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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i Jun 03. 2022

나의 해방일지

June 2022


나의 해방일지를 봤다.


여름 땡볕의 뭉근한 찐득거림이 느껴져 미루고 미뤘는데, SNS에 돌아다닌 이 대사 때문에 바로 시작했다. 내가 조용히 지쳐가는 이유, 늘 혼자라는 느낌에 시달리는 원인.


생각해보니까 그런 사람이 하나도 없더라고요. 내가 좋아하는 것 같은 사람들도 가만히 생각해 보면 다 불편한 구석이 있어요. 실망스러웠던 것도 있고, 미운 것도 있고, 질투하는 것도 있고, 조금씩 다 앙금이 있어요. 사람들하고 수더분하게 잘 지내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진짜로 좋아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혹시 그게 내가 점점 조용히 지쳐가는 이유 아닐까, 늘 혼자라는 느낌에 시달리고 버려지는 느낌에 시달리는 이유 아닐까. 한 번 만들어 보려고요. 그런 사람. 상대방이 이랬다 저랬다 하는 거에 나도 덩달아 이랬다 저랬다 하지 않고, 그냥 쭉 좋아해 보려고요.



산포 삼 남매 각자의 행복에 대한 이야기는 참으로 단정하고 뜨거웠다. 가장 눈에 들어온 것은 (물론) 구씨의 서사였는데, 행복을 쪼개야 불행도 덩어리째 오지 않아 버틸 수 있다는 그의 서사가 낯설지 않았다.


우리는 다 구씨다. 불행이 무서워 행복을 충분히 누리지 못한다. 저는 행복하지 않아요. 이런 저를 어엿비 여기셔서 제발 감당 가능한 조각같이 작은 불행만 주세요. 행복할 땐 늘 그 뒤에 올 불행이 두렵다. 불행이 번호표를 뽑고 이제 곧 내가 갈 테니 넉넉히들 즐기고 있으라고 준 행복같다. 우리는 불행을 행복 뒤에 오는 순차적 개념으로 이해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건 역치의 문제다. 큰 행복 뒤에 오는 불행이 거대한 대재앙으로 느껴지는 것은 그동안 행복에 대한 역치가 높아졌기 때문에 그 낙차에 그만 마음이 터트려진 것일 테니까.

우리는 행복과 불행의 주기와 정도를 관리할 것이 아니라 마음의 안정성과 견고함을 갖춰야 할 것 같다. 추앙하고 나의 행복을 방해하는 존재를 환대하면서.



아침마다 찾아오는 사람한테 그렇게 웃어.
그렇게 환대해.


이 장면을 처음 볼 때부터 나는 많이 울었고, 너무 좋아 돌려볼 때마다 매번 초면인 듯 울고 있다. 당신을 괴롭히는 모든 것에 대한 환대. 나도 출근하는 지하철부터 나를 찾아오던 보고 싶지 않은 얼굴들에 대해 웃어줄 수 있을지도, 그럴 수도 있겠다는 왠지 모를 생각이 드는 것을 보니 나의 해방도 불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살면서 처음으로 정화의 느낌이 든다.



작가의 변하지 않는 확고한 메시지가 좋다. 커뮤니티에 대한 애정(전작은 후계동, 이번엔 산포)과, 추앙. ‘감히 판단하지 않는 상대방에 대한 신뢰와 응원’이 거의 모든 관계를 더 단정하고 확고하게 만들 것이라고 확신한다. 추앙. 응원하는 거. 넌 뭐든 할 수 있다. 뭐든 된다. 응원하는 거.

박해영 작가, 추앙한다. (더불어 손석구씨 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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