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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Jun 07. 2023

비행기를 놓치는 행운

난생처음 놓친 비행기가 데리고 간 곳.

다합에서 면면을 익힌 사람들 대부분은 나보다 앞서 떠났다.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들은 쉽게 행선지를 정했다. 집, 혹은 어딘가를 더 거친 뒤 집. 주소지가 없는 나는 다음 행선지를 고르기가 어려웠다. 이집트에서는 여러 모로 갈 곳이 적었다. 허브 역할을 하는 나라가 아닌 데다 늘 그렇듯 내 지갑은 가벼워서 저렴한 곳이 내가 머물 곳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집트 비자가 만료되기 일주일 전에 비로소 골라낸 곳은 태국이었다. 현지인 친구 몇이 살고 있었고 가보지 않은 지역을 탐방하고 싶기도 했다.


먼저 떠난 사람들에게 다합으로부터 카이로까지 걸리는 시간을 물었더니 각양각색의 대답이 나왔다. 15시간에서 13시간. 6시간과 8시간. 광범위한 오차 탓에 어느 말을 믿어야 할지 몰랐으나 나는 운이 좋을 것이라는 오만에 빠져 당일 아침 일찍 출발하는 버스를 골랐다. 태국행 비행기는 저녁에 출발했고, 카이로에서 어떤 기억을 더 남겨두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시간상으론 알맞게 도착해 비행기에 오를 터였다. 그리고 언제나 오만은 오산을 낳았다.



떠난 사람과 남은 사람 사이에서 이윽고 떠나는 사람의 순서가 되어 승합차에 올랐다. 전날 밤, 노파심에 들렀던 버스 터미널에선 이집트 최고의 드라이버라 칭하는 운전기사를 만났다. 그는 자신이 6시간에 카이로까지 주파한 바로 그 드라이버라며, 비행 사정을 설명한 내게 한사코 걱정 말라며 으스댔었다. 그는 자신감 그대로 달리기 시작했다. 끝없는 광야를 시속 160km의 속도에서 줄이지 않고 밟다, 몇 번의 휴게시간을 갖고 그때까진 나조차 여유로웠다. 수에즈 운하에 도착했다.


낱낱이 짐 검사를 하는 구역이라 지붕에 매달아 둔 배낭을 내리니 슬리퍼가 사라져 있었다. 바람에 날아갔나 봐. 검문소의 경찰들은 신발이 날아가서 허망한 나를 달래며 짐검사를 대충 마무리하고 담배를 건네왔다. 사소한 해프닝이었다. 제시간에 갈 수 있다면 그깟 슬리퍼쯤이야 날아가도 문제없다는 생각이었으니. 차량은 운하를 지나기 위해 긴 해저터널을 건넌다. 진짜 문제는 해저터널에 진입한 뒤에야 터졌다.



끝이 보이지 않은 터널에 들어서니 누군가가 소리를 질렀다. 같이 탑승한 여자 승객 둘의 아랍어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는데, 운전기사는 난처한 듯 화를 내기 시작했다. 화장실이 급한 걸까, 아니면 나처럼 검문소에서 어떤 물건을 잃어버린 걸까.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의 말을 듣자 하니 그들은 내릴 곳을 놓쳤다고 한다. 멍청하게도 말이다. 해저터널은 족히 20분은 넘게 달려야만 했고 전화조차 터지지 않는 곳이라 그들은 계속 소리만 질러댔다.


운하 반대편에 이르러서야 승합차가 멈추고 여자 둘은 내렸다. 나의 상식에선 그렇게 두고 갔으면 될 일이었으나 고속도로 갓길 한 편에 여자 둘을 두고 가는 게 무척 위험한 일이라며 자신들이 부른 택시가 올 때까지 기다리라는 요구를 하기 시작했다. 운전기사도, 다른 손님들도 화를 내기 시작했다. 그들의 멍청함에 모두가 피해를 입어야 하는지, 가장 난처한 것은 나였다. 비행시간은 앞으로 3시간이 남았으며 국제선 카운터가 닫히는 시간까지 고려하면 2시간. 카이로까진 1시간 정도 남았으나 드라이버의 실력으로 40분 정도에 끊을 수도 있을지 모른다. 변수는 카이로의 트래픽이다. 악명 높은 교통체증을 쉽게 벗어날 수 있을까. 나는 결국 전화를 걸어야 했다.



와픽은 다합에서 나와 함께 방을 쓴 친구였다. 외국계 기업에서 일하는 그가 새벽에 통화를 하며 일하는 탓에 매일같이 날 보며 미안해했었는데, 나 역시 책을 쓰느라 신경 쓰이지 않았다. 카이로로 돌아가기 전날 그간의 미안함을 보상하듯 거한 음식과 술을 샀지만 어떤 문제라도 생기면 자신에게 연락하라는 번호만큼, 작금의 상황 앞에 대단한 카드는 있지 않았다. 그의 번호를 찾아 통화 버튼을 눌렀다.


와픽, 나야 박하. 지금 이런 문제가 생겼어. 비행기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고. 반가움도 잠시 와픽은 운전기사에게 전화를 바꿔달라고 하더니 곧장 해결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방법은 이랬다. 일단 멍청이들을 택시 태워 보낸 뒤에 카이로에 진입하면 어느 지점에 와픽이 나를 태우러 나오겠다는 것이었다. 터미널에 들르지 않고 와픽의 차로 갈아탄 뒤 곧장 카이로 국제공항으로. 그럴싸한 작전에 흥분하여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저 멍청이들의 택시가 너무도 오래 걸린 것을 빼면.


계기판은 180km를 가리키고 있었다. 나머지 승객들은 초조한 내 모습을 보고 친절하게 굴었다. ‘신의 가호가 함께 하기를’, ‘비행기를 따라잡을 수 있기를’, ‘우주가 우릴 돕기를’. 하나같이 ‘걱정 말고 자신을 믿으라’는 말을 하는 걸 보아하니 그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이건 이집트 사람들의 입버릇일 수도 있겠구나. 시간은 맥없이 흐르고 있었다. 자포자기에 이르러 실성한 듯 웃고 있었다. 어디 보자, 내가 비행기를 탄 횟수가 얼마나 될까. 아주 적게 잡아도 150회는 넘을 텐데 놓친 적이 없는 것도 이상하다. 이제 한 번쯤 놓칠 때가 됐지.


와픽의 차로 배낭을 던지듯 탄 뒤 그와 인사를 하기도 전에 액셀을 꾹 밟아 굉음이 났다. 그는 선글라스를 끼고 준비한 듯 인디아나 존스 ost를 틀었다. 그 상황에 폭소가 터져서 웃다가, 공항에 도착하여 그는 말했다. 준비가 되었다면 잘 가고, 아니라면 주차장으로 나와. 기다릴 테니. 신의 가호가 함께 하기를. 다급하게 들어간 카운터엔 야속하게도 청소부가 청소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국제선 비행기를 놓친 심정을 아는가? 국내선이야 다른 비행기를 알아보기도 수월하거니와 평일이면 큰 부담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국제선은 다르다. 더구나 한국 출발이 아닌 타국에서 타국으로 향하는 국제선을 놓친 기분이란. 예상은 했지만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나는 따질 곳을 생각하며 돌아 나왔다. 버스회사에 따져야 할까, 아니면 내릴 곳을 놓친 멍청이들에게 화를 내야 할까. 다 무슨 소용일까. 비행기는 이미 떠났는걸. 담배를 문 와픽에게 손을 흔들며 다가갔다.


유독 통제력을 잃는 부분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나는, 이번 일을 겪고 보니 이미 지나버린 것에 후회하는 타입은 아니었다. 그보다 피해를 최소화할 방법을 강구했다. 와픽이 짐을 맡아주는 사이 항공사 센터로 가서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방금 비행기를 놓쳤는데 환불이 가능할까? 스스로 생각해 봐도 어처구니없는 질문이었다. 가능한 싼 가격으로 예매를 하면 늘 따라붙는 단어 ‘취소 및 환불불가’가 뇌리에 스쳤으니까. 그리고 오만 항공의 직원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응 전액 환불 가능해.



왜 환불을 해줘?

귀를 의심하다가 따져 묻는 건 내 쪽이 되었다. 이상한 모양새였지만 그럼에도 이상한 일이었다. 보통 환불이 어렵다는 항공사랑 싸울 각오를 하는데 어째서 환불을 해주느냐 따지고 있으니. 나는 최저가 항공권을 샀어, 비행기도 내 실수로 놓쳤고. 일부 환불쯤이야 운 좋다고 여기겠지만 전액환불이라니 뭔가 이상하잖아. 아무튼 환불된다니까? 아냐, 아냐... 이건 뭔가 이상해. 번거롭겠지만 예약 센터에 확인해 줘. 못 믿겠어.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아랍어를 거치고 난 뒤에도 결과는 같았다. 전액환불. 이름만 아는 나라 오만에게 무한한 감사를.


직원은 영어를 잘하지 못 했다. 20분가량 실랑이를 하다 알아낸 규정으로 내 의문은 해소되었다. 사건이 발생한 오늘은 22년 6월 5일. 내가 티켓팅을 한 날은 5월 31일. 출발날짜가 어쨌든, 오만 항공의 규정상으로 5월 31일까지 비성수기이며 6월 1일부터 성수기에 돌입하기에 티켓팅 날짜 기준으로 비성수기인 경우 전액환불이 된다는 말이었다. 이 행운이 믿을 수 없어 감격을 하려는 찰나, 금액이 언제 반환될지 기약할 수 없다는 사실은 다시 날 불안케 했다. 인간은 이리도 간사하다. 그는 나의 의중을 알았는지 자신의 명함을 내밀며 말했다. 환불은 오래 걸릴지도 몰라, 한 달이 지나도 환불이 되지 않으면 내게 반드시 연락해. 바로 해결해 줄게.


와픽과 함께 공항을 나서서 악명 높은 카이로 시내로 들어왔다. 숙소를 잡고 비행기를 새로 알아보고. 비자는 오늘로 끝인데 또 어쩌나. 비행기를 놓치는 사고로 인해 수습해야 할 일이 태산이었다. 그보다 돈이 없었다. 비행기를 타고 떠날 생각이었으니 내겐 현금이 한 푼도 남지 않았다. 와픽은 나를 위해 숙소를 알아보고 자신이 숙박비를 치른 뒤 지갑에 든 현금을 모조리 꺼내 건넸다.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이유를 대며 이것이 자신의 카르마라고 했다. 내일 오후에 데리러 올게. 아무 걱정하지 말고 쉬어. 말이 통하지 않으면 언제든 내게 전화를 걸어. 그의 진짜 종교가 어떻든 간에 나는 피로감을 못 이기고 깊은 잠에 들었다. 비행기를 놓치는 행운을 깨달은 건 시간이 오래 지난 뒤였다.






@b__a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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