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서울시내 대학병원 종양내과에서 항암제처방을 하고 있는 의사이자 완화의료센터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귀사의 아래 기사가 심각한 오해에서 비롯되었음을 말씀드리고자 메일을 드립니다.
https://v.daum.net/v/20240422101840725
1. 기사제목에 대하여.
해당기사는 기사 제목부터 전혀 말이 되지 않습니다. 말기암환자에게 호스피스병동 제안을 하는 것은 지극히 합당한 의사결정이며 의학적으로도 타당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최악'이라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귀사의 기자분은 말기암의 정의에 대해 잘 모르시는것 같은데 말기질환의 정의는 <연명의료결정법> 제 2조 3항에 의거하여 다음과 같습니다.
“말기환자(末期患者)”란 적극적인 치료에도 불구하고 근원적인 회복의 가능성이 없고 점차 증상이 악화되어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절차와 기준에 따라 담당의사와 해당 분야의 전문의 1명으로부터 수개월 이내에 사망할 것으로 예상되는 진단을 받은 환자를 말한다.
또한 같은 법 제 2조 6항에서는 아래와 같이 호스피스 진료가 말기환자로 진단받은 환자의 안녕을 위해 제공하는 진료임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호스피스ㆍ완화의료”(이하 “호스피스”라 한다)란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질환으로 말기환자로 진단을 받은 환자 또는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이하 “호스피스대상환자”라 한다)와 그 가족에게 통증과 증상의 완화 등을 포함한 신체적, 심리사회적, 영적 영역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와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의료를 말한다.
본원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암 환자를 진료하는 대학병원에서는 위와 같은 정의에 따라 말기암을 진단하고 호스피스진료를 권유드리고 있음을 말씀드립니다. 일반적으로 암질환에서 말기암진단은 더 이상 유효한 항암화학요법의 대안이 없을 경우 , 또는 전신상태가 쇠약하여 항암치료를 더 이상 받을 수 없다고 판단되는경우에 내려지게 됩니다.
2. 4기암 환자에게 항암치료를 과소처방한다는 주장에 대하여
최희승 한국중증질환연합회 간사의 말을 인용하여 아래와 같이 보도하셨습니다.
"4기 이상 암 환자도 대학병원에서 항암 치료 방법을 제안하는 게 관례였다. 그는 "더 이상 치료가 의미 없는 분들도 계시지만 상당수 환자들은 짧게는 몇 달 혹은 4~5년 정도 사는 분들도 계신다. 이것은 가족, 환자 본인에게 상당히 의미 있는 치료 과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전공의 집단 사직 이후에는 대학병원에서 바로 호스피스 병동을 제안한다고 한다. 한 대학병원에서는 항암 중 뼈로 전이된 환자에게 호스피스 병동을 알아보고 더 이상 내원은 하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
이 문장을 보면 마치 대학병원에서 4기암환자들을 항암치료를 하지 않고 호스피스병원으로 내모는 것 같이 묘사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대학병원에서 4기암 환자들에 대한 항암치료는 대부분 외래에서 진행되고 있기에 전공의 파업과 무관하게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교수들이 입원진료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입원항암치료도 대부분 차질없이 소화하고 있습니다. 항암치료가 도움이 되고 기대여명을 연장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의사들은 처방을 주저하지 않습니다. 다만 매우 쇠약하거나 치료효과가 제한적일 것으로 판단되는 경우가 문제가 됩니다. 이 때 많은 환자들은 치료에 대한 막연한 믿음 때문에 지속하기를 원하나, 의사 입장에서는 객관적으로 상황을 판단할 때 오히려 환자에게 해로울 수 있기 때문에 치료를 받지 않고 호스피스로 가시도록 권유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일부 환자들이 병원과 의사가 나를 내치고 버린다는 느낌을 받게 되시는 것은 송구하지만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치료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갈등과 오해를 환자 측 말씀만 듣고 기사로 작성하시는 것은 매우 부당하다고 사료됩니다.
전공의 파업 이후 이러한 말기상태에서의 항암치료를 교수들이 줄이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왜냐면 이전에는 환자와 깊이 상의할 시간과 여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연명의료결정에 대한 인식이 교수들에게 부족하기도 했었습니다. 말기상태에서의 고통스러운 의사소통을 대부분 전공의들이 맡아서 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전공의가 하던 일을 교수가 맡아서 하게 되면서 말기에 응급실을 찾고 입원하여 항암제나 인공호흡기치료, 투석 등의 고통스러운 치료를 이어가는 것이 과연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지에 대한 고민도 전공의가 아니라 교수의 몫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전보다 좀더 일찍 항암치료를 중단하고 호스피스 진료를 선택하도록 권유를 드리는 경향이 생겼고, 이것은 현장에서는 오히려 긍정적인 변화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환자들이 받아들이시기 어려운 점들은 이해하지만, 이러한 결정에 대해 이해하고 불필요한 치료를 중단하고 가족들과 함께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려는 환자들도 많이 있습니다.
3. 말기암환자에서의 항암치료가 가지는 의학적, 사회적 영향
귀사의 기사 제목을 그렇게 붙인 것은 '말기암 환자는 항암치료를 해야지 호스피스를 권유하는 것이 비윤리적이다'라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라 판단됩니다. 일반인이라면 몰라도 기자분이 그러한 인식을 가지시는 것은 심히 유감입니다. 그러나 이미 외국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말기암에서의 항암치료는 환자와 가족의 고통을 가중시키며 의료비를 상승시키는 요인으로 지목되어 보건정책에서 이를 줄이고자 애쓰고 있는 상황입니다. 미국 임상종양학회 (ASCO)및 의료의 질 포럼 (NQF)에서는 임종 14일 이내의 항암치료는 나쁜 질 지표로 삼아 가급적 줄이고자 애쓰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심사평가원에서도 위암, 유방암, 간암, 대장암 등 여러 암종에서의 진료의 질을 평가하는 적정성평가에서 " 말기 암 환자의 과도한 치료를 지양하고 편안한 임종을 준비하는 등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임종 30일 전에 항암치료를 했는지를 평가하고 있습니다.
기자님도 아시다시피 우리나라의 의료비 상승속도는 매우 빠릅니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언론기사가 지적하고 있으므로 제가 별도로 자료를 인용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이것이 과연 고령화 그 자체 때문만일까요? 여러 요인이 있을 것이고 질병종류마다 그 원인도 다양하겠지만, 적어도 암 질환에서는 말기암환자에서의 과도한 항암치료, 저조한 호스피스 이용률이 그 이유의 상당수를 차지할 것입니다. 많은 환자들이 임종에 가까워서 평소보다 훨씬 많은 의료비를 지출하고 사망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끝까지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환자들은 항암치료, 중환자실 치료, 각종 시술, 항생제, 수혈 등을 소진하고 대학병원에서 사망합니다. 이러한 비경제적, 무가치한 의료행태를 바꾸기 위해 현장에서는 이제까지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습니다. 그러나 귀사의 몰이해에 기반한 기사로 인해 현장 의료진의 좌절과 실망은 매우 크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