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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경 Jul 22. 2019

대만에서 만난 넉살 좋은 고양이

스펀을 자기 집으로 살고 있는 고양이의 하루

오래전, 대만으로 여행을 갔었다. 처음 가보는 동남아라 너무 덥지 않을까 싶었지만 생각보다 시원했다. 나는 이전까지 해외여행을 가본 적도 없고, 다른 나라에 관심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동남아라는 단어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 덥고 습한 기온, 서울에 비해 불편한 교통, 저렴한 물가. 물론 내 편협한 착각이었다는 걸 공항에서 내리면서부터 알았다. 다른 환경의 어색함을 제외하면 크게 다를 것 없는 사람 사는 세상이었다. 다른 점은 기후 탓인지, 내가 생업을 위한 거주자가 아니라 관광객이기 때문인지 우리나라보다 조금 더 여유로워 보였다.


자유여행이었지만 하루는 버스를 타고 가이드와 대만 주요 지역을 이동하는 서비스를 이용했다. 패키지여행을 좋아하진 않지만 하루 정도는 가이드와 함께 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그 반나절의 시간이 대만 여행을 좀 더 풍요롭게 만들어줬다. 가이드는 버스에서 이동하는 내내 대만이라는 나라를 설명해줬다. 대만이라는 나라의 크기, 얼마나 지진이 많이 나는지, 어떤 언어를 쓰는지, 종교는 어떤 종교를 주로 믿는지 등등. 맛집만 검색해 오로지 음식밖에 없던 내 머리에 대만이라는 나라를 넣어준 가이드에겐 지금도 고맙다.


스펀이라는 지역에 도착했다. 길게 늘어선 가게들 가운데로 종종 기차가 지나가는 스펀은  내가 아련한 감정으로 봤던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에서 천등을 날리는 장면이 나온 명소였다. 이 지역 명물이라는 닭날개 볶음밥을 들고 기차 플랫폼에 앉아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볶음밥 가게에서 줄 서있을 때, 저 멀리서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던 고양이 한 마리가 슬렁슬렁 내 앞에 와 나에게 말을 건다.


"미옹"


아무리 고양이를 모르는 나라도 그게 무슨 말인지는 안다.


"인마, 아직 나도 한 입 안 먹었어. 기다려."


숯불향 가득한 닭다리와 그 안에 오밀조밀 모여있는 밥을 우물우물 한입 먹고 닭껍질을 살짝 뜯었다. 나를 쳐다보던 녀석은 이제 내 손만 쳐다보며 내 앞에서 빙글빙글 돈다. 손바닥에 내밀자 닭껍질을 한입에 꿀꺽하더니 내 다리를 비비며 더 달라고 한다. 닭껍질 한점. 닭다리살 한점. 결국 고기는 고양이가 거의 다 먹었다.


"이제 없어, 나 간다."


한점 줄 때마다 바닥에서 비비적비비적 애교를 부리던 이 녀석. 툭툭 엉덩이를 털며 일어나자 다소곳하게 앉아 미옹 미옹 나를 바라보며 운다. 아쉽지만 여기서 안녕이야. 하며 버스를 타러 갔다. 한참을 걷다 뒤를 돌아봤다. 혹시나 나를 따라오고 있진 않을까. 닭껍질 볶음밥 하나 더 사야 하나. 은근 기대하며 고양이를 찾았다. 그런데 이 녀석, 내 걱정이 무색하게 이미 다른 사람 앞에 가서 앉아 있다. 물론 그 사람 손에는 닭가슴살 볶음밥이 들려있었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가서 말 거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닐 텐데. 너 참 넉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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