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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단거북이 Jan 07. 2020

집 정리의 괴로움과 기쁨

미니멀리스트는 나에게 꿈일뿐일까. 

미니멀리스트는

뉴규 별명?

잘 버리지 못하는 성격이다. 부모님이 어려서 버린 미국간 친구와의 펜팔 편지들과 학창시절 친구들과 주고받은 크리스마스 카드들을 생각하면 아직도 화가 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다. 이제 화를 내려놓을 때도 됐는데 잘 안 된다. 


역시나 결혼 후에 집에서도 뭘 잘 버리질 못한다. 신혼 때와 첫째 아기가 어릴 때 난 어찌 그 작은 집에서 잘 살았나 싶기도 하다. 아기 육아용품들이 부피가 큰 것도 많은데다 첫 아기다보니 그때그때 해주고 싶은게 많았던 것 같다. 그 작은 집에 엄청 큰 미끄럼틀을 장난감도서관에서 빌려와서 놓았던 적도 있으니, 지금 생각하면 웃기다. 


지금 사는 곳은 20평대 초반의 아파트인데 가장 정리를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책을 잘 버리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다. 책을 사모으는 재미를 들였다가 이리 됐는데 생활도 바쁘다보니 그때그때 읽지 못하고 꽂아만 놓은 책들도 꽤 있다. 


집에 가장 많이 머무는

'나' 중심으로 설계해보다

갑자기 한 달 전 불현듯 내가 집을 좀더 효율적으로 정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밤새 내부 가구 배치와 동선, 효율적인 나의 움직임 등을 생각하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단 하루만에 끝난 그 설계도를 가지고 나는 이렇게 집을 바꾸겠다고 짝지에게 선언했다. 짝지는 그런 날 보더니 뭐는 비효율적이고, 뭐는 답답할 것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내가 원한다면 지난 번처럼 한 번 옮겨주겠다고 했다. (세 달 전엔가 내가 원하는 배치로 테이블을 옮긴다고 한 적이 있어서 퇴근 후 짝지가 옮겨주었으나 너무 답답해보이고 이상해서 옮기자마자 다시 옮긴 아픈 기억이 있다.) 


매번 짝지의 의견을 들었고 고려하다보니 뭔가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 있어도 그냥 따른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짝지의 의견보다는 일단 나 중심으로 생각해보기로 했다. 왜냐하면 일단 집에 있는 시간이 가장 긴 것은 나였기 때문이다. 나는 프리랜서로 집에서 일을 하는 경우도 많아 책상 옆에 라디오도 있었으면 했고 뭔가 수납을 많이 해야하기에 책장을 더 구비할 수 없다면 자질구레한 수납이 가능한 가구를 내 작업실에 두겠다고 했다. 


책장과 컴퓨터 주변을 정리하다보니

더 들여다보게 된 나

집안 곳곳에 놓인 책들을 거실 양옆으로 쭈욱 붙였다. 그 때문에 그레이톤에 화이트와 블랙의 심플함을 자랑하던 거실이 순식간에 좁아진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우리집에 무슨 책이 있는지를 좀더 잘 알게 되었고, 내 생각보다 내가 책을 더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책을 계속 옮기다보니 아고, 갑자기 다 버리고 싶은 생각도 갑자기 들기도 하고... 

그리고 내 관심사들이 몇 가지 키워드들에 집중이 되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관심 키워드들은 한결같은 면이 있다는 것도 이번에 정리를 하면서 알게 되었다. 아, 나는 어떤 사람이구나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키워드들이 내게 던진 숙제들을 풀어야하고 결국 그게 나의 관심사이자 현재, 미래라는 것도 보이기 시작했다. 여튼 금년에는 밀싹독서를 하며 다시금 연말에 책장 정리를 해볼참이다. 그리고 좋은 책은 주변과 함께 보기 시작하면서 그 기쁨이 더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사는 일도 잠시 주춤해본다. 


컴퓨터 가까이에 라디오를 두고 라디오 리모콘도 처음 써보기 시작했는데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책상에 차 한 잔만 놓으면 늘 카페와 같은 분위기가 연출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늘 복닥하던 책상 위의 짐들을 한샘 모모로 수납함에 쭈욱 정리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미술 놀이 도구들도 정리가 되었고 나의 메모들이나 자질구레한 것들이 한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쓰지 않은 예쁜 노트들도 몇 개 발견하는 소득도 얻었고, 여기저기 조금씩 끄적여놓은 노트들도 다수 발견되었다. 뭔가 정리되지 않은, 게다가 바쁜 삶을 살아온 대가였다. 하지만 그렇게 발견한 것들이 반갑기도 했다. 예전같으면 그 메모들을 읽느라 또 시간을 허비하며 정리가 미뤄졌겠지만, 이번에는 과감히 대분류만 하고 한쪽에 모아두었다. 


냉파와 살림간 정리의 스트레스는

설거지로 풀기

냉장고를 파먹기 시작했다. 냉장실을 조금씩 비우면서 보니 냉동실에 생각보다 많은 식재료를 내가 넣어두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냉동실은 꽉 차야 효율이 높다는 말을 늘 곱씹으며 혹시 모를 식재료 바닥 사태에 너무 많은 대비를 한 탓이었다. 


냉동실에는 귀한 식재료도 많았지만, 냉동실일지라도 날짜가 지나면 아니된다는 것도 다시금 뼈저리게 깨달았다. 하나씩 꺼내어 유통기한과 식재료들을 다시 확인하며 비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장을 보는 대신 냉동실 파먹기를 시작했다. 냉장실 반찬도 하나씩 정리하고 냉장실 구석에 혹시 몰라 사놓은 소스들이 아이들 건강에 좋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에 끝끝내 쓰지 못한 채 버려져 있는 것도 발견했다. 아기가 어릴 때 이유식을 들고 외출을 해야할 때 늘 가지고 다녀야했던 아이스팩들도 몇 개를 빼곤 정리했다. 


또 다른 정리는 김치맛이 좋아야한다고 좁은 집에 살 때도 굳이 사놓은 김치냉장고였다. 김치냉장고는 진짜 만능 중에 만능이라 생각했는데 귀한 김치통 4개를 그대로 버려야했다. 내가 버린 돈은 얼마인가도 다시 되씹었다. 그리고 깜빡하고 먹지 못한 통들도 한 번씩 다시 확인하고 비운 통들을 씻었다. 


그렇게 냉장고를 정리하며 지내는 동안 냉장실은 자연스레 정리가 되어갔다. 이제 곧 냉장고 내부 청소를 할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 너무 추우니 잠깐 봄까지 기다려야할까 싶기도 하고, 선반 하나씩 시간이 날 때마다 치울까도 생각중이다. 


그리고 냉장고 옆 선반도 정리를 시작했다. 참 왜 그리 비닐봉지도 많은지...... 에코백과 장바구니를 수시로 잘 챙긴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비닐봉지는 많았다. 짝지와 비닐봉지를 잘 쓰지 않기로 다시금 다짐하고 다짐했다. 밥맛 맛있게 한다고 여러 곡식들도 챙겨놓은 것도 보이고, 빨리 먹어치워야할 것 같은 톳도 보였다. 


그러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멍한 상태로 설거지에 집중했다. 설거지를 많이 하다보니 맨손이 이제 좀 힘든 것 같아 그리 끼기 싫어하는 고무장갑도 끼기 시작했다. 거추장스럽게 느껴졌지만 이젠 고무장갑이 없으면 어쩌나 싶기도 하다. 


밥통 주변에 수저를 꽂아두고 잠자고 있는 수납함도 정리하고 냄비와 한 달에 한두번 써야하는 도시락통들 수납도 가깝고 낮은 수납으로 옮기니 마음이 편하다. 상하부장을 정리하다보니 왜 이리 또 통들이 많은지... 왜 이리 수납도구들도 많은지... 하나씩 다시금 정리해본다. 그 수납함을 샀을 때의 내 마음도 들여다보이고 한동안 잊고 있던 그 마음도 다시 떠올려본다. 


작은 거실장 하나를 부엌으로 가져와 이것저것 마른 식재료들을 넣어두니 한 눈에 보여 좋다. 그 옆에 캠핑용 보조테이블을 이용해 보조테이블로 만드니 식사를 준비하는 내 마음도 조금 가벼워졌다. 


셋째 갖기를 포기하며

장난감도 이젠 안녕

얼마전까지도 나는 셋째를 갖고 싶었다. 그런데 작년에 나는 다리를 한 번 삐었고 둘째 출산이후로 아픈 허리는 조금 개선되었어도 100% 낫지를 않았다. 짝지도 작년에 잠깐 입원도 했다. 우리에게 셋째는 무리. 


이젠 정말 쓰지 않는 장난감들, 아직 아이들 마음에서 떠나지 못하는 장난감들과 유예기간을 두며 함께 안녕 기도를 했다. 어린이집 엄마들에게 물려주기도 하고 아름다운가게에 기증도 하고 정말 못쓰게 된 장난감은 버리기도 하며 하나씩 정리해나갔다. 


어쩌다 두 권씩 가지게 된 책들과 영아 때 보던 책도 물려주고, 물려주려다 아직 첫째 아이의 마음 속에 있는 책은 다시금 그 마음이 정리될 때까지 두고 있다. 


하지만 책을 버린다는 것은 때때로 그 책이 무엇이냐에 따라 추억을 버린다는 마음도 들어 정말 고심에 고심한다. 그리고 버리지 못할 것 같은 책들도 어느새 마음에서 버릴 수 있는 책이 되어버린 세월도 느껴진다. 나도, 생활도 변했구나, 나이도 들었구나, 아이들도 컸구나, 짝지에게 이런 책도 선물했구나, 짝지와 이런 책도 함께 읽었었구나 상기하기도 한다. 


정이 든 옷과 신발에게

안녕하기

가장 큰 문제는 옷장 정리였다. 특히 금방 금방 자라는 두 아이의 옷을 무턱대고 받아놓았더니 그 계절에 입지 않는 옷도 꽤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예쁘고 마음에 드는 좋은 옷을 생각보다 자주 깜빡하고 잘 입고 있지 않음도 알게 되었다. 가지수를 절대적으로 줄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아 손이 안 가는 옷들을 가감히 뺐다. 그리고 아끼지만 작아진 아이 옷들에게도 안녕을 고했다. 그래도 정리가 안될 때는 두 아이를 불러 작아진 옷과 입고 싶지 않은 디자인을 골라보라고 했다. 자꾸 엄마가 본인들을 놀지 못하게 한다며 불평을 며칠 이야기했지만 그로인해 아이의 옷 취향에 대해서도 좀더 잘 알게 되었다. 그리고 입지 않는 옷에 대한 아이의 이유도 들을 수 있었다. 


신발도 마찬가지였다. 이상하게 낡았어도 누나가 신은 신발을 한 번쯤 자기 소유로 신어보고 싶은 둘째의 마음을 담아 그 신발을 버리지 않고 다시 신게 해주었더니 둘째가 기뻐했다. 그리고 역시 내가 정이 들고 아이도 정이 든 신발이라도 안녕을 고해야함을 함께 이야기하며 정리했다. 아이들이 이렇게 빨리 크고 있구나 실감하면서도 아쉽기도 한 복잡한 감정이 뒤섞였지만 뒤를 돌아보지 않고 과감해져보기로 했다. 


내 옷도 계절별로 정리하다보니 생각보다 최근 몇 년간 입고 다니는 옷가지수가 정해졌다는 것을 깨달았고 살도 좀 쪘다는 뼈아픔도 느꼈다. 잠자고 있는 등산용품 바구니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등산양말까지 신고 다니던 나였는데 아쉽다. 


한창 풀타임으로 일할 때 입고 다니던 커리어우먼 스타일의 옷들도 보인다. 잠자고 있는 옷장으로 옮겨야할까, 일부를 정리해야할까 고민중이다. 나의 미래에 대한 고민과 맞닿아 있기도 하다. 다시 그 옷들이 필요할 때 사는 게 낫겠다 싶다가도 변치않는 유행의 옷들은 아직 마음을 떠나지 못한다. 


짝지 옷도 없다 없다 하면서 산 티도 상당량이다. 이젠 세월의 흐름에 따라 다시 버려야겠지. 이번 주말에 몰아서 한 번 해야겠다 싶다. 


청소와 정리가

끝나는 날은?


그러고보니 아직 못한 정리가 또 있네. ㅋ 매일 정리하고 청소해도 늘 아이들이 어린이집 하원후 30분이면 초토화되는 우리집, 정말 끝이 없구나. 그리고 청소와 정리를 하다보면 또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흐미... 


그래도 조금씩 만족도는 높아지고 있다. 점점 더 효율적으로, 더 잘 살 수 있게 되겠지 뭐. 이렇게 살다보믄. 이젠 이걸 몰아서 어느 한 때 하지 말고 평소에 조금씩 해야지, 다짐해본다. 


정리되지 않는 생각들을 글로 휘갈겨 기록하다보니 일부 남은 스트레스가 또 확 풀리네. 


'청소와 정리는 죽을 때 끝난다.'는 친정엄마의 말은 정말 만고의 진리구나. 





* 혹시 '공동육아(부모협동어린이집)'에 관심있으신 분 계시면 

아래 저의 브런치북 '공동육아어린이집, 보낼까 말까'도 많이 사랑해주세요^^  

https://brunch.co.kr/brunchbook/hamk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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