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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씨앗 Jun 03. 2024

[동화] 터피는 외롭지 않아

지구에서 가장 외로운 개구리 ‘랩스 청개구리’ 이야기

[터피는 외롭지 않아]



안녕, 나는 랩스 청개구리 ‘터피’야.

이름만 보곤 오해하지 말아 줘.

나는 청개구리과에 속하지만 몸은 청색이 아닌 갈색을 띄는 갈색 청개구리야.

나는 원래 파나마 중부의 산악지역에서 살았어.


2005년, 내 고향 파나마 중부지역에는 치명적인 곰팡이 균이 퍼지기 시작했어.

환경 보호 운동가와 과학자들은 나와 몇몇 친구들을 구해 미국 조지아의 애틀랜타 식물원으로 데려왔어.

식물원으로 개구리 팟(Frog Pod)에서 사는 우리들을 보고 세상은 깜짝 놀랐지.

우린 학계에 보고되지 않은 새로운 종이 었거든. 애틀랜타 동물원의 파충류 담당관이던 조셉 멘델슨은 내 친구였던 환경 보호운동가 조지와 매리 랩 부부의 이름을 따 우리를 ‘랩스 개구리’라 불렀어.

‘랩스 청개구리’의 시작이었던 거지.  


그런데, 슬프게도 내가 떠난 뒤 내 고향 파나마 중부지역에는 항아리 곰팡이 균 때문에 큰일이 벌어졌지.

등과 배의 색깔이 특이한 내 친구 무당개구리를 사람들이 무분별하게 데려가 키우는 과정에서 항아리곰팡이균이 함께 옮겨 왔대. 그 옮겨간 항아리 곰팡이균이 전 세계로 번졌고, 결국 내 가족들과 친구들 모두 죽이고야 말았어.  

이 무시무시한 항아리 곰팡이병은 1993년 호주에서 처음 발견됐는데, 약 200종 이상의 개구리를 멸종시켰고, 현재도 많은 양서류들을 멸종위기로 만들고 있는 무서운 곰팡이균이지.

 나와 같이 피부로 호흡하는 개구리들은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 피부 제일 바깥층 안쪽을 케라틴으로 덮고 있어. 그런데 이 병에 감염되면  항아리곰팡이균이 개구리 피부의 케라틴 조직을 먹어 치워, 개구리의 피부가 딱딱하게 변하고, 피부 호흡을 하지 못하는  개구리들은 심장마비나 호흡곤란으로 결국 질식사하고 마는 거지. 고향에 살던 내 친구들은 안타깝게 이 병에 갈려 2006년에 대부분 죽고 말았어.

 

나는 나와 함께 애틀랜타 식물원으로 온 친구들과 함께 겨우 살아남았지.

사람들은 우리를 ‘지구에서 가장 외로운 개구리’라 불렀어.

물론 내가 항상 외로웠던 건 아니야.

나도 한 때는 나의 짝꿍을 만나 새로운 꿈을 키우던 때도 있었어

그녀의 이름은 ‘베니’ 내가 지어준 이름이지. 우리는 물이 가득 찬 나무 구멍에서 알을 낳았고, 귀여운 아기 올챙이들을 만났어. 정말 아름다운 시간이었어.

랩스청구리의 올챙이들은 아빠 개구리의 피부 세포를 먹으며 영양분을 얻어. 나와 베니는 아기들이 피부 세포를 먹을 수 있게 하려 애썼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아기올챙이들 얼마 살지 못했어. 나와 베니는 아기 올챙이들이 떠나고 매우 슬퍼했어. 슬퍼하는 베니를 달래 보려 했지만 그녀는 곧 내 곁을 떠나 아기들이 있는 곳으로 떠나 버렸어.  그제야 내가 가장 외로운 개구리라는 말이 실감이 났어.


 가족을 잃고 슬퍼하던 나를 위로한 건 내 친구 ‘투투’였어.

투투는 내가 아는 가장 유쾌하고 터프한 랩스청구리였어. 우린 지구상에 남은 가장 터프하고 유쾌한 랩스 청개구리가 되기로 결심했지. 우리는 바위에 기어오르기와 미끄러기를 아주 잘하는 개구리들이었지.

어느 날은 멋진 점프로 사람들을 놀라게 했지. 내가 큰 소리를 내며 물갈퀴가 달린 거대한 손과 발을 펴서 활공할 때면 사람들은 환호했지. 내 목소리가 마치 ‘새 울음’ 소리 같다고 했어. 사람들은 나를 ‘터프가이’라 부르기 시작했어.


 하지만 그 행복도 오래가진 않았어. ‘투투’가 아프기 시작했거든. 괴로워하는 투투를 보는 게 나는 너무도 힘들었어.

 “터피, 친구를 보내줘야 할 것 같아.”

 사람들은 내가 잠든 뒤, 조용히 웅크려있던 투투를 데리고 떠났어.

2012년 2월 17일 ‘투투’는 애틀랜타 식물원에서 안락사되었어.

나는 견딜 수가 없었어. 하나뿐인 친구 투투가 떠나고 나는 진짜 혼자가 되었으니까

하지만 그대로 주저 앉아서 울기만 할 순 없었어.

‘나는 용맹한 갈색 청개구리! 랩스 청개구리니까!’

나는 최선을 다해 내 삶을 살아야 했어.

개구리 팟을 돌아다니며 기어오르고, 소리치고, 미끄러지기를 반복했어.

그렇게 꽤 오랜 시간을 살았지.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 밥을 먹지 않았는데 신기하게 배가 고프지 않았어.

‘터피, 혼자 너무 외로웠지. 모두들 널 기다리고 있었어.’

따사로운 햇빛에 눈이 감겨왔지. 멀리서 친구들의 목소리도 들리는 것 같았어.

나는 그때 깨달았지. 나도 이제 혼자가 아니구나

2016년, 9월 26일 나는 그리운 가족과 친구들 곁으로 왔어.

 사람들은 내가 죽은 후, 랩스 청개구리가 지구상에서 멸종되었다고 발표했어.

‘정말 내가 지구상의 마지막 랩스 청개구리였을까?’

아니, 나는 파마나 숲 캐노피 어딘가에 나의 형제들이 아직 살아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비록 나는 만나지는 못했지만 말이야.

그래서 나는 친구들에게 편지를 써.

랩스 청개구리 ‘터피’가 세상에 존재했고, 살아있었다고

그리고 그의 랩스 청개구리 친구들이 지금도 파나마 중부의 산악지대에 살아남아있길 바란다고 말이야.

친구들, 터프가이 랩스 청개구리인 나 ‘터피’는 사라지지만

우리들을 잊지 말고 기억해 줄래?

파나마 산악지대에 '랩스 청개구리'라는 갈색 개구리들이 살았었다고 말이야.


하늘 연못에서 활공 중인 터프가이 ‘터피’ 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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