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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coAzim Feb 28. 2024

병동에서

안녕하세요? big5 병원의 종양내과에서 일하는 전문의입니다. 오늘은 주사실은 잠잠한데 병동진료가 어렵네요. 환자 한 분이 장파열이 생겨서 응급수술을 했습니다. 혈액검사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사실 지금이 오후 8시이니 당직에게 맡기고 가도 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걱정이 되니 여기까지만 보고 혈액검사에 맞추어 수액오더를 추가로 내고 가려고 합니다. 응급수술을 바로 잡아서 재빠르게 조치해준 외과 선생님, 혈액검사가 엉망인 환자인데도 군말없이 받아주시고 무사히 수술을 할 수 있게 도와주신 마취과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수술을 보내기 위해 해야 하는 검사인 동맥혈검사를 자그마치 24년만에 해보았습니다 2001년 인턴때 한게 마지막인데.. 이정도야 그래도 하는데 더 어려운 술기는 어찌할지 걱정이 되네요.

수술을 하는 동안 혈압이 떨어져 승압제를 달았다는 연락을 받고 가슴이 철렁하였습니다. 그래도 오후에는 제가 외래진료가 없어서 계속 상황을 보며 처리할 수 있었다는 것도 너무 다행입니다. 수술을 해도 앞으로의 치료가 산 넘어 산이고 얼마나 회복될 지도 장담을 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입원진료를 하는 의사로서의 일이 그렇습니다. 그냥 하루 하루 넘기는 것이 목적인 나날이지요.

오늘까지는 전공의가 당직을 서 주는 날입니다. 내일 새벽 6시면 우리병원의 내과에서는 모든 전공의가 사라집니다. 진정한 공포의 날이 시작되는 거죠. 그래도 그동안 입원환자는 거의 절반으로 줄여놓았고, 평상시같으면 전공의 1-2명이 하룻밤에 보는 100명정도의 환자를 25-30명정도씩 나눠서 하루에 4명의 교수가 당직을 서는데도 잘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습니다.

3월의 당직표를 짰습니다. 하룻밤에 여러 사람이 당직을 서다보니 과에 교수가 꽤 많은데도 한달에 당직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동안 여러 사람의 의견을 조율하느라 고생을 좀 했습니다. 당직 서기도 전에 당직표 짜다가 기운이 다 빠져버렸습니다.


내일까지 복귀를 명령했다는 정부의 발표는 막상 현장에서는 힘이 없습니다. 아마 사법처리 또는 면허 취소 등의 으름장으로는 그들을 돌아오게 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정부가 이 문제를 다시 논의하겠다는 전향적인 태도를 보여주지 않는 한 변화는 아마 없지 않을까 합니다.

전공의들이 너무 강성이라는 비판도 있는 것 같습니다만 대다수의 전공의들은 강성이라기보다는 포기하고 있는 상태에서 별다른 대화의 의지를 보이고 있지 않습니다.  번아웃이 집단적으로 아주 갑작스럽고 심하게 와서 단체로 무기력상태에 있다고나 할까요. 그게 많은 의사들이 말하는, 저마다 분노에 가득차 있던 2020년의 파업과 다른 점입니다. 지금의 전공의 선생님들은 (저도 개인적으로 만나지는 못하고 톡을 몇번 주고받은 것이 다이며 그 외엔 언론 인터뷰를 하는 몇몇 선생님들을 봤을 뿐입니다) 그 어떤 감정의 표현도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2000년의 파업과도 다른 점입니다. 그 때는 적어도 환자를 떠나는 것에 대한 윤리적 갈등에 괴로워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몇몇 기독교인들은 의약분업찬반과 관계없이 생명을 중시하는 윤리를 저버릴 수 없다며 병원에 남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논쟁 자체가 없습니다. 저는 중환자실과 응급실에서까지 철수한 것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만, 시기가 2월이 아니었다면 그런 일까지 벌어지지는 않았을 것 같기도 합니다. 사직이라는 카드와 맞물리면서 일어나버린 일입니다. 그들은 의사라는 직을 유지하려는 생각을 붙잡고 있다면 이래도 되는 것인가 고민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생각 자체가 없는 상황에서는 무의미한 일이지요.

2000명 증원이라는 것이 그토록 큰 절망과 분노를 가져오는 것에 대해 도통 이해를 못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사실은 저 역시 그렇습니다. 저도 기성세대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교수님들도 나서달라"는 일부 전공의 선생님들의 말씀에 저는 찬성하지 않습니다. 물론 중재의 노력은 교수협의회가 다해야 하겠지만, 환자를 두고 나서는 극단의 조치에 가담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정부의 부당하고 무모한 정책에 대한 반발과 저항이 곧 환자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것이 되는 이 양날의 칼날을 적어도 저는 쉽사리 잡지 못하겠습니다.


교수들은 전공의들이 들어올 것을 당장은 전혀 기대하고 있지 않고, 2000년 의약분업 파업 당시 수준의 길고 긴 의료공백을 예상하며 준비하고 있습니다. 기존에 보던 환자들은 봐야 하겠지만, 새로 병을 진단받아 치료받는 환자들은 전공의가 없는 중소병원에서 하여야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암 진단을 받아도 big5에서는 치료가 어렵다는 말이지요. 한편으로는 그럼으로써 본의아니게 의료전달체계가 자리를 잡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이것은 보건복지부 차관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동안 환자의 혈액검사결과가 나왔습니다. 수액처방을 마무리하고 이제 집에 가야죠.  너무 힘든 시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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