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상대적인 너와 나의 관계. 거기에 다른 사람은 끼워 넣지 맙시다.
‘그’로 시작해서 ‘그’로 끝난다.
“당신은 모두에게 잘해주잖아요. 나한테 해주는 거나 저 사람에게 해주는 거나 다를 것 없잖아요. 그래서 전 당신에게 로열티를 가질 수가 없어요.”
반년 전인가? 아니, 그보다 더 전인가? 그에게 들었던 말이다. 나는 이 말을 아직 종종 곱씹는다. 상처를 받아서 그런 것은 아니다. 정말 내가 그에게 해준 것이 다른 사람과 해준 것과 같은가에 대해서, 또는 왜 그는 그런 말을 했을까에 대해 궁금이 남았기 때문이다. 그 당시로 거슬러가 보면 그는 내가 가진 몇몇 사람 중 하나였다. (가졌다는 표현은 상대와 합의되지 않은 온전히 내 마음속에서의 기준이다.) 나는 그런 사람을 내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내 사람이라고 해서 대단한 것은 없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 어떤 단어를 쓰고, 어떤 대답에 반응하는지. 그에게 무엇이 어울리고, 무엇을 주고 싶은지. 그저 좀 더 유심히 볼뿐이다. 그러다 보면 그가 그려진다. 그는 어떤 사람이라고 다른 사람에게 정의할 순 없어도, 나에게 그는 어떤 사람이라는 것은 정의된다
내 관계의 출발은 ‘그’로부터 시작해서, ‘그’로 끝난다. ‘다른 사람보다’, ‘다른 사람과는’이 아닌 그냥 ‘그’. 다른 사람보다 더 잘해주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정확히 하면 ‘A’는 1을 해주고 싶고 ‘그’는 10을 해주고 싶은 그런 차이다. 상대적으로 더 잘해주고 싶거나 못 해주고 싶은 그런 생각은 잘 가지지 않는다. 그런 생각은 나에게도, 그에게도 몹쓸 짓이라고 생각한다. ‘아 당신은 ‘A’보다 절 더 잘해주는군요. 그런데 ‘B’가 생겨도 절 더 잘해줄까요?’ 생각만 해도 피곤하다.
‘B보다 좋은 나’보다 ‘그냥 좋은 나’
난 다른 사람과 비교당하는 것을 싫어한다. 그건 내가 다른 사람보다 잘난 것이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비교당하는 건 나를 잃어버리는 느낌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이겨야만 내 존재를 인정받는 것이, 그전에 누굴 이긴다는 것 자체를 좋아하지도 않는다. 지금 당장 이기더라도 또 다른 사람과 경쟁을 해야 한다. 무한 경쟁에서 인정받는 것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에너지 소모도 너무 크다. 나를 나대로 보고 타인도 나를 그저 나로 봐주길 바란다. 못나도 ‘A보다 못난 나’가 아닌 ‘그냥 못난 나‘가 되고 싶고, ‘B보다 좋은 나’보다, ‘그냥 좋은 나’가 되고 싶다. 그래서 나부터 남을 그렇게 보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세상 모두가 나 같은 것은 아니다. 남들과 비교해서 우위에 서는 것에서 더 큰 가치를 느끼는 사람도 있고 (사실 그게 단기적으로, 외부적으로는 실제로 더 큰 가치이긴 하다.) 다른 사람보다 더 사랑받는 것에서 큰 기쁨을 얻는 사람도 있다. 그 이후로 그의 많은 말과 행동을 봤을 때 그는 나와는 다른 사람인 것 같긴 하다. 물론 나도 남 보다 사랑받으면 기쁘고 행복하다. 그렇지만 온전히 나를 사랑해주면 더 행복하다.
관계는 언제나 상대적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난 그에게 10을 줬다. 또 10을 준 다른 사람도 있지만, 그 10과 그의 10인 엄연히 다른 10이다. 내가 그에게 주고 싶은 유일한 10이다. 그리고 모두에게 잘해주지도 않는다. 그만큼의 에너지도 없을뿐더러 에너지 총량의 법칙에 따라 내가 가장 주고 싶은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만큼 줄 뿐이다. 이런 얘기를 안 해본 건 아니었다. “당신이 나에게 10을 줬다는 건 알지만 받는 건 또 상대적인 거잖아요” 맞다. 내가 10을 줬다고 오롯이 상대가 10을 받는 건 아니다. 관계는 언제나 상대적이다. 남들과 비교하지 않더라도 나와 너의 관계는 언제나 상대적이다. 그러니까 거기에 다른 사람까지 끼워 넣으며 복잡하게 만들 필요 없지 않을까? 그냥 내가 준 것이 얼마나 전달되는지만 얘기해도 충분하다.
어차피 지금은 말하기 곤란하기에 여기에 이렇게 남겨놓고 싶다.
“예전에 내가 준 건 당신만을 위한 것이었어요. 다른 사람과 똑같은 것을 줬다고 하더라도 그건 그 사람의 것. 이건 당신만의 것이에요. 그리고 남들하고 비교한다면 이건 말해둘게요. 당신은 조금 더 특별한 사람이었다는 걸요. 그리고 내가 준 것이 얼마나 전달됐든 신경 쓰지 않아요. 내가 준 사실은 변함없으니까. 이제는 곤란하지만 언젠가 내가 다시 당신에게 무언갈 준다면, 그때는 당신만을 위한 것으로 생각해주세요. 다른 사람 것 보지 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