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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coAzim Apr 14. 2024

모두가 싫어하는 노동, 입원진료  

병동 당직을 선 지 두달째, 4월 들어서 세 번째 당직이다. 
당직을 설 때마다 입원진료라는 일의 성격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의대교수들은 입원진료에 개입은 하지만 최소한이다. 하루 회진 1-2회가 전부. 환자 상태의 변화에 대한 보고를 받고 즉각적인 조치를 하는 것은 모두 전공의의 일이다. 병동 환자의 주치의를 맡는 것, 그리고 당직을 서는 일은 전공의 중에서도 가장 하부, 즉 1-2년차 전공의에게 집중되어 있다. 사실 3년차까지 당직을 골고루 서면 주 80시간, 주 24시간 이상 휴게시간이라는 전공의법을 지키는 것은 무리가 없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는다. 3년차는월 1-회 당직을 서고, 2년차는 주말당직을 서지 않는다. 1년차에게 일이 몰리면서 종종 전공의법을 준수할 수 없는 당직표가 나오지만 모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간다. 

그 일이 하루아침에 교수의 일이 되어버렸다. 

교수가 환자에게 직접 동의서를 받거나 콧줄을 넣거나 흉수를 빼는 일, 응급실 콜을 직접 받고 오더를 넣는 일을 우리는 좀처럼 상상하지 못했다. 이제 퇴원하셔야 한다고, 집으로 가기 어려우시면 장기요양이 가능한 다른 병원을 안내해드리겠다고 환자와 가족을 설득하는 일 역시 그렇다. 그런 '허드렛일'은 젊은 사람들이 '해드려야 한다'는 관념이 뿌리깊게 박혀있다. 
대다수의 교수들은 회진 때 전공의의 보고와 시중(!)을 받는 일에 익숙해져있어서 입원진료를 본인이 관리해야 하는 일로 여기지 않는다. 물론 이 비상시국에 이런 '허드렛일'을 전혀 안하는 이는 없다. 그러나 종종 과거의 관성에 따라 본인 환자인데도 어떻게 되겠지 하고 제대로 챙기지 않는 모습들이 종종 나타난다. 

진료과에 따라 다르지만 교수의 일은 외래진료, 그리고 (주로 elective인) 수술, 시술, 항암치료, 이런 것들을 결정하고 직접 시행하는 일, 그리고 그 외의 환자돌봄에 해당하는 '허드렛일'은 전공의와 전임의의 몫으로 분업화되어 있다. 이 분업은 의사사회의 위계질서에 따라 배분된 것이고, 후자는 야간당직, 장시간 근무, 응급상황을 포함하는 일이라 좀처럼 위계질서를 넘어 위로 올라가는 법이 거의 없었다 (물론 지방의 많은 병원에서는 이미 올라가 있다) 전공의가 없는 상황에서는 조교수, 전임강사급 젊은 교수들이 더 많은 짐을 짊어지게 되었고, 이들의 피로감과 정신건강도 날로 악화하고 있다. 


'허드렛일'을 하는 입원전담전문의라는 직군이 등장했을 때 많은 희망을 걸지는 않았다. 이 일을 나이들어서도 평생 하려는 사람이 누가 있을 것인가. 전공의들은 "입원전담전문의를 고용해서 전공의 업무를 줄여야 한다"고 말은 하지만 "네가 전문의자격 취득하고 입원전담전문의를 하면 어떠니"하고 물어보면 잠잠하다. 그나마 CP(critical pathway: 표준진료지침)에 따라 돌아가는 외과병동은 입원전담전문의 구하기가 상대적으론 어렵지 않지만, 환자 상태가 저마다 제각각이고 동반질환도 많으며 약제도 복잡한 내과, 특히 중증환자가 많은 분과는 입원전담전문의를 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다. 

'허드렛일' 싫어하는 건 간호사들도 마찬가지다. 3교대를 피하기 위해 외래나 지원부서 상근직, 연구간호사, CRO, 건보공단, 심평원 등의 대안을 끊임없이 탐색한다. 어쨌든 입원의료가 의사나 간호사 모두에게 젊음을 갈아넣는 대신 career의 upgrade를 위한 leverage일 뿐인 것은 마찬가지다. 이 일을 평생 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다. 

젊은 의료진들이 점점 줄어갈 (의사 2000명 늘린다고는 하지만 그대로 될 리는 만무할 것 같다. 일단 인구가 줄고 있다) 미래에 급격한 고령화로 '허드렛일'에 대한 수요는 늘어갈 것이다.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결국은 나이든 사람들도 참여하여 나눠서 조금씩 하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하는 것이 내 생각이다. 위계질서를 거슬러서 배분해야 하는 것이다. 아무도 하고 싶어하지 않지만 중요한 일을 공동체가 처리하는 방식은 병역 같이 "모두의 의무"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니까. 

그래도 전공의들이 들어오면 그래도 한달에 1-2회 정도면 되지 않을까.  그 정도면 얼추 견딜 수는 있을 것 같다고 마음을 정리하는 중이다. 이젠 입원진료에 좀 익숙해졌기도 했고. 이제 더 이상 "착취의 중간관리자"로서의 지위는 지속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정의롭지도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문제는 보수와 노동강도다. 지금의 보상체계로 입원진료를 이어가기는 어렵다. 인구 1000명당 병상수는 우리나라가 12.8개, OECD 평균의 4.3개의 2.9배라고 한다.  전공의를 착취하여  OECD 평균의 2.9배에 달하는 병상을 운영해 온 것은 왜 아무도 문제삼지 않는가. 국민들은 저렴한 비용에 입원할 수 있고, 병원은 많은 병상을 운영하여 수익을 낼 수 있고, 국가는 의료접근성을 향상시켜서 좋고,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의료이용량이 과다한 것은 의사 수가 적은 것 만큼이나 문제다. 지속가능하지 않고, 누군가는 착취당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전자는 줄이고, 후자는 늘리되, 적절한 중간지점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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