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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단거북이 Aug 14. 2019

눈물의 알타리김치

말하지 않아도 나를 제일 잘 이해해주는 속 깊은 엄마 같은 맛

대학 졸업 후 20대의 나는 야근 많은 회사를 다녔던 탓인지, 외식을 자주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인지 강한 조미료에 매우 길들여져 있었다. 그렇기에 더 맵고 더 짜고 단짠이 잘 가미된 음식을 자연스럽게 선택하고 먹었던 것 같다. 어느 순간 무엇을 먹어도 맛을 못 느낄 때가 있어 놀란 적이 두 번 정도 있었다. 다시 조금씩 싱겁게 먹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면서 조금씩 입맛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또다시 반복될 수밖에 없는 회사 생활 속에서 담백한 입맛을 유지하기란 늘 멀고 어려운 길로만 느껴졌다.


그러다 입맛이 다시금 크게 변화하게 된 계기가 있었으니 첫째의 임신이었다. 대학 졸업 전부터 익숙했던 직장 생활을 그만두면서까지 어렵게 가진 첫 아기였기에 나는 20대에 다이어트를 하면서도 안했던 음식 조절, 입맛 조절을 생전 처음 했다. 또한 외식을 일단 잘하지 않았으며, 유산이 될 수 있는 음식은 무조건 피했고, 캔에 든 참치, 신선하다 해도 회 종류는 절대 입에 대지 않았다. 회사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가끔 짝지와 먹던 피자나 치킨도 덜 먹었고, 햄버거, 후렌치 프라이도 멀리하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처음엔 어려웠지만 점점 강한 짠맛, 단맛 등이 짜증이 날 정도로 싫어졌다. 정말 엄마가 된다는 건 대단하다. 평생 안 하던 노력도 하게 하니까 말이다. 첫째와 둘째 임신 기간을 거치며 그렇게 나는 어느새 집밥 마니아가 되고 있었다. 집에서 내가 해 먹는 모든 것이 그렇게 맛이 있더랬다. 아마 임신과 새로운 생명을 만난다는 기쁨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렇게 둘째를 임신해서 안정기가 다가올 때쯤 나는 첫째때와 마찬가지로 입덧을 시작했다. 집밥, 야심차게 찾아간 일식집도 모두 잘 먹을 수가 없었다. 당연히 반찬만들기도 의욕이 사라졌고, 친정엄마가 해줬던 오이지를 생각하며 X마트에서 급히 사온 오이지는 왠지 모를 약품 냄새가 강하게 내 코를 찔렀다. 조미료가 가득하고 짠맛이 아주 강했다. 토할 지경이었다.  

그즈음 나는 모든 음식에 맛을 느끼지 못했고, "캬, 진짜 잘 먹었다."같은 시원한 감상을 가진 지 오래되어갔다. 잘 먹고 뱃속의 태아를 잘 키워야하는 임산부에게 기본 욕구인 먹는 욕구가 충족되지 않아서인지 갑자기 모든 것이 왠지 억울할 때도 있고, 갑자기 화가 나기도 하는듯 예민해져 있었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그때 친정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막내 외삼촌이 추석을 맞아 김치를 보냈다는 것이다. 저녁에 가져다준단다.  


나는 외가댁 김치에 관해서라면, 임신 전에도 김치 냄새만 맡으면 익었는지, 안 익었는지 귀신같이 구별할 수 있었다. 아, 외가댁 김치가 온다니, 약간 덜 익은 아삭한 김치는 짝지 주고, 알맞게 익은 김치, 약간 쉰 김치는 볶아 먹거나 김치찌개를 해 먹으면 되겠다 생각하니 갑자기 군침이 돌았다. 엄마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엄마, 김치 언제 온다고?"


친정엄마는 눈치챈 듯 웃으며 김치를 먼저 전해주고 저녁때 다시 오겠다며 번개같이 나타나셨다. 그리곤 김치통에서 김치를 정성스레 꺼내 서걱서걱 칼로 썰고 반찬통에 따로 나눠 담아주셨다.


아, 역시 냄새가 예사롭지 않았다. 코가 킁킁, 침샘이 자극되어 입안에 침이 그득해졌다. 마침 입맛이 없다며 점심도 제대로 먹지 않은 터라 오후 3시 엄마가 알타리 김치를 썰어 담는 그 시간이 무척 행복하면서도 심히 괴로웠다.


쿠쿠쿠쿡 쿠쿠쿠쿡-

밥맛이 최고인 쿠X 밥솥은 밥이 다 되어감을 알렸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하얀 쌀밥에 빠알간 알타리 김치를 얹자 내 코가 벌렁벌렁한다.


사각사각 쩝쩝쩝쩝 사각사각 쩝쩝쩝쩝

알타리 김치 하나를 집게 손가락으로 딱 집어 입에 떠먹듯 먹는데, 절로 씹힌다.  


사각사각 쩝쩝쩝쩝 사각사각 쩝쩝쩝쩝

"먹는 소리가 정말 맛나게 들리네. 그렇게 맛있어?"

"응... 응... 아, 진짜 막내 외삼촌 손맛은 정말 대단해. 외할머니 손맛을 정말 빼닮았어."

"가게 옆에 텃밭 만들어서 직접 다 키워서 전라도 고춧가루를 갈아서 만든 거래. 국물에 고춧가루가 갈아서 다 들어있는 거야."

"사각사각 쩝쩝쩝쩝...... 아, 정말 외삼촌은 진짜 전쟁이 나도, 지구가 멸망해도 걱정 없이 살겠어..."

"그래, 얼마나 성실하게 잘 사는 예쁜 부부냐."


엄마랑 대화가 잠시 끊어지고, 나는 알타리 김치를 담아둔 커다란 반찬 그릇을 거의 비워갔다. 싱크대를 정리하시며 엄마는 나에게 물어본다.


"맛있지?"

"......"

"맛있냐고...?"

"으... 응... 훌쩍... 훌쩍..."


갑자기 코가 막혀 말이 잘 나오질 않았다. 엄마가 내가 눈물을 흘리는 것을 눈치챌까 대충 대답했는데, 도대체가 말을 이어서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계속 눈물이 하념 없이 흐르는 거다. 하는 수없이 셔츠로 몰래 두 눈의 흐르는 눈물을 훔쳤다. 엄마가 눈치챈 듯 싱크대를 정리하다 말고 부엌에서 뒤돌아 말을 건다.


"알타리 김치 먹다 왜 울고 그래?"

"그냥 너무 맛이 있어서....."

"..... 그렇게 맛있어?"

"으흥.... 훌쩍훌쩍... 외삼촌 알타리 김치가 정말 날 살렸어. 요새 입맛도 없고 모든 일에 의욕이 없었어. 첫째도 구내염으로 며칠 아프니 잘 먹지도 못하고 그러니 또 낫는 것도 더딘거 같고... 마음도, 몸도 그래서 더 힘들더라고... 훌쩍훌쩍..."

"...... 그래...... 아이고 내 딸, 힘들지... 다시 입맛이 없어졌으니 얼마나 힘든고... 엄마가 되는 건 이런 과정을 다 거치는 거란다."


엄마가 갑자기 막내 외삼촌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의 감동을 전하라며 무작정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엄마는 정말 눈치도 없다. 훌쩍이며 눈물 콧물 다 쏟아내서 목소리도 안 좋은데 지금 통화라니!


외삼촌은 바로 받으시곤 내 안부를 물으신다. 그리고 다시 물으신다.


"혜진아, 감기 걸렸어? 목소리가 왜 그래?"


갑자기 또 울컥, 말을 잇지 못했다.

보다 못한 엄마가 핸드폰을 뺏어 외삼촌에게 자초지종 이야기한다.


외삼촌은 멋쩍은 듯, 당황한 듯 큰소리로 웃으며 내게 감동을 줬다니 영광이라고 한다.


"삼촌, 너무 고마워요."

"아이고 뭘, 또 먹고 싶으면 얼마든지 연락해. 삼촌이 다 고맙네."


옆에서 엄마는 내심 섭섭하기라도 한 듯, 또 내심 고마운 듯 외삼촌에게 그런다.


"정말 가게에서만 썩기엔 아까운 손맛이다. 사람을 살렸네."


어려서부터 일찍 지방으로 시집간 엄마대신 매번 김장할 때마다 외할머니 곁에서 돕던 착한 막내 외삼촌이 만든 알타리 김치. 정말 외할머니 표 김치와 거의 120% 싱크로율이다. 매번 벌렁벌렁 커지는 콧구멍 사이즈와 자연스레 고이는 침양이 늘 그 맛을 증명한다.




엄마가 만든 반찬이나 찌게라 하면 거의 다 좋아하는데, 유독 김치만은 '외할머니' 맛 김치를 너무 좋아한다. 이전에도 가끔 친정에 가면 나는 엄마가 말없이 내놓은 김치 그릇에 코를 킁킁대고 얄밉게 말하기도 했다.

"이거 할머니가 한 김치 아니지?"


사실 나도 내 딸내미가 내가 만든 이유식을 먹다가 거부하면 그렇게 섭섭하고 슬픈데, 내 딸이 말을 하게 되어 이렇게 내게 말을 한다면 얼마나 얄미울까. 이젠 엄마 마음을 좀 알았으니 그러지 말아야 할 텐데 하면서도 또 말이 곱게 안 나온다.


어쨌거나 외할머니 손맛을 빼닮은 외삼촌이 전라도 막내 외숙모와 함께 만든 알타리 김치. 내가 살다 살다 알타리 하나에 이렇게 감동하여 눈물을 주르륵 흘리는 일을 다 겪다니......


이 눈물의 알타리김치는 당시 둘째 임신과 입덧으로 힘들던 나의 그때를 위로해 준, 맵지만 아삭아삭하면서도 기분 좋은 청량감이다. 말을 굳이 하지 않아도 나를 제일 잘 이해해주고 공감해주는 그런 속 깊은 엄마 같은 맛.  


문득 생각해본다. 나도 우리 딸 워니에게 이런 맛을 선물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마 평생 엄마를 기억하는 소중한 추억이자 맛, 기억, 즐거움 그 모든 것이 될 테니까 말이다. 아, 혹시나 내 딸도 나처럼 내가 한게 아니라고 하려나?


금년에 아흔이 넘으신 외할머니 김장은 친정엄마, 외삼촌과 함께 나도 꼭 함께 하고 싶다고 다시 한 번 말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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