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기록
어떤 모양으로 혹은 어떤 모습으로건 시간을, 하루를 보내다보면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만들어져 남기게 되는 날이 있고, 어떻게든 남기려고 뭔가를 골똘히 생각해야만 남길 말들이 떠오르는 날도 있다.
다만 어떤 날은 정말 아무말도, 아무 이야기도, 아무 장면도 떠오르지 않을 때가 있어. 이런 이야기라도 적는 날은 그런 날은 아닌거지. ㅎㅎ
매일 같이 이야기를 만들어내야만 하는 직업인에겐 이런 이야기조차 사치처럼 느껴지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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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로맨스는 별책부록'을 재미있게 봤었다. 물론 이종석과 이나영의 로맨스 때문이라기보다는, 책 만드는 일에 대한 이야기이다보니 나온 인상적인 장면들이 좋았다.
매일 뭔가를 적어두고, 기록하는 행위에 대해 생각하다보니 시인의 죽음에 대한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찾아보니 7화의 장면이었네.
사람들이 자신의 시집을 통째로 복사해다 인터넷에 올려놓는다며 푸념하던 시인,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삶을 마감했던 그의 이야기(드라마 나의 아저씨에 보면 술집에서 모이는 동네친구들 중 은행 부행장이었다가 모텔에 수건 대고 있다던 역할의 그 배우).
"최형수. 가끔 아무도 원하지 않는 글을 혼자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그는 써야만 했다. 시는 매일 그의 마음을 쿵쿵 두드렸고, 그는 그것을 꺼내놓아야만 했다.
그렇게 태어난 사람이었고, 그래야 살 수 있었던 사람이었다. 세상은 그렇게 아름다운 사람 하나를 잃었다."
드라마의 장면들에서 그는 주유소에서 일을 하면서도 잠깐 쉬는 동안 손에 펜을 들고 수첩에 시를 써내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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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매일 그의 마음을 쿵쿵 두드렸고, 그는 그것을 꺼내놓아야만 했다니. 그래야만 살 수 있었던 사람이었다니. 작가의 대본이었을테지만, 그거야말로 직업인으로서 가질 수 있는 어떤 최상의 경지가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한 명의 인간으로서, 직업인으로서 전문성을 가졌음과 동시에 자신의 자아와 욕구에 그대로 충실했던 사람.
현실은 늘 그를 어렵게 했을테지만, 그의 마음을 두드리던 언어들을 밖으로 내보이던 순간, 그의 시집에 적힌 말들이 어떤 이에게는 하루를 살 수 있게 했던 버팀목이 되지 않았을까.
격리 이틀째, 하루하루가 뭔가 조금 몽롱하고 몽글몽글한 느낌이 든다. 그러다보니 괜시리 뜬구름 잡고 낭만적인 생각을 하게 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네. ㅎ
하지만 여전히 세상을 바꾸고, 아름답게 하는 건 낭만이라고 생각한다. 조금 느리고, 뒤쳐지더라도 여유를 갖고 늘 저 너머의 어떤 것을 생각할 수 있는 그런 마인드로.
몽글몽글하게. ㅎㅎ 하지만, 이 격리는 빨리 끝나면 좋겠다. 흥,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