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난 제대로 일기를 써두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기억이 나는 건 감정뿐이라 해독할 방법을 못 찾고 아파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매일 일기를 쓰지 않은 어린 인생선배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그는 지금의 나보다 더한 무력감을 느끼며 살았을 테니까. 그에겐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것'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었을지도 모른다. 모르는 것투성이다..
글을 시작하기 위해 정말 많은 우연이 필요했다. 중학교 때부터 막연하게 작가가 되고 싶다고만 생각해 왔던(꿈꿨다기엔 내 노력이 너무 소소해서) 나는, 늘 첫 문장이 어려웠고 첫 문장 다음 부분도 상상이 안 됐다. 경험해보지 못한 일들을 써내는 것이 힘들었다. 그렇다고 에세이를 쓰기에는 나란 존재가 너무 아무 일이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내 이야기를 궁금해하겠어?'
한번 스스로 회의감으로 둘러싸인 상자에 들어가 앉아보니 다시 일어서서 나올 엄두가 안 났다. 좋은 상자인 것도 아닌데 찢어질까 봐 두려웠다.
그러다가 누군가 우연히 '내가 내 글의 첫 독자'라는 말을 했고, 불면증에 시달릴 때 도움이 됐던 유튜버님이 브런치 글을 쓰신 걸 읽게 됐다. 지금까지의 겉모습으로는 알지 못했던 이야기였다. 그분만 가지고 있지만 아예 다르다고는 할 수 없는 이야기.. 일종의 고백이었다. 나의 첫 독자가 될 나에게 하는 고백이었고, 주변에서 지켜보던 타인 1로서 그것이 정말 홀가분해 보였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래, 약속된 독자 한 명이 있다.
얼마나 시원할까, 버리지 못하고 썩어가는 대로 방치했던 '그 방'을 청소한다면.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가 그랬듯 누군가에게 버릴 용기를 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