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인생은 디딤돌
교수님과의 만남은 언제나 명쾌하다.
전 직장인 방송국에서 다시 일을 해줄 수 있겠냐는 제안을 받은 나. 전공인 영화를 다시 하려는 계획이 있었던 터라, 고민이 한가득인 나는 그렇게 교수님을 찾았다. 제안을 받아들이라는 명쾌한 해답. 목적과 수단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는 말씀.
그래, 다시 해보는 거야. 이렇게 나를 찾아주는 고마운 사람이 있으니.
회사에 출근을 했다. 역시나 정신이 없구나. 자료를 찾고, VCR을 만들고, 녹화 준비를 한다. 절대 택시를 타고 귀가를 하지 않겠다는 다짐은 하루아침에 눈 녹듯 사라졌지만, 나는 만족한다.
녹화를 잘 마무리 한 월요일 저녁. 선배가 쭈뼛대며, 나에게 다가온다. 오늘 저녁 시간이 되냐고 묻는 선배. 아 싸하다. 부조를 벗어나 술을 마시러 가는 길. 나는 비보를 듣게 된다.
“황제야, 이번 주까지 출근해야 할 것 같아... 너무 미안하다...”
마음이 시리다. 이번 제안으로 프리랜서가 된 나는 한순간에 사라져야 할 대상이 되었다. 미친 듯 웃는 나. 차라리 화를 내라는 선배. 선배님... 저는 화가 나면 웃음이 나요...
내가 싫다. 제안을 받아들인 나도 싫고, 옛정으로 시작과 동시에 계약서를 쓰지 않아, 신고조차 하지 못하는 이 상황을 초래한 내가 싫다. 그렇다고 신고를 할 시간과 비용 그리고 마음 쓰임을 들일 힘도 없는 내가 싫다. 인사팀의 지시인지 사장의 지시인지 구체적으로 알려고 들지 않는 내가 싫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나. 지금의 상황을 알게 된 주변 사람들이 하나 둘, 연락을 해 와 욕을 한다. 돈을 쓰면 에너지가 샘솟듯, 욕을 하니 에너지가 조금씩 샘솟는다. 그래 이 정도면 됐다. 더 이상 어떤 온도의 변화를 느끼지 못하는, 코팅된 상태의 내가 된 느낌. 마치 면역이 생긴 것처럼.
프리랜서란 무엇일까. 제대로 된 인간적인 예의를 받지 못하고,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는 그런 것일까? 마음이 얼얼하다. 마취 크림을 바른 것처럼. 수면 위를 둥둥 떠다니는 것 같다.
기회에는 비용이 따르는 법이겠지.
두둥실 떠다니며, 다가올 기회를 맞이하면 될 뿐이겠지.
그뿐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