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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단거북이 Feb 15. 2020

장류진의 <일의 기쁨과 슬픔> 독서록

장류진의 <일의 기쁨과 슬픔>이 화제다. 포인트로 회사 월급을 주는 일이 사실인가에 대한 사실 확인에서부터 순식간에 읽히는 디테일한 심리 묘사와 이야기 전개가 읽는 재미를 준다.



* <잘 살겠습니다> : 결혼식장을 지나며 비로소 보이는 관계

결혼 전 청첩장을 돌리게 되는 시점에 누구나 마주하는 사건이자 심리가 잘 반영되어 있다. 친한 친구나 지인이야 큰 관계가 없지만 역시 문제는 애매모호한 관계 속에서 금전이 오고가며 발생하는 것 같다. 계산적이지 않으려고 하지만 각각의 사람들과의 관계의 깊이가 다르기에 서로의 생각은 다를수밖에 없다. 또한 '비슷한 시기'에 결혼을 하게 되는 애매모호한 관계의 사람들과는 잠재적인 비즈니스 관계가 되기도 한다. 같은 처지(?)에 놓였기에 초대를 할 수도, 안할 수도 없는 애매모호한 관계 속에 놓이는 것이다. 물론 상대방도 마찬가지일테다. 아마 이러한 현실적인 이야기였기에 더욱 흠뻑 빠져 책장을 빠르게 넘겼던 것은 아닐지.

어쩌면 그때의 나는 당연하다고 생각한 생각들이 관계에 따라 계산적으로 느껴지기도, 때론 생각지 못한 관계의 확인에 놀라기도 했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결혼 이후에도 결혼식에 서로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였느냐에 따라 결혼식 이후의 관계가 달라질 수 있음 또한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드러내고 싶지 않아도 결혼식이라는 사회적 관습을 거치는 순간, 자연스럽게 그것은 드러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기억하게 된다. 씁쓸하다.

문득 결혼식 전후 내가 가졌던 생각들이 10년 전이나 스몰 웨딩이 유행하는 최근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을 확인하게 된 것이 씁쓸하다. 순수한 감정을 가진듯하나 3년만에 연락하며 자신의 이득을 아무렇지 않게 취하는 제2의, 제3의 빛나언니 또한 어디 그 한 명 뿐이겠는가.



* <일의 기쁨과 슬픔> : 결혼식장을 지나며 비로소 보이는 관계

실제 존재하는 판교IT, 엔씨소프트, 현재 판교 테크노밸리의 육교, 영어식 이름이나 별명을 쓰는 수평적 회사 문화에 대한 묘사가 리얼하다. 이런 실명 표기가 오히려 사람들에게 더욱 실제 아닌 실제로 느끼게 하며 열광하게 하는 한 요소가 되는 듯하다. 이번 책이 특히 IT업계 사람들에게 급속도로 입소문이 퍼지고 관심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아니었을까.

직장 생활에서 느끼는 갑질, 그로 인해 회사 월급을 포인트로 매달 받으며 그것을 중고시장에 내다팔며 화가 나면서도 어느 순간 인정해버린 삶,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도 아무렇지 않게 넘겨야하는 일들 또한 난무한다. 이해하려고 하면 더 이상해진다는 대사도 인상깊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나의 후쿠오카 가이드>

짝사랑하는 한 남자의 오만한 마음 가득한 사랑, 그 사랑을 능수능란하게 슬쩍 던져버리는 여자.

서로 통한 듯했지만 그렇지 않은, 그렇지만 통한 순간은 잠시 있기도 한, 그런 가운데 직설적이면서도 솔직한, 센 말이 오고간 흥미진진한 단편.



* <다소 늦음>

‘제발 인생을 좀 효율적으로 살아봐. 적어도 남들처럼!”

기승전결과 스토리를 가진 완벽한 2집 앨범이냐 짧은 음원으로 단타로 치고 나가느냐, 그게 음악은 아니지 않냐 외쳐보는 장우의 인생은 세상에서 ‘다소 낮음, 4등급’일 뿐. 빠르게 반응하며 단타로 성공의 공식으로 나아가는 세상 앞에 효율 낮은 인생으로 살 수밖에 없는 장우의 인생이 짠하다.



* <도움의 손길>

가사도우미의 도움을 작년에 일이 한창 바쁠 때 받아본 적이 있는데 마치 내가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으로 후딱 읽었다. 도움의 손길이지만, 아주머니들의 잔꾀를 알아갈 때마다 이 돈을 내고 쓰는 게 나은가 여러 번 괴로워하고 힘들어했던 기억도 난다. 내 돈 쓰고 내가 괴로워하는 모습이 아이러니하기도 했다. 마지막에 서로 합의하고 내지 않기로 한 업체 연회비를 이야기한 아주머니의 마지막 한 방마저 읽으며 왠지 주인공에게 조언을 해주고 싶기도 하고...

사람을 쓴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고 도움의 손길을 받으면서도 늘 청소의 방식을 맞춰주지 않거나 대충하는 도우미들과 이야기해야하는 신경전들이 200% 공감된다.



* <백한번째 이력서와 첫번째 출근길> 

정규직의 기쁨, 첫출근의 설레임과 두려움이 느껴지는 단편이었다. 어렵게 추합(추가합격)으로 출근을 시작하지만 현실은 한 달 월급의 쓰임을 쪼개고 쪼개고 이로인해 하루에 쓸 수 있는 만천 원의 용돈이 산출되고 이로인해 커피를 살지 말지, 택시를 탈지 말지의 심각한 고민도 한다. 자동회전문의 빠른 속도는 내가 처음 다니던 삼성역 무역센터의 회사 출근길 회전문을 떠올리게도 했다. 빠른 속도에, 직장생활을 시작하며 매일 처음 신어보는 하이힐에 적응하느라, 그리고 적은 돈으로 적금을 넣던 기억까지...



* <새벽의 방문자들>

"여자의 두 눈은 모텔을 찾고 있었다."


첫문장이 자극적이었다. 여자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궁금했다가 포털 사이트의 관계사에서 근무하는 여자로 자극적인 스팸성 덧글을 지우는 업무를 하고 있다는 말에 흥미로운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일만 하루종일 전담하는 사람이 있을꺼라고는 생각을 못해봤다. A동과 B동의 같은 호수에 사는 우연의 설정으로 남자들의 민낯을 응시하게 됐다.



* <탐페레 공항>

취준대학생의 여행 동기가 안쓰러웠다. 취준생에게는 아주 도전적이지만, 사회에서는 그저 취업에 준비운동 정도밖에 안되는 일들. 하지만 이에 시간을 보내고 집중할 수 밖에 없는 현실.


그런 가운데 만난 백살쯤 되는 핀란드 노인과의 만남은 아주 인상적일 수밖에. 대학시절 이곳저곳 비행기를 타고 홀로 여행하며 만나고 이야기한 사람들도 문득 떠올랐다. 그들은 지금쯤 무엇을 하고 있을까. 짧은 만남이지만 깊은 인상을 남긴 그들, 그것이 나를 계속 여행하게 했었다.


하지만 이런 가운데 늘 취준생과 직장인의 현실을 인식하는 냉정함이 이야기되며 낭만에 빠졌다 현실에 돌아왔다를 반복한다. 우리는 누구나 이런 현실 속에서 살아가고 무엇인가 중요한 것을 잊고 사는건 아닌지. 그 중요한 것이 추억일수도, 현실일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장류진은 계속 반복하는 것 같다.




전체적으로 장류진의 소설은 나의 취준생 시절, 대학시절, 풀타임 잡 직장인으로 살아가던 때를 추억하게 혹은 조금 더 깊게 상상하게 하는 글들이 많았다. 삶과 뗄레야 뗄 수 없는 일은 기쁨과 슬픔을 준다는 것을 여러 각도에서 느끼게 된다.


다만 오랜만에 소설을 읽었는데 기승전결의 어떤 완결성을 지녔다기보다는 뭔가 결말이 좀 허무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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