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콤아티스트 유유 Dec 22. 2021

나는 나의 눈물로 이루어진 사람이었다.

작업실에서 만난 스물한 살


카키색 빈티지 점프슈트를 입은 그녀는 스물한 살이었다. 둘둘 말아 올린 바지 밑단, 탈색으로 빛바랜 머리카락, 얼굴 절반을 덮는 둥근 안경이 눈길을 붙잡았다. 


올해 1월, 망원동에 작업실을 열었다. 5명이 적당한 공간을 두고 일할 수 있는 공동 작업실이다. '이쯤이면 하나 차릴 때도 됐지.' 프리랜서 생활 11년 차에 부린 객기였다. 그녀는 내 작업실을 찾아온 첫 번째 입주자다.


작업실을 공유한 지 일주일 정도 지났을까. 그녀가 엽서 더미를 펼쳐 보였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끄적인 글과 직접 찍은 사진으로 만든 것이라고 했다. 


"마음에 드는 거 있으면 한 장 골라보세요."라고 말하는 표정이 상기돼 보였다.  

나도 목소리를 한 톤 높여서 화답했다.  

"오! 정말요? 대단해요! 멋져요!" 

진심이었다. 




나는 창작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무언가 만들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본능을 좋아한다. 그리고 그들이 가진 자부심과 허영심, 인정받고 싶어 하는 갈망마저 좋아한다. 


그녀의 엽서 더미 속에서 '너는 나의 눈물로 이루어진 사람이다.'라는 문장을 발견했다. 엽서의 배경은 밤하늘, 초점이 나가서 흐릿했다. 폰트는 굵기가 얇아서 가독성이 떨어지고, 가위로 자른 엽서 모퉁이는 삐뚤삐뚤. 서툴지만 마음에 들었다.


앞으로 그녀는 사진 초점을 정확하게 잡는 방법을 배울 것이다. 여러 번의 시도 끝에 가독성이 좋은 폰트를 찾을 것이다. 반듯하게 종이를 자르는 요령도 알게 될 것이다. 그런데도 인정받지 못하는 날이 있겠지. 고개를 떨구더라도 멈추지 않기를. 엽서에 새겨진 문장처럼, 그녀는 자신의 눈물로 이루어진 사람이 될 테니까. 





그녀는 보름 만에 작업실을 나갔다. 하지만 엽서는 지금도 작업실 한편에 붙어 있다. 엽서를 볼 때면 스물한 살의 내가 겹쳐 보인다. 무언가 만들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던 나는 독학으로 그림을 시작했다. 서툰 솜씨를 뽐내던 나도 자부심과 허영심으로 빛이 났을까? 인정받지 못할 땐 금세 쪼그라들기도 했지만, 그림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 나는 나의 눈물로 이루어진 사람이었다.





우리의 동료가 될 여성창작자를 찾습니다 :)
그림 그리는 프리랜서, 글 쓰는 작가. 1인 비즈니스를 운영하거나 조용히 공부할 장소가 필요한 분. 창작에 지친 마음에 따스한 위로가 필요한 분까지. 세상의 모든 여성 창작자를 환영합니다.

#작업실 홈페이지 www.dalkomshare.com

#작업실 문의(카카오톡) https://pf.kakao.com/_CuxowT/chat



CREDIT

달콤 아티스트 유유 (이유미)

Portfolio www.dalkomartist.com

Instagram @dalkomartist

blog www.eyumi.net

망리단길에서 여성창작자를 위한 작은 작업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자기사랑을 통한 마음 치유 과정을 진솔하게 담은 책 《나를 사랑하거나 더 사랑하거나》《소심토끼 유유의 내면노트》을 펴냈고, 국민대학원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했어요. 2011년부터 지금까지 달콤페인터 워크숍을 운영하면서 그림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위한 일러스트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여성창작자들이 모여 작업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