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는 바쁘게 인생을 만들어가던, 그리고 달리게 하던 나를 멈추어놓았다.
그게 다인 줄 알았다.
코로나, 바쁜 걸음을 멈추게 하다.
습관처럼 계획을 세우고 달리는 본능을 가졌다. 나는 쉬는 것에도 계획이 필요하다는 것을 어디선가 들었음에도 막상 쉬는 것, 멍때리기를 일상에 넣는 것을 어려워한다. 자꾸만 세워지는 계획들을 코로나는 계속 취소했다. 그래도 혹시나 하고 계획을 세우면 또 코로나는 취소시켰다. 그렇게 나의 일상은 집 주변으로 정리가 되어갔다.
멍 때리고 누워있거나 쉬는 시간도 늘었다. 그 때문에 한 두 주는 점점 더 늘어지기만 했다. 그러나 그런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괜찮은 것 같다. 그 시간이 늘어나자 나는 아이에게 평소 귀찮다는 이유로, 당장 필요하지 않다는 이유로 부서진 장난감을 고쳐준다거나 부러진 젓가락을 다시 붙인다거나 리본과 머리핀을 다시 붙인다거나 하는 일들을 20분도 안되는 시간 안에 모두 해결해줄 수 있었다. 이게 뭐라고, 마음의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해주지 못한 것들이었다.
코로나, 동네 놀이터를 살아나게 하다.
노인 인구가 많은 우리 동네에는 늘 놀이터가 비어 있었다. 어린이집 하원 시간에 잠시 붐비는 것 빼고는 시소와 그네가 다인 놀이터는 한산하기 그지 없었다. 그런데 집에만 있다가 지친 아이들, 초등학교의 등원 연기로 갈 곳이 없어진 아이들이 놀이터로 나왔다. 마스크를 하고 나왔지만 우리 동네에 우리 아이의 또래, 한두살 위 아이들이 생각보다 많았음을 느끼는 시간이 되었다. 코로나로 오랫동안 함께 놀 수는 없지만 함께 동네에서 코로나 일상을 지내며 이겨내고 있다는 연대감을 느끼며 다시 힘낼 수 있었다.
코로나, 마을을 걷게 하다.
이곳에 이사를 온지 벌써 3년째다. 아이를 자연과 가까운, 매일 공원이고 산이고 나들이를 하는 어린이집에 보내고 있음에도 정작 부모인 나는 아이만큼 주변을 걷지 못했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가 있는 동안 나는 해야하는 일들이나 내가 가야만 하는 꿈길을 걷기에 바빴다. 그리고 주말이 되면 아이들과 어디론가 나가길 망설이지 않았다. 그렇지 않으면 피곤하다는 이유로 집순이의 하루를 보내기 일쑤였다.
하지만 아이와 집에서 보내야하면서 나는 집 주변을 배회하고 아이들과 비로소 마을을 걷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잘 더 잘 걷고 더 많이 활발해졌고 마을과 익숙해져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아이들이 나를 이곳저곳으로 안내를 했고 나는 따라다녔고 아이들은 신나했다. 아이들의 웃음이 더 내 심장을 더 뛰게 하고 물들였다.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할 때 되도록 만보 걷기 목표 달성을 위해 예전보다 더 걷는다. 덕분에 운전을 한동안 안했더니 빠떼리가 방전이 되는 사태까지 왔다. 그래도 걷기를 더 많이 했다는 생각에 뿌듯하다.
코로나, 아이가 두발자전거를 탈 수 있게 하다.
아이가 자전거를 타는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바라볼 수 있었다. 아이가 자전거를 타고 싶어해서 자전거를 꺼냈고 마음먹고 두 발 자전거를 타는 법을 설명해줬다. 아이는 한두시간만에 두발자전거를 바로 탔고 다음날 무리없이 혼자 달렸고 한두주가 지나 내리막길도 수월하게 내려왔다. 첫째 아이 채원이가 7살이었고 봄이었다. 아이는 매일의 느는 두발자전거 실력에 성취감을 느꼈고 나는 아이의 환희를 가까이서 함께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둘째 아이는 누나가 두발자전거를 타는 틈새, 네발자전거를 차지하곤 무척 애지중지하며 탔다. 둘째 아이도 늘 누나와 함께 속도가 늘었고 두 아이가 자전거를 탈 때 함께 옆에서 걷던 나였지만, 이젠 두 아이는 어느새 저 앞으로 한참 달려 보이질 않는다. 아이의 성장이 내 눈에 또렷이 들어왔다.
코로나, 미세먼지를 조금은 걷어냈다.
작년 3월은 참 어두웠고 난감했다. 미세먼지가 심해 하늘은 늘 우중충했고 아이들은 해를 보고도 밖에서 뛰어놀 수 없었다. 공장은 돌아가지 않게 되고 하늘은 맑아졌고 아이들은 자연 속에서 더 많은 날을 뛰놀며 누릴 수 있었다. 한편 지구는 이 때문에 인공적으로 주어지는 폭력에서 벗어나 같이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는 시간을 조금씩 확보해가고 있다. 지구가, 그리고 우리가 건강해지고 있다.
코로나, 집밥 기술을 늘게 했다.
워킹맘에게 늘 집밥은 요원한 숙제와도 같다. 프리랜서로 자유로운 직업을 가졌지만 자유였기에 더 어렵게도 느껴진 집밥. 너무 피로할 때는 외식을 하거나 배달을 시켜먹기도 하였지만 이젠 잠깐 힘을 내면 후딱 한 끼 아이들이 배부르게 먹을 수 있을만큼 만들어낼 수 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조금 내려놓고 대범해졌달까.
식사를 준비하는 순서도 디테일하게 많이 달라졌다. 일단 밥을 앉힌다. 밥이 되는 동안 야채를 썰고 국을 끓이거나 단백질 요리를 굽는다. 샐러드도 조금 더 정성들여 만들었으며 장어구이, 닭꼬치구이, 간장 닭볶음탕, 카프레제, 고르곤졸라피자, 루꼴라피자, 공룡뼈쿠키 등 새로운 나의 레시피를 쌓아갈 수 있었다.
예전의 나는 늘 바쁜 일상에 쫓겨 한참 국을 만들고 반찬을 만들다가 뒤늦게 밥을 앉히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1부터 시작하듯 밥을 앉히면서 한숨을 쉬었던 적이 많았다. 그리고 밥을 먼저 만들기 시작해도 나는 밥이 다 되는 순간에 (쾌속이 아니었음에도) 식사 준비가 끝나지 않은 순간들이 많았다.
하지만 조금씩 요리에도 어려움이 덜하고 도전의식을 샘솟게 하며 인터넷 레시피에 집착하지 않아도 '대충 이 정도로 간'을 하면 되겠지?라는 직관과 함께 그 요리 레시피는 이렇게 않을까 하는 레시피 적중률도 높아졌다. 자꾸 집밥을 하다보니 이뤄낸 것들이다. 이젠 거의 외식을 하지 않고 있고 외식을 하자는 짝지의 말에도, 후딱 식사 한 끼 차려낸다. 놀란 짝지의 눈과 식사하는 모습은 나의 어깨 뽕을 으쓱으쓱하게 한다.
코로나, 함께 코로나를 이겨나가는 이웃을 발견하게 했다.
함께 밥을 먹으며 한 끼 수월하게 보내거나 한 끼 대접하며 매 식사를 준비해야하는 부담감을 줄였다. 그리고 지루한 코로나 일상을 적은 수의 사람들과 집에서 함께하며, 때론 자연에서 함께하며 이겨낼 수 있었다. 많아진 시간 덕분에 스치던 이웃을 더 관찰하고 더 이야기나눌 수 있었다. 코로나를 지혜롭게 이겨내고 일상을 견뎌내며 살아가는 이웃을 보며 나를 다시 다잡기도 했다.
그렇지만 코로나가 주는 모든 일상이 행복한 것만은 아니었다. 집밥을 세 끼 해야한다거나 청소와 정리를 예전보다 자주 한다거나 그래서 몸이 피곤하다거나 하는 일들도 일어났다. 하기로 했던 일들도 아쉽게 취소가 되는 일도 많았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아이들과 늘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지만 어느새 나만의 시간이 그리워졌다. 그리고 내가 원래 가려던 길을 잘 가지 못하고 있었다. 잠시 슬럼프에 빠졌고 사람들을 간간히 만나던 일들도 미루고만 싶었다. 그렇게 땅속으로, 땅속으로 나를 파고들게 했다.
코로나, 일상의 소중함을, 일상을 잘 이겨내며 준비하게 해줬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보니 다시 나를 추스리고 다시 일어서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잠시 어린이집 긴급보육으로 아이들을 맡기며 다시 시간을 내보지만 조금은 지친 나를 추스리는 시간도 필요하다. 잠시 또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싶다. 하지만 내가 벌려놓은 일들은 또 나를 세상 속으로 자꾸 불러들인다. 그 초대에 응할까, 말까 망설이다가도 또 나는 손을 내민다. (한편으로 이런 일이 언제 끝날까 싶다가도 감사하다가도 또 잠시 나만의 동굴 속에 들어가 있고 싶다가도. 내적 갈등이 늘 있다. 어쩌면 이게 문제일지도!)
내가 가고 싶고 그래야만 하는 일들을 잠시 멈추고 올해 4월과 5월의 일에 집중해보기로 한다.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내가 선택한 일이다. 그리고 결과야 어떻든 최선을 다해 그 과정에 임해보고자 한다.
그리고 나는 이제 그게 상관없이 매일 조금씩 쓰고 읽고 쓰고 읽고를 반복하기로 했다. 단 한 단어라도, 그저 생각 한 조각이라도, 한 문장이라도...... 괜찮다.
이 지루한 코로나 일상!
그러나 이 코로나의 지루한 일상을 이겨내가듯 나는 글을 읽고 써야겠다.
"이 잔혹한 육체노동!"
힘을 조금 빼고 단순하게 그저 매일 조금씩 가보기로!
코로나는 일상을 이겨내는 지혜로운 방법을 인간에게 가르쳐주고 있다.
그리고 신음하는 지구를 살리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