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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경 Aug 20. 2019

여행과 일상을 대하는 자세

한 사건을 대하는 여행자와 주민의 이질적 자세에 대해서

아침에 눈을 뜨니 창밖엔 비가 후드둑 후드둑 내리고 있었다. 몸에 맞지 않는 침대라 그런지 쉽게 몸을 일으킬 수없었다. 겨우 고개를 돌려 여자친구를 보니 비가 너무 많이 온다며 안절부절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뒹굴뒹굴 굴러 창틈으로 하늘을 보니 안절부절못할 만큼 비가 많이 오고 있지 않았다. 어제보다 비도 덜 오는구먼. 다시 이불을 덮었다.


"오빠, 길이 물에 잠겼어."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켜 창문을 활짝 열었다. 어제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다니던 길이 텅 비어 있었다. 길보다 반층 정도 솟아있던 집들이 지금은 길과 같은 높이로 보였다. 그 높이만큼 물이 차있었다. 우리는 TV에서나 보던 조난자가 됐다. 베트남 호이안 여행 2일 차에 벌어진 일이다.



여행은 일상을 떠나 새로운 장소와 경험을 받아들이는 일이라고 한다. 일상을 떠난다는 건 내가 가진 것들이 다치지 않도록 그대로 두고 다른 곳으로 가는 일이다. 여행에서 얻은 경험은 추억으로 남을 뿐 일상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 여행은 낯선 곳으로 더 먼 곳으로 갈 수 있는 힘이 되고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용기를 준다. 이날은 나에게 분명한 여행이었다.



사태 파악을 위해 1층으로 내려갔다. 1층 바닥이 물로 흥건했다. 안내데스크에선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보고 있다고 했다. 우리 말고 다른 여행객들은 이미 가방까지 전부 챙겨 내려와 있었다. 다들 이 상황을 믿을 수 없는 듯했다. 그들과 함께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여자 친구의 어깨를 감싸며 담담히 말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잖아. 일단 조식부터 먹자."


날 보며 짓던 심각한 표정이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변했다.


조식을 먹으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물어왔다. 먹다 보면 숙소에서 알려주겠지. 근데 우리 어쩜 이런 일을 겪을 수 있지. 이번 여행은 정말 평생 기억에 남을 거야. 난 웃으며 말했다. 내 얘기를 듣는지 마는지 여자친구는 미간을 찌푸린 채 문 밖의 일렁이는 길만 바라봤다. 달걀프라이를 먹고 있는 중 강아지 한 마리가 내 다리 밑으로 다가왔다. 우리도, 숙소주인도 모두가 처음 보는 강아지. 길이 물에 잠기면서 우리 숙소로 대피한 또 다른 조난객이었다. 꼬리를 흔들며 내 주위만 뱅글뱅글 도는 녀석. 조식을 먹는 여행객 중 유일하게 웃고 있는 내 모습이 편해 보였 나보다. 나는 강아지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여기서 너랑 나만 걱정이 없구나."


잠시 후 우리를 구조해줄 나룻배가 도착했다. 숙소에 있던 여행객 8명이 모두 탈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의 작은 배였다. 배주인은 우리를 둘러보곤 균형이 잘 맞도록 자리배치를 했다. 한 명 한 명 올라갈 때마다 배가 기우뚱거렸다. 내가 마지막 탑승이었다. 한쪽 다리를 배에 딛고 오르려는 순간 배가 출렁했다. 다들 소리를 질렀다. 난 기어서 배에 올라탔다.


골목을 지나 올드타운 투본강에 배가 다다라서야 이 상황이 실감 났다. 어젯밤 비 맞으며 걷던 올드타운 거리, 하루 만에 한국음식이 그리워 한국 라면을 샀던 슈퍼, 관광객들이 삼삼오오 모여 음식을 먹던 노상 식당. 전부 강물 속에 잠겨 있었다. 투본강을 건너는 다리는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불어난 강물을 타고 냉장고가 떠내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배에 탄 8명 모두 아무 말도, 어떤 움직임도 없었다.


투본강을 빠져나와 높은 지대에 있는 거리로 들어왔다. 몇몇 가게는 문을 열고 내부를 정리 중이었다. 가게는 무릎 높이만큼 물에 잠겨있고 아직도 거리는 배를 타고 이동해야 했다. 가게에서 옷을 정리하던 주인이 우리를 보곤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넘실대는 길을 멍하니 보던 다른 가게 주인도 우리를 보더니 웃으며 인사를 했다. 배를 타고 지나던 베트남 꼬마 아이들이 우리를 보고 웃으며 소리를 질렀다.


"신 짜오!, 헬로!"


나는 일상을 떠나 근심뿐인 여행자들의 모습과 일상 속에서 웃으며 인사하는 주민의 모습에서 이상한 낯섦과 이질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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