭔가 억울하고 분하지만 그래도 이번 일로 한 가지는 알게 되었다.


 밥 풀 때 국룰이 있다는 것!?  밥도 내 맘대로 못 푸고 눈치 봐야 하는 경우도 있다는 거였다. 밥이라도 내 맘대로 푸면 안 되나? 꼭 한 번에 퍼야 하느냐 말이다.

 

"젓가락질 잘해야만 밥을 먹나요 잘못해도 서툴러도 밥 잘 먹어요

그러나 주위사람 내가 밥 먹을 때 한 마디씩 하죠 너 밥상에 불만 있냐

옆집 아저씨와 밥을 먹었지 그 아저씨 내 젓가락질 보고 뭐라 그래

하지만 난 이게 좋아 편해 밥만 잘 먹지 나는 나예요 상관 말아 요요요!!!!"


DJ DOC의 슈퍼맨의 비애라는 노래를 크게 불러보고 싶은 밤이었다.

  

악동이 되고 싶은 밤~

  

 난 그래서 그 공식을 배워야 할까?

밥은 꼭 주걱으로 한 번에 퍼야 할까?

일하는 데 체계가 없다는 말..

일 안 해본 티가 난다는 말..

집에서 살림하느라 사회생활 못한다는 소리 같아서 속상했다.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 수는 없고, 모두 내 맘 같지는 않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도 나를 위해 한마디 남긴다면,

결국 그들보다 내가 행복하게 잘 살 거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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