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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coAzim Apr 26. 2024

사직, 휴진 하지 않습니다


아침에 어제 입원한 환자분에게 회진을 겸하여 조직검사 동의서를 받으러 갔습니다. 


"선생님이 직접 동의서를 받으시네요? 전에 검사했을 땐 좀더 어린 분이 설명하시던데... "


"전공의선생님들이 없으니까요..." 


"그 5월 초에 병원 쉰다던데 맞나요?" 


"네 저는 사직서 안냈고 휴진도 안합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네. 저는 사직서를 내지 않았습니다. 교수비대위는 사직서 제출을 결의하였으나 제출여부는 교수 개인의 결정에 따른다는 것이 공식적인 결정사항입니다.  


교수비대위는 하루 휴진을 권고하지만 그것도 역시 진료과와 교수 개인의 판단에 맡긴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휴진을 하지 않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저희 과 교수님들 대부분은 휴진을 할 계획이 없습니다. 5월 1일, 5월 6일이 모두 휴일인데 그러면 5월 초 종양내과 외래진료실은 아수라장이 되기 때문이지요. 항암치료는 2주, 3주 주기로 보통 투여되기 때문에 연휴시즌 전후해서는 미어터지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여기다 하루를 더 쉰다면.... 게다가 겨우 1주일밖에 안남았는데 그 연락은 누가 다 한단 말입니까. 의사들은 원래 이런 책임질 수 없고 현실적이지 않은 일을 벌이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물론 분노와 좌절이 그렇게 몰아갔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당직은 이젠 할 만은 합니다. (이것은 개인차가 있습니다. 저는 입원환자가 하루 1-5명정도로 저희 과에서는 적은 편입니다. 반면 10-20명 이상 입원환자를 보는 분들은 아직 많이 힘드시죠) 다른 일들을 많이 줄였기 때문입니다. 연구도, 교육도, 모두 올 스톱입니다. 미뤄둔 논문은  써야 하는데. 새로운 환자를 거의 받지 않은 지 두 달이 지나니 외래 환자 수도 점점 줄어듭니다. 병원에 오지 못한 환자들은 어떻게 치료받고 있을지 궁금하지만 그것까지 헤아려볼 마음의 여유는 사실 없습니다. 아무튼 정상적인 상황이 아닌 것은 분명하지만 어떻게든 현장에서는 적응을 하고 있습니다. 기존 환자들만이라도 어떻게든 진료하는 시스템은 유지는 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사직이나 휴진을 하지 않는 것이 정부의 정책에 동조해서는 아닙니다. 저는 정부가 처음 내놓은 방안에도 찬성하지 않고 현재의 상황을 처리하는 방식도 낙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환자들을 불안에 빠뜨려서 정부를 몰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도저히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사직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의사로서 일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사직은 자유입니다. 다만 환자들에 대한 미안함은 충분히 표현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나몰라라 하는 태도가 아니라요.


물론 저도 힘듭니다. 무엇보다 가족들을 돌볼 수가 없죠. 중학교 1학년 딸아이가 학교에서 피구를 하다가 손가락을 다쳤는데 저는 아프면 부루펜 먹으라는 말 밖에는 해줄 수가 없었습니다. 오늘은 아이 혼자 근처 정형외과에 가서 부목을 하고 왔다고 합니다. 그래도 그정도는 아이 혼자 할 수 있으니 다행입니다. 더 어린 아기들을 키우는 교수들은 많이 힘들어합니다. 그런 분들은 사직하겠다고 하여도 뭐라 할 말이 없을 것 같은데, 정작 이런 분들은 이제 막  교수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하신 분들이라 사직이 쉽지 않습니다. 


오늘은 4월의 마지막 당직날입니다. 5월까지는 안 넘어가길 바랬는데 이 사태가 풀릴 기미는 아직 전혀 보이지 않네요. 최근 드라마를 좋아하는 딸아이와 '슬의생'을 정주행했습니다. 이전에는 낯간지러워서 못 보았던 드라마입니다. 사람들이 의사에게 바라는 환상이 압축되어 있더군요. 의사들은 너무나 착하고 잘생겼고 날씬하고 얼굴에 그늘이 없으며 늘 웃고 상냥하고 예쁘게 말하고 모두 벤츠를 탑니다. 저는 늘 피곤하고 우울한 표정에 성의없는 말투로 말하고 배가 나와 있고 아반떼를 타죠. 


사람들이 의사를 비난하는 이유는 이러한 환상과 실제 의사들이 동떨어져있기 때문일 겁니다. 국무총리가 '의사선생님들이 환자의 곁을 지켜주실 것이라 믿는다'고 말하는 이유도 그러한 환상에 부합하게 일하라는 압력처럼 느껴집니다. 사실 저는 방송에서 그 말을 듣고 잠시 그만두고 싶기는 했었습니다. 


대부분의 의사들은 그런 환상에 부합할 수도 없고 하려 들지도 않습니다. 일단 환자를 생각하는 것은 애틋한 인류애도 착한 심성의 발로도 아닌 그냥 이 일의 관성입니다. 다만 그 관성이 깨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그것이 사직도 휴진도 하지 못하는 이유라고 해 두죠. 그게 '환자가 눈에 밟혀서'라는 환상으로 포장되어도 나쁠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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