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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경 May 04. 2016

후회

회사사람에서 친구로, 그리고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우리는 살아가면서 참 많은 실수와 후회를 한다.
만약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난 실수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내가 회사에 막내로 입사하고 얼마 되지 않아 그 친구가 우리 팀으로 면접을 보러왔던 그 날이 아직도 기억난다. 검은색 정장을 입고 누가 봐도 면접자라는 표정으로 회사 1층에서 기다리던 그 친구. 입사한지 몇개월 안됐지만 그래도 면접담당이라고, 나와 같이 일할 사람이라며 에헴 하면서 이런저런 몇 마디 나눴던 기억.


그리고 함께 일하게 된 우리. 첫 느낌은 높은 마음의 벽과 참 많이 다른 성격. 과연 친해질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한동안은 말을 걸기 힘들었다. 그 대화가 하기까진... 우연히 취미 얘기가 나왔고 워킹데드라는 드라마 하나에 회사사람에서 친구가 되었다.


그 친구 덕분에 회사는 사회생활이 아닌 조금 더 삶에 가까웠다.


그 뒤로 함께 많은 것들을 얘기했고, 나눠 가졌다. 회사사람에게는 말하지 못할 이야기, 그렇다고 친구들에겐 얘기해봐야 소용없을 이야기들이 그 친구에겐 가능했다. 어떤 때는 회사사람이 되어주었고, 어떤 때는 친구가 되어주었다. 회사생활에 이런 사람이 있다는 건 축복이면서도 고마운 일이었다. 나의 부족한 점을 말하는 것이 약점이 되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도, 말을 함에 있어 회사어를 쓰며 정치적으로 계산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저 온전히 내 마음을 얘기하면 그걸로 끝이었다. 난 그게 참 좋았다.


나와는 많이 다른 성격과 취향으로 많은 것을 배웠다. 내가 안 먹어본 음식, 못 들어본 음악, 사용하지 않던 표현, 생각 못 했던 가치 등등 많은 부분에서 영향을 끼쳤다. 그 친구는 모르는 것도 많고 못 해본 것도 많은 놈이었던 나에게 많은 걸 채워주었다.


언제나 불행은 작은 오해와 침묵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렇게 4년을 보내고, 우리의 관계는 고장이 난 선풍기의 목처럼 '삐그덕삐그덕'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너무 다른 성격과 가치관에서 온 작은 점 하나가 모든 걸 갈라놓았다. 내 의사를 일찍 얘기했으면 풀렸을지 모를 일을 난 그 친구가 먼저 얘기하길 기다리고 있었고 그때부터 시작된 작은 오해가 서로를 침묵하게 했다.


침묵은 감정의 간극을 더 넓게 만들어갔다. 아차 싶은 생각이 들었을 땐 이미 늦었다. 아니, 늦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서로 고집을 부렸다. 다른 성격이면서도 묘하게 비슷한 성격이다. 그렇게 시간은 더 흘러갔고, 마음이 풀어졌어도 간극의 매듭은 이미 풀 수 없을 만큼 꼬여있었다. 그래도 시간이 가면 언젠가는 풀릴 거라고 생각했다. 3년을 그렇게 평생 없을 친구처럼 지냈는데 언제까지 이렇진 않을 거라 생각했다. 조금 더, 조금만 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관계 속의 시간이 무한하다고 생각하는 건 큰 착각이다.
관계 속의 시간은 언제나 모자라다.


그 친구가 퇴사를 한다. 난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이제 시간은 없다. 더는 싸울 필요도 없고, 감정을 소모할 필요도 없다. 모든 건 그냥 이 자리에 가만히 멈춰 섰다. 왜 난 시간이 충분하다고 느꼈을까. 왜 난 퇴사할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좀 더 빨리 얘기할 수 있었을까.


이제 와 모든 것이 후회됐다. 내 마음에 불만이 생겼을 때 빨리 이야기했으면, 고집부리지 말고 먼저 얘기를 했다면 이렇게 되지 않아도 됐을 텐데. 난 아직 아무 준비도 되지 않았다. 아직 매듭도 풀지 못했다. 그 친구의 빈자리를 메꿀 준비도, 그 친구에게 잘 가라고 인사할 준비도 되지 않았다.


이제는 회사사람도 아니다. 직장동료도 아니다. 친구는 더더욱 아니다. 그냥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다. 하고 싶은 말, 해야 할 말이 정리도 안 된 채 정말 많이 남아있지만 미안했다는 말 한마디 겨우 할 수 있었다. 그 말 하나에 모든 걸 담아야 했다.


만약 시간을 되돌려서 실수를 바로 잡을 수 있다면 언제로 되돌려야 할까. 면접장에서 처음 봤던 그때. 워킹데드를 처음 꺼냈던 그때. 내 불만이 생겼던 그때. 고집부리고 침묵 하던 그때.


언제가 실수인 걸까.



2016년 5월 3일, 차마 올리지 못한 내 가장 아픈 기억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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