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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제의 딸 Aug 09. 2020

같은 숫자 아래, 다른 생각

02. 인생은 디딤돌

참 신기하다. 사람의 생각은 다양한데, 시간은 같은 숫자가 하루에 두 번씩이나 돌아간다.


비가 그친 어느 이른 저녁, 충무로의 한 카페. 

나는 이곳에서 5년 만에 동기를 만나기로 했다. 사실 마냥 안부를 주고받는 순수한 만남이 아닌, 단편영화의 내레이션을 부탁하기 위한, 조금은 음흉한 만남이었다. 


약속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한 나는 동기에게 보여줄 영상을 한 번 더 체크하고, 부탁할 말을 다양한 어조로 곱씹어 본다. 크나큰 카페에서 4인 좌석에 혼자 덩그러니 앉아 중얼거리는 모습이 딱, ‘혹시 시간 괜찮으세요? 인상이 참 좋으세요. 도를 아세요?’ 다. 


도를 닦는 나를 방해하는 뒷좌석의 여학생 둘. 


-나 요즘 썸 타잖아. 

-타로 봐야지! 봤어?

-벌써 봤지!


아, 타로를 보는데 주제가 ‘썸’이라... 직업, 구직, 결혼이 아닌 ‘썸’이라... 참 풋풋하다. 


나는 오랜만에 만나는 동기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예의 있고, 차분하게 나의 요구를 전달하려 다양한 어조를 내뿜는 중인데, 저렇게 발랄한 직선의 하이톤으로 썸을 논하다니...


동기가 도착했다. 뜨거운 포옹을 나누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평소 친했던 동기였던 터라 나의 마음과 요구조건을 아주 잘 포용해주었다. 마구잡이로 본론을 쏟아내는데, 뒷좌석의 여학생 둘은 어떡하면 그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지에 대해 열띤 토론 중이다. 


참 신기하다. 같은 숫자 아래, 이렇게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니. 

나도 지금 썸같은 귀여운 걱정하고 싶다니까!


어쨌든 나는 녹음을 잘 성공해야지! 너희는 꼭 연애 성공해라! 언니가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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