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사랑해요 감독님!
본 시리즈는 기분이 내킬 때에만 연재될 예정으로, 어쩌면 이 글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으며 팬의 입장에서 최대한 주관적으로 써졌기에 지적은 별로 환영하지 않음을 밝힙니다.
오늘 글에서 다룰 감독은 꽤나 재미있는 사람이다.
어쩌면 역대 KBO에서 가장 개성이 강한 감독이 아닐까 싶은 그는 팀내 스타플레이어들에게나 붙을 법한 우스꽝스러운 별명들을 가지고 연령대부터 국가까지 다양한 선수들과 허물없는 모습을 보이며 베테랑에 대한 예우까지 갖춘, 외국에서나 볼 수 있을법한 유쾌하면서도 가볍지만은 않은 그런 감독.
바로 KIA의 김기태 감독이다.
나이가 있는 사람들은 선수시절의 김기태를 떠올릴지도 모르지만, 아쉽게도 오늘은 감독 김기태에 대한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다룰 예정이다.
사실 예전부터 감독님에 대한 글을 쓰고 싶었지만 영 손에 잡히지 않아 포기하곤 했는데, 저번 경기에서 지크와의 세레모니를 보고 '역시 우리 감독님, 유쾌하시네'라는 생각이 들자마자 쓰게 되었다.
각설하고, 오늘은 야구에 대한 열정이 경기 내내 묻어나 사람냄새나는 감독, 선수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언제나 유쾌함을 잃지 않는 젊은 감독, 편견을 깨는 기행들로 예측을 거부하는 사나이 김기태에 대해 알아보자!
감독의 프로필
그는 1969년 5월 23일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나… Zzz
인하대학교를 졸업한 그는 1991년, 특별 우선지명권을 가진 신생팀 ‘쌍방울 레이더스’의 창단 멤버로 입단하며 프로에 데뷔한다. 데뷔 때부터 남다른 활약을 보인 김기태(당시 선수)는 팀의 중심타자로서 쌍방울 레이더스의 돌풍을 이끌지만 IMF 시절, 모기업의 부도로 삼성 라이온즈에 2:2 현금 트레이드된다.
삼성 시절 초반에는 꾸준한 활약을 보여줬으나 후에 김응용 감독과의 불화로 성적이 낮아졌고 2001년 SK 와이번스에 6:2 현금 트레이드된다.
쌍방울 레이더스의 선수단 대부분을 승계한 SK 와이번스에 온 그는 SK의 중심타선을 이끌며 2003년 팀 준우승, 2004년 골든 글러브 수상이라는 성적을 거둔다.
2005년에 은퇴를 선언하며 15년간의 선수생활을 마친 그는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코치 연수를 받고 SK 와이번스, 요미우리 자이언츠 등에서 코치를 맡았다.
2011년 LG 박종훈 감독의 사임 후, 후임 감독으로 선임되며 본격적인 감독 생활을 시작, 2013년에는 LG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며 감독으로서의 능력을 증명하는 듯 보였으나, 2014년 팀 성적 부진과, 선수와의 마찰로 팀을 떠났다.
그로부터 6개월, 같은 해 10월 28일 고향 팀 KIA 타이거즈의 감독으로서 복귀한 그는 현재까지 팀을 지휘하며 남다른 팬층을 거느린 개성 넘치는 감독으로 활약 중이다.
어차피 다 쓸 거면서 왜 생략했냐고 물을 수 있지만, 쓸 건 써야 될 것 같아서 썼다. 그래도 최대한 줄인 것이니 이해해주길 바란다.
혹시 주저리주저리 설명하는 부분에서 누군가가 떠오른다면 기분탓이다.
선수 시절
사실 김기태 감독은 선수 시절이 더 잘 나갔다. 데뷔 때부터 남다른 기량을 선보이며 팀내 중심타자로서 입지를 굳히고, 96,97년도에는 팀을 포스트 시즌 진출에 성공시키며 사람들에게 김기태라는 이름을 각인시켰다.(당시 매년 저조한 성적을 내던 ‘쌍방울 레이더스’는 이 두 해 동안 김기태, 박경완, 김원형, 조규제, 김현욱 등의 프로야구 레전드들을 배출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KBO역사상 최고의 지명타자로 기억되는 그는 ‘최초의 좌타자 홈런왕’이라는 타이틀처럼 그 시절 소년 감성으로 야구를 지켜봤던 아재들에게는 굉장히 힘 있고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으로 기억되곤 한다.
하지만 그는 감독 생활을 하며 이미지가 돌변하게 되는데…
감독 시절
하, 드디어 왔다. 사실 이거 쓰고 싶었는데 바로 쓰면 글 모양새가 안 나서; 내가 쓴 다른 글들을 보면 알겠지만, 원래 진지한 글은 딱딱하게 쓰는데 오늘은 국내 모 포털사이트‘N’에 있에 있을법한, 야구를 좋아하는 소년이 블로그에 끄적이는 것 마냥 쓰고 있다.
왜? 감독님 글은 딱딱하게 쓰고 싶지 않았다. 다른 이유는 없다. (단호)
(다시) 감독 시절
LG 트윈스의 감독으로 임명되자마자 FA로 송신영, 이택근, 조인성을 잃고, 승부조작에 연루된 박 모씨와 김 모씨를 잃는 바람에 시즌 시작부터 고생길이 예견됐던 김기태 감독은 2012 시즌 후반, SK와의 경기 중 지고 있던 9회 2 아웃 상황, 역전의 불씨가 지펴질 즈음에 올라온 마무리 정우람의 등판에 분개하여 대타로 신인 투수 신동훈을 기용하는 기행을 보이고는 KBO에 징계를 받기에 이른다.(후에 SK가 LG를 무시하는 것만 같아서 그랬다고 밝혔지만, 그냥 그날 경기가 너무 안 풀려서 화나셨던 듯;)
결국 팀은 7위에 머무르고(당시 탈쥐, 7쥐는 과학이라고도… 읍, 읍!) 이렇다 할 능력을 보이지 못한 채, 시즌을 마무리했다.
2012년 호된 신고식을 치른 그는 2013년에야 비로소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기 시작하는데, 시즌 초부터 상승세를 탄 LG는 2002년 때의 모습을 연상시키며 '뭔가 한 건 하겠다'싶은 낌새를 풍기며 돌풍을 일으켰고, 그들을 이끈 감독, 김기태는 감독으로서의 첫 별명, ‘갓기태’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승승장구했다. 급기야 상위권 팀들 중 가장 먼저 포스트 시즌 진출을 확정 지으며, 정규시즌 2위라는 성적을 거두게 되는데, 이때 LG팬들의 기쁨과 감동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10년 넘게 LG를 응원하던 한 팬은 2002년의 유광잠바를 꺼내며 10년 만의 포스트 시즌 진출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고, 어떤 팬들은 가을에도 야구를 한다는 사실에 자신들의 귀를 의심하였다. 그 애잔하면서도 감동스러운 모습에 타 팀 팬들마저도 그들의 쾌거를 한마음 한뜻으로 축하해줬고 이 이야기는 아직까지도 미담으로 남아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2013년 LG는 아쉽게도 플레이오프에서 두산 베어스에게 패배했고, 한국 시리즈 진출의 꿈은 그냥 꿈이 되고 말았다.
다음해인 2014년, LG는 작년의 영광을 잇고 못다 이룬 꿈을 이루기 위해 각오를 다지고 시즌을 시작했지만, 전년과는 다른 기량을 보이며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기록하고 있었고, 팀내 최고참인 이병규와 감독 간의 불화가 있다는 루머가 퍼지면서 김기태 감독은 4월 23일 성적 부진에 책임을 진다는 이유와 함께 조금 때 이른 사퇴를 했다.
같은 시기, 좋은 선수들을 데리고도 이상하리만큼 성적을 내지 못해 팬들의 원성을 샀던 KIA의 선동열 감독이 논란과 함께 재계약 6일 만에 자진 사퇴하면서 공백이 생긴 자리를 김기태 감독이 대신하게 되면서 지금까지 KIA 타이거즈를 이끌게 된 것이다.
대망의 2015년, 선동열 전 감독이 부임 이후 아직까지도 20 홈런을 치는 김상현을 보내고, 이렇다 할 신인도 길러내지 못한 채 성적을 리그 최하위권에 꽂아 박고, 리그 내에서도 상위권의 타격능력을 지닌 키스톤 콤비 둘을 한 번에 입대시켜가며 구단을 꾸려놓은 덕분에 미소 띤 얼굴로 시즌을 시작할 수 있었던 김기태 감독은, 미국에서 돌아온 윤석민과 선발 양현종, 타자로는 필과 김주찬, 이범호 정도만이 검증된 타이거즈를 이끌게 된 것이다.
10 구단 체제가 되면서 많은 하위권 팀들의 목표가 준플레이오프 진출이 가능한 5위 이상이 되었고, KIA 또한 5위 이상을 노리는 팀들 중 하나였는데 김기태 감독은 시즌 초부터 KIA의 6연승 돌풍을 이끌며 팬들과 팀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시즌 중에도 5위 가능성을 꾸준히 보여준 그는 5위에 대한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그런 김기태 감독의 노력은 시즌 초 6연승에도 불구, 부상으로 빠진 베테랑들의 공백으로 인해 팀의 미래와 함께 가라앉고 있었고 결국 시즌 초중반, 한화와의 대규모 트레이드를 통해 신인 양성을 통한 리빌딩이라는 목표를 내비친 그는 베테랑들의 공백을 신인 양성에 활용했다. 그 결과, 김상훈의 은퇴 후 낮은 성적에도 불구하고 KIA의 안방을 꿋꿋이 지키며, 유일신으로 여겨지던 차일목의 자리를 대신할 이홍구와 백용환이라는 귀한 거포 포수 자원을 발굴해냈고, 빛을 보지 못했던 임준혁 선발 기용의 성공과 박정수라는 선발 자원 발굴에 성공시키며 그가 단순히 현재를 위한 야구가 아닌, 구단의 미래까지 고려하는 야구를 하고 있단 걸 알 수 있었다.
시즌 말, 치열했던 5위 경쟁 끝에 7위라는 아쉬운 성적으로 한 해를 마무리했지만, 그가 보여준 KIA는 시즌 전, 전문가들이 예상한 KIA와는 다른 것이었다. 예년과 같이 하위권에서 맴돌 것으로 예상됐던 KIA는 치열한 5위 싸움을 통해 달라진 모습을 보여줬다.
아쉬움이 많은 시즌이었지만, 초반의 우려와는 다르게 시즌 내내 재미있는 경기를 보여줬던 김기태 감독과 선수단 모두에게 감사했던 한 해였다.
글의 길이가 애매해져서 이쯤에서 끊어야 할 것 같다. "뭐 얼마나 길게 썼다고 벌써 끊냐"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 '브런치'라는 플랫폼 특성상 작정하고 긴 글을 읽기는 시간적 여유도 없고, 글의 흥미도 금방 떨어지기 때문에 남은 이야기는 다음 부에 이어하겠다. 물론 별건 없고 글 분량도 이번 부 보다 짧다.(;;)
다음부에서는 지금 현재 진행형인 그의 감독 생활과 김기태 하면 생각나는 다양한 일화들을 짧게 소개할 예정이다. 근데 정말 짧아서 굳이 끊어야 하나 싶기도 하지만, 그냥 끊겠다.
그런고로! 다음부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