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복권.
예술작품을 가까이한다는 건 교양을 기르는 일인가. 시대를 넘나드는 멋진 결과물 앞에 흥분하지 않는 것을 으스대는 사람이 있다. 이 정도는 많이 봐 왔다면서 말이다. 많은 것을 보았다는 말 대신에 취향을 앞세우면 이해라도 하련만, 그렇지도 않다. 그런 이는 내심, 보아온 것 중 최고를 결정해놓은 사람이다. 실은 그런 말을 들은 건 나였다.
편협한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를, 예술 작품을 볼 때마다 부쩍 겪는다. 어쩌다 우연히 마주친 작품일 뿐인데 그 앞에 비교하고 순위를 매기고 있는 걸 보면 치가 떨린다. 그리고 그걸 드러내지 않으면 견딜 수 없어서 추하다. 나는 고야를 그리도 폄하해 놓곤 그의 전성기 시절 작품을 나중에야 보고 말을 번복해야 했다. 참 잘 그리네.
인간이 예술을 함에 있어서는 내가 과연 예술의 분류에 드는 글쟁이인지 재확인하게 된다. 예술이라기보다 기교에 가까운 짓에 불과하니까 나의 이런 글이 누군가에게 사랑받는다면 의심이 앞선다. ‘이딴 게? 정말로?’ 그래서 확인하자고 덤비면 사람들의 입에서 까마득히 높은 지점을 일컫지는 않는다. 역시 그럼 그렇지. 그래, 나도 진실로 잘 쓰고 잘 찍고 싶다. 영광스러움을 갖고 싶단 욕심이 내면에 있는 셈이다.
또 복권 사요 형?
복권을 자주 산다. 한국에 있을 땐 거의 매주 까먹지 않고 산다. 그게 내 삶에 유일한 낙이 아니라는 것에 감사한다. 어쩌다 빼먹은 날에도 당첨금을 확인하고 ‘만일 샀더라면.’하는 생각도 한다. 좀처럼 아쉬움을 갖지 않는 사람이라 스스로를 생각하지만 갖지 못한 기회에 대해서는 그렇지도 않다. 아는 동생이 복권을 사는 내게 한심하다는 듯 말할 때, 나는 가끔 같은 번호로 한 장을 더 구매해 건네기도 한다. 그럼 느닷없이 기뻐하는 표정을 난 잘 잡아낸다.
당첨되면 나 잊지 마라.
어느 형은 내게 매주 그렇게 말한다. 그래서 난 복권을 살 때마다 그 형을 떠올리게 된다. 거의 매주마다 누군가를 떠올릴 수 있는 매개가 복권이라면 응당 지불할 가치가 있지. 그리하여 종종 “형도 사면 되잖아?”라 대꾸하면 곧바로 답이 온다. “나는 복권을 사지 않아서 당첨 확률이 0%야. 하지만 너는 복권 구매를 실행하잖아. 없는 것과 조금이라도 있는 건 달라. 넌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갖고 있는 셈이지.” 복권을 살 때마다 그 말을 떠올린다.
예술은 조금 비슷한 면이 있다. 실은, 그깟 예술을 한답시고 돈 벌 시간을 줄이고 싶은 마음에 사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복권이 종잇조각으로 찢길 것을 알기에 일주일은 조용히 기대감에 부풀 수 있다. 가능성이라는 건 다른 얘기다. 드물지만 모처럼 복권을 사서 기다리는 사람이라면 이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형이 말했듯 가능성이라는 건 실행하는 자에게 나타난다. 모든 분야의 예술이 마찬가지고. 한 번이라도 했더라면, 더 나아가 꾸준히 소일거리처럼 지속할 수 있다면 재능이다. 아주 천부적인 재능. 시도할 용기라는 건 생각보다 쉬이 오지 않는다.
높게 치하하는 부분은 역시 꾸준함이다. 별안간 마음에 바람이 일어 행위가 깃드는 인간이 있는가 하면, 타성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시작했다 재미가 들리는 인간도 있는 법이다. 이유야 어쨌든 계속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서 인간은 예술을 추구할 수 있다. 보는 사람도 마음 언저리, 체한 듯 얹혀있는 막막함을 해소하고자 타인의 예술 행위를 들여다보게 되고.
복권의 가능성을 이야기했으나 그 가능성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지 숫자로 확인하고 나면, 제로나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닫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복권을 산다. 사진을 찍고 여행을 하고 글을 쓴다. 책을 읽는다. 성취를 야기하는 짓. 발판은 시도에서 온다고 믿기 때문에.
스페인을 떠나며 또 하릴없이 로또를 사는 날 보고, 동생은 지치지도 않냐며 조금 날 선 말투로 이야기했다. 나는 마냥 웃고 말았다. 그리고 한 장을 더 달라고 해서 동생에게 건넸다. 이건 우리가 떠나는 날짜로 찍힌 기념이야. 당첨되면 나 잊지 말아라.
아니 될 리가 없잖아요 형. 똑똑한 사람이 왜 그래요.
인간이 지성과 별도로 얼마나 멍청한 짓을 저지르는지 봐, 비효율과 비합리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거. 이게 인간이라는 예술이야.
@b__ak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