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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단거북이 Jan 27. 2020

용솟음친 화, ‘쓰기’로 조금 다른 풍경 속으로

연꽃 같은 언어로 승화하며

용솟음친 화들

명절을 내가 그리는 대로 보낼 수 없음과 그리는 대로 보내기 위해 내가 내려놓아야 하는 것들에 대해 그렇지 못해 그 사이에서 갈등하며 나는 화를 냈다. 그것은 흡사 엄청난 화산폭발이었다. 그렇게 내려놓는다는 것은 나의 글쓰기에 대한 모독이요, 가고 싶지 않은 교육 철학에 대해 응하는 것이었기에 나는 그 길을 갈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나는 그 길을 가지 않기 위해 나는 무엇을 했는가. 실제로 한 것은 없었다. 성인은 잘 걸리지 않는다는 피로로 인한 중이염을 달게 된 것과 의사가 나에게 절대적으로 쉬라고 권유했음을 핑계로 나는 아이 둘 육아도 남편에게 내팽개친 채로 계속 잠을 잤다. 하루 종일 잠을 잤는데도 피곤하거나 힘들지 않았다.


아마 작년 하반기부터 쉴 새없이 나를 몰아치던 마감이 세 건이 끝났음에 대해 내 몸이 반응한 것이었을 수도 있었다. 대학 시절 매월 있던 신문사 기사 마감에 며칠밤을 새고 조판까지 겨우 마치고 근 이틀을 밥도 먹지 않고 자던 시절이 떠올랐다. 아이를 갖겠다고 대학 졸업 전부터 다니던 풀타임 회사 생활을 멈추고 아무 소음도, 먼지도 없던 집안 공기 속에서 나홀로 내 몸을 눕혀 허공을 맴돌던 시간도 떠올랐다. 잠은 정말 보약이 맞는 것 같다. 중이염에 코맹맹이같던 콧소리와 콧물이 사라졌다. 이따금씩 아파오던 귀도, 아이들이 놀다 싸울 때 귀청이 찢어질 듯 아팠던 귀의 통증도 이젠 크지 않아 숨을 고를 수 있다.



화의 근원을 파헤치다 I - 관계의 미니멀리즘도 필요해!

정리에 관한 책을 읽으며 나의 정리의 물리적 미니멀리즘은 일단락되었지만 실질적인 관계의 미니멀리즘은 실현되고 있지 않음을 깨달았다. 하고 있는 일의 특성상 핸드폰에서 연락처를 지우거나 하는 일들은 실제로 가능한 일은 아니다. 아마 퇴직을 하기 전까지는 그럴 것이다. 약간의 느슨한 연대나 관계가 필요한 일은 언제든지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느슨한 관계를 잘 유지해왔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단호박처럼 끊어낸 관계들이 가끔 생각날 때도 있지만, 어쩌겠는가 나의 성격인 것을......)


미국의 소설가 데이비드 실즈가 자기는 말을 더듬기 때문에 작가가 되었다는데
나는 미련해서 글을 쓰게 된 것 같다. 글쓰기는 나만의 속도로 하고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안전한 수단이고, 욕하거나 탓하지 않고 한 사람을 이해하는 괜찮은 방법이었다. 진흙탕 같은 세상에서 뒹굴더라도 연꽃 같은 언어를 피워 올린다면 삶의 풍경은 바뀔 수도 있다는 것, 미련이 내게 준 선물이다. (출처 : 23p, <쓰기의 말들> 은유)

금년에 글쓰기보다 내가 더 에너지를 쏟고 싶은 일이 있다. 지금의 나에게 글쓰기를 미룬다는 것은 너무도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그보다 이것은 타이밍적인 일이라 짝지와 이야기하며 아쉽게 접은 부분이 있다. 이 상황에서 내가 글을 쓰지 않는다는 것은 무척 고통스러운 일이구나, 나는 글을 써야 살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부쩍 많이 든다. 그때 나는 은유 작가처럼 진흙탕 같은 세상일지라도 연꽃 같은 언어를 피워 올리며 조금은 다른 삶의 풍경을 배경으로 살아가고 싶다. 좋은 영향을 주고 받는 사람들과 함께 길을 걸어가며, 안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과는 조금 거리를 두고 그에 안도하며 살아가고 싶다. 만약 그래도 계속 부딪혀야한다면 이렇게 조용히 글을 적어내려가고 싶다. 연꽃 같은 언어로 불쌍한 중생을 조금은 이해하며, 혹은 부족한 나를 들여다보며 산을 넘어갈 수 있지 않을까.  



화의 근원을 파헤치다 II - 행동하는 자만이 배우기 마련이다! (by 프리드리히 니체)

매일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육아와 일 핑계를 늘 댄다. 하지만 글쓰기에도 워밍업과 준비가 필요한 법이다. 또한 쓰고 또 쓰기가 가능했던 동력은 원고료의 힘이었다고 한다. 나는 이것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 좀더 고민해봐야겠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펜을 든다고 생각이 술술 흘러나오는 경우는 드물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라 어렵고, 그 어수선한 생각의 파편을 보자니 괴롭다. 내 식대로 수영을 글쓰기로 번역해본다. 수영장 가기(책상에 앉기)가 우선이다. 그다음에 입수하기(첫문장 쓰기). 락스 섞인 물을 1.5리터쯤 먹을 각오하기(엉망인 글 토해 내기). 물에 빠졌을 때 구해 줄 수영하는 친구 옆에 두기(글 같이 읽고 다듬기). 다음 날도 반복하기. 모든 배움의 원리는 비슷하지 않을까. 결심의 산물이 아닌 반복을 통한 신체의 느린 변화라는 점에서 말이다. 펜을 움직여야 생각이 솟아나는 것처럼. (출처 : 25p, <쓰기의 말들> 은유)

또한 쓰고 또 쓰기가 가능했던 동력은 원고료의 힘이었다고 한다. 나는 이것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 지금 하는 일 외에 좀더 글과 가까워지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고민해봐야겠다.


여하튼 나는 어찌하였든 일상의 자투리 안에서 한 공정씩 진척시키기 위해, 즉 '틈틈이' 일해 가구 하나를 뚝닥 완성하고 또 그 성취감으로 계속 일을 한 어느 가구 디자이너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은유 작가는 이같은 엄청난 작업량을 만들어온 작업을 모든 창작의 원리와 같다고 보고 있었다.


글쓰기에 투신할 최소 시간 확보하기. 일상의 구조 조정을 권한다. 쥐고 있는 것을 놓아야 그 손으로 다른 것을 잡을 수 있다. (출처 : p39, <쓰기의 말들> 은유)

이를 실천하기 위해 나는 아이 둘과 밖에서 놀고 들어온 남편과 저녁 식사를 마친 뒤, 아이둘과 책상에 앉아 각자 하고 싶은 일에 매진했다. 아이둘도 평소 어지른다고 해주지 못하던 물감놀이를 시원하게 펼쳐주자 엄마의 독서와 메모 활동에 방해를 주지 않고 자신의 일에 몰입했다. 그로 인해 나도 내 스스로와 자꾸 말을 걸어오는 아이들에 대해 관대해졌다. 가끔 아이들의 활동에 칭찬도 해주면서.


사실 최근 내 글쓰기에서의 고민은 연애 초보처럼 끝나지 않아 읽는 것이 고역이 되는 글이 아닌가 하는 점이었다. 평소 어려운 글도 쉽게 쓴다, 어려운 무용도 이해하기 쉽게 자세히 잘 써준다는 평을 듣던 나에게 불어닥친 시련이었다.

적절한 장소에 찍힌 마침표만큼 심장을 강하게 꿰뚫는 무기는 없다. (이사크 바벨)
끝나야 할 때가 언제인지를 아는 낙화 같은 글을 쓰는 연애고수가 되고 싶어서,
자주 되뇐다. 독자는 연인이다. 독자를 지루하게 하지 말자.
(출처 : p53, <쓰기의 말들> 은유)

이 말들을 나는 다시금 되뇌어야겠구나. 진정한 연애고수로 거듭나기 위하여, 수많은 좌절과 언덕을 거쳐왔듯 걸어야할 길임을 인정하고 걸어가자.


그래, 오늘 그래도 화의 근원을 파헤치고, 6개월 넘게 나를 긴장시킨 3건의 마감이 완전히 끝났음을 몸이 증명한 날이구나. 좀더 알맹이를 갖는 글쓰기를 해보자, 그리고 그러한 글쓰기가 가능한 물리적 구조는 만들었으니 이제 시간적 구조도 실제로 만들어 '틈틈이' 채워가보자. 은유 작가의 글쓰기 선생은 독서였다니 다시 나만의 글쓰기 선생님을 찾아가야할 때인 것 같다.


화가 날 때도, 정신이 사나울 때도, 진흙탕 속에 헤매일 때도 독서와 글쓰기를 잊지말자. 연꽃 같은 언어로 승화해나가며 조금은 다른 풍경을 맞이하며 앞으로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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