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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성 Mar 26. 2019

급똥의 추억

아주머니는 천사

여러 가지 악재가 겹쳤었다.
차와 아내를 내던지고 달렸다.
김포공항.

분명 그곳은
들어가자마자 바로 오른쪽에 있었는데..

공사 중이었다.

좌향 좌해서 150미터를 달려야 하는 상황.

그러나 전력질주를 할 수는 없었다.
자칫 대퇴사두근에 힘이 과하게 들어가
힘겹게 조이고 있는 괄약근이
풀어지면 낭패다.
조금이라도 열리면 바로 쏟아질 기세였다.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종종걸음을 치던 중
전화가 울렸다. 발신자는 아내.
아니 왜 이 급한 상황에.

알면서.

차 키가 어딨냐고 한다.
발레파킹을 맡기고는
키를 갖고 뛰었던 것.
몹쓸 놈의 스마트키.

도착하니
줄을 서있다.
네 곳 모두 만석을 알리는 등이 켜져 있고

아, 나는 지금 일보직전인데.

내 앞사람은 비교적 여유 있는 태도로
짝다리를 짚고 있었고

청소 아주머니는 세면대 앞에서
대걸레를 잡고 있었다.

나의 기다림이
가장 긴급함은 분명했다.

심각한 아이디어가 든다.
여차하면 바지를 내리고
소변기에 싸야겠다는.
바지에 쌀 수는 없잖은가.

아주머니가 내 눈빛을 읽은 듯했다.

대걸레로 바닥을 훑으며
4번 칸으로 가더니
문을 두드린다.

"계세요, 계세요?"
아무 응답이 없다.

그녀와 나는 눈빛을 교환했다.
내 눈에서 처절한 희망을 느꼈으리라.

"열어볼까요?"
내가 허락의 주체가 될 수 없음에도
아줌마는 그걸 내게 물었다.
세상에 이보다 더 큰 공감이 어디 있으랴.

그녀는 바지 호주머니에서
마스터키로 보이는 것을 꺼내
구멍에 꽂고 좌우로 세 번을 돌렸다.

그 찰칵 소리까지 선명하게 기억난다.

"아까부터 기다려도 나오질 않더라고"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빈칸이었다..

대기열에서 다리를 꼬고 있던 나는
미끄러지듯 4번 칸으로 들어가
한치의 실수도 없이 바지를 내렸다.

문 앞으로 대걸레의 움직임이 보였다.

그쪽 공기와 안의 공기가 섞이지 않도록
나는 그것이 물에 떨어질 때마다
즉시 물을 내렸다. 총 세 번.

손을 씻을 때 아주머니가 다시 들어오셨다.

"그렇게 안에서 문이 잠길 때도 있나 봐요?"
나는 특유의 저음으로 따듯하게 말을 건넸다.

"그러게 말이에요. 지난번에는 그렇게 두드리다가 열었는데 사람이 앉아있더라고요. 미안해서 혼났네요."

아주머니가 나를 위해
다시 용기를 내어주신 것이다.

따듯한 대화 몇 마디가 더 오갔다.

오늘 또 천사를 만났다.

훈훈한 인사를 나누고
다시 뛰었다.
아내에게로.


아시아나 비행기에서
아름다운 사람들 어쩌구저쩌구 한다.
그 청소 아주머니가 진짜 아름다운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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