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과 팔 굽혀 펴기.
치앙마이행 열차는 밤새 달렸다. 일전에 시베리아 횡단열차와 같은 구조로, 그리고 인도에서의 3등 칸과 같은 구조로 되어있는 열차는 안락했다. 실은 안락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적어도 냉방 덕에 쾌적한 열차 내부의 공기는 남국의 습기를 피하기에 제격이었으니까. 태국을 여행했던 사람들의 입에서 치앙마이라는 도시는 늘 거론되었다. 몇 번의 태국 방문에도 불구하고 가지 않았던 것은 나뿐이었을 만큼. 태국 관광객의 대다수는 둘의 타입으로 나뉘었다. 치앙마이와 빠이 같은 북부를 예찬하는 자와 파타야, 푸껫 같은 남부 해안지대를 예찬하는 자들.
북부를 말하는 사람들은 대개 조용한 사람들이었다. 파티 같은 분위기를 즐기기보다 사색에 비율을 더욱 할애하는 이들 말이다. 무척 궁금했다. 치앙마이는 어떤 매력이 있기에 내륙임에도 불구하고 종종 귓가에 맴도는가. 여전히 출판 원고를 마무리하지 못한 나는 치앙마이에서 당분간 머물 생각이었다. 조금 지내보고, 나와 맞지 않으면 가차 없이 넘어갈 생각도 물론 있었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만난 건, 로마에서 만난 조이누나였다. 솔직한 심정을 말하자면 조이 누나와 나는 결이 맞지 않았다. 늘 활기찬 사람과의 조우는 힘이 달린다. 이탈리아를 너무 사랑해서 이태리어를 배우고, 비자 때문에 잠시 태국에 왔다가는 것으로 일생을 영위하는 누나에게 말을 빌리자면 치앙마이는 아주 괜찮은 장소라 했다. 비자를 받기 유연하고 오랜 체류에도 값이 저렴하며, 인프라도 충분한 도시.
누나는 나의 집 구하기에 적극적으로 도움을 줬다. 할 일이 딱히 없다는 이유였지만 집을 알아보는 일 자체가 재미라던가. 치앙마이는 생각 외로 렌트가 활성화된 도시였다. 알고 보니 코워킹 스페이스로 입지가 엄청난 도시였다. 즐길거리가 넉넉하고 누나의 말대로 체류비가 적으며 인터넷과 카페 등 여러 인프라가 충분했으니까. 이곳 외국인들의 일과는 엇비슷했다. 아침 일찍 저마다 노트북이며 태블릿을 들고 나와 카페에서 일을 한 뒤, 점심쯤부터 일을 마치고 각자의 시간을 보낸다. 음주, 수영, 산책, 공연 등등. 프리랜서들이 넘치는 곳이기에 렌트 사업이 흥한 도시.
한 달과 세 달, 그리고 반년. 1년까지. 길어질수록 값이 점점 내려가는 렌트비와 그 외 부차적인 추가 서비스에 정신이 없다가 나는 나에게 맞는 한 달 렌트를 시도하기로 했다. 세 달짜리 태국 비자에서 그 이상의 시간을 내긴 어렵기도 하고. 코로나 이후의 회복을 꾀하는 중인 치앙마이는 렌트 값이 저렴했다. 열 군데 이상을 돌아다니다 가장 좋은 조건의 집을 14만 원가량에 빌렸다. 수영장과 정원이 딸린 집이었다. 집주인 피터는 어디서에나 들을 법한 말을 했다. “특별히 이 가격에 주는 것이니 많이 홍보해 줘.” 물론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던 나는 2년이 지난 지금에야 이런 글을 쓰지만.
확실히 방콕에 비해 치앙마이는 식비가 저렴했다. 재료를 살 바에야 바깥에서 해결하는 편이 저렴했고, 그마저도 현지인들이 가는(영어 메뉴조차 없는) 식당이 더더욱 쌌다. 한 끼 평균 1000원이었으니 얼마나 저렴했던 걸까. 이런 환경 속에 한 달이라는 시간을 허비하며 낭비하지 않기란 어려울 것이었다. 루틴을 만들어야만 했다.
팔 굽혀 펴기와 스쿼트, 플랭크. 그리고 수영.
식단이라고 하기에도 어려운 1일 1식을 몇 년 유지하며 느낀 건, 몸이 따라오기 위해 들여야 하는 시간이 필요함을 뜻했다. 한 달이라는 시간을 올곧게 흘려내기 위해서 새로 시작하는 습관은 팔 굽혀 펴기와 스쿼트, 플랭크였다. 글을 쓰며 마냥 책상 앞에 하루를 앉아있기에 몸이 굳는 게 느껴져서 그랬다. 팔 굽혀 펴기는 한 번에 30개를 하다가, 50개를 하다가, 80개까지 늘었다. 한 달이라는 시간이었다. 마찬가지로 스쿼트와 플랭크도 늘어가는 게 느껴졌다.
여행을 하며 중요한 것은 체력이다. 늘 체력에 자신이 있던 나는 운동을 게을리했고, 돌아다니는 것으로 운동이 된다고 착각했던 것 같다. 몸이 축나며 견디고 있는 걸 꿈에도 모른 체. 그래도 마지막 자존심을 빌려 말하건대, 기본 체력은 확보되어 있었다. 고된 여행이 영 볼품없는 시간은 아니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운동을 한다고 쓸 돈도, 이리저리 이동하며 할 수 있는 운동의 조건을 맞추기 위해 고른 세 개는 내 근력을 충분히 올려주었다.
다음으로, 이왕 수영장이 있는 집을 구한 김에 해보기로 한 것은 수영이었다. 물을 무서워하는 사람이 수영을 하기란 쉽지 않은데 내가 그런 편이었다. 발이 닿지 않는 곳에서의 물장구는 결코 하지 않으려 했다. 수영을 한다면 두려움이 사라지려나 싶은 의문은 일주일 간 아침저녁으로 수영장 물을 먹고 게워내며 확인할 수 있었다. 인간은 두려움에 빠지면 모르던 능력도 깨어난다.
일부러 애매하게 나보다 키가 높은(그러나 결코 죽지는 않을 것만 같은 깊이에서) 곳에서 수영을 했다. 수영이라기보다 허우적거림에 가까웠는데 같은 숙소에 머무는 외국인들은 처음에 장난인 줄 알았다고 한다. 옆 방에 머무는 잭이 수영장 한편에서 담배를 피우며 웃다가, 내가 물을 뱉어내며 미친 듯이 물을 게워내자 당장 뛰어든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만큼 꼴이 우스웠다는 말이니까.
잭은 수영을 못하면서 왜 깊은 곳에 들어갔냐 나를 질타했는데, 나는 수영을 하지 못하는 내 몸이 수영을 깨우치려면 물도 여러 번 먹어야 하지 않겠느냐 되물었다. 그나마 가라앉아도 뛰면 금세 숨을 들이켤 수 있는 깊이여서 죽지는 않겠거니 했다고. 잭은 며칠 나의 선생이 되어주었다. 몸에 힘을 빼야 몸을 이끌고 나갈 수 있다고 했다. 뒤로 누워 물에 뜨는 것을 쉽게 할 수 있던 날 보고 그는 다시금 말했다. 그래, 그렇게 힘을 빼면 나아갈 수 있어.
한 달 뒤, 이곳에서 이미 반년을 지낸 잭과 헤어지기 전에 나는 고작 15미터쯤 쉬지 않고 헤엄칠 수 있게 되었다. 더 나아가려면 시간이 필요했으나 헤엄은 그리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잭과 수영을 하고 담배를 피우고 그간 나는 책의 원고를 완성하여 제출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거기다 팔 굽혀 펴기는 꽤 많이 늘었다고도 말했다.
결국 수영은 배우지 못한 것 같아.
아직도 물이 무서워?
생각해 보니 나는 이제 수영을 하자는 말에 큰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혼자서도 나서서 수영을 하러 갈까 생각할 만큼 물놀이가 좋아졌다. 곰곰 돌이켜보니 새로운 습관은 이미 만들어진 셈이었다.
@b__ak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