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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경 Aug 27. 2019

눈물은 흘리지 않았지만 참 많이 울었을 아빠

아빠의 담배, 블랙코미디, 등의 무게와 눈물의 무게

나는 아빠의 눈물을 본 적이 없다. 30년 넘게 아빠를 봐왔지만, 눈물을 보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책에서 읽던 전형적인 가장의 모습이었다. 어릴 때는 그 모습이 당연하게 보였다. 나중에 어른이 되면 나도 그럴 줄 알았다. 어떤 일에도 의연하게 대처하며 해결 못 하는 게 없는 사람. 어른은 그런 것인 줄 알았다.


아빠는 평소에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내가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면 아빠는 컴퓨터를 보며 뻑뻑 담배를 피웠다. 처음에는 날 보고 황급히 담배를 껐다. 몇 번인가 그 모습을 더 마주치자 당황하던 모습은 마저 피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모습으로 변했다. 다른 날, 다른 시간은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월요일에서 금요일 2시 30분에서 3시 30분 사이에만 우리 집은 담배 냄새가 가득 찼다. 그 시간은 주식시장이 끝나는 시간이었다.


그 시절 우리 집은 아구찜 장사를 했다. 번화가도 아니고 주택가에서 아구찜이 얼마나 팔릴까 싶었다.  나는 가게에 가면 항상 매상 기록부를 봤다. 초기에는 공책 한 면이 하루 매상 기록으로 가득했다.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공책은 다음 쪽으로 넘어가지 못했다. 하루 매상이 점심에 판 된장찌개 하나인 날이 점차 늘어갔다. 내가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면 누워서 졸던 아빠가 벌떡 일어나 나를 쳐다보곤 다시 누웠다. 반사적으로 일어났다 다시 눕는 그 모습이 그때는 블랙코미디처럼 재밌었다.


아빠는 오 남매의 장남이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아빠는 한 번도 울지 않았다. 화장하기 전, 가족들이 모여 할머니의 마지막을 보내드릴 때도 아빠는 맨 앞에 서서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난 들썩이지 않는 등을 보며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난 슬슬 그때의 아빠와 비슷한 나이가 되어갔다. 몸도 커지고 마음도 성숙해지는 것 같지만 눈물만큼은 그대로였다. 난 눈물이 많았다. 현재의 스트레스 때문에 울기도 하고, 미래의 걱정이 말보다 눈물로 먼저 드러났다. 오래전 하늘나라로 간 고양이가 갑자기 생각나 울컥하기도 했다. 아빠와 다른 나를 보며 나이만 먹은 어린애란 생각에 또 속상해 눈물이 났다.


눈물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 생각하다 아빠가 떠올랐다. 조금만 냉정히 생각해보면 어찌 눈물이 없었을까 싶었다. 나와 같은 나이, 어쩜 나보다 더 어린 나이부터 아버지 없이 장남으로 가계를 책임지고, 꼬물꼬물 한 나와 동생까지 짊어진 아빠가 왜 눈물이 없었을까. 내가 흘리는 눈물보다 아빠가 흘릴 눈물의 무게가 훨씬 무거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항상 그 무게를 본인이 감당하고 있었다.


뻑뻑  피우던 담배가, 내가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벌떡 일어나 다시 눕던 블랙코미디가, 들썩이지 않는 등이 눈물을 대신해 울고 있었던 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빠의 눈물을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아빠는 참 많이 울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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