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 때 전투기 조종사였던 제임스 설터는 산문”머리는 차갑게“에서 전투기 고장으로 추락하여 죽을뻔 했던 일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간신히 조종간을 고정하고 관제탑에 긴급상황으로 착륙허가를 구한다고 침착하게 말하고는 아마 그렇게 말한 스스로에게 경탄한 것 같다.
“ 내 목소리가 어떻게 들렸는지는 모르겠다. 유일한 기록인 내 기억 속에서는 사람들이 그래줬으면 하는 만큼은 침착했다…..(중략)…… 사람들은 냉정을 유지하도록 훈련을 받았다. 그것은 목표, 실은 필수 요건이었다. 겁을 먹은 상태에서 부정확하게 내용을 전달하면 통신 체계를 어지럽힐 수 있다. 혼란을 전파할 수 있는 것이다. 극도의 냉정함은 엄청난 찬사를 받았다. 그것은 담대함, 능력, 절제를 뜻했다. 사건 이후, 가끔은 불과 몇 시간 뒤 억눌려있던 두려움이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었다….”
비교하기에 멋적기는 하지만 나는 얼마 전 환자에게 시술을 하며 그런 느낌이 들었다. 당장 환자의 목숨이 위급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마음은 급했다. 오늘을 넘기면 진단이 늦어져 혹시나 파국적인 상황이 될 수도 있었다. 원래는 전공의가 하는 시술이지만 전공의들이 모두 나간 지금 내가 아니면 할 사람이 없었다. 그 시술은 2020년 전공의 파업 때 한번 해보았고, 그 전에는 내가 전공의 1-2년차 때 해보았기 때문에 거의 20년 이상 거의 손댄 적이 없는 일이었다. 사실은 좀처럼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제임스 설터처럼 나는 남들이 그래줬으면 하는 만큼 침착하게 시술을 했고 한 번에 성공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어떻게 그렇게 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전공의들이 막 나간 2월경에는 더 많은 일을 해야 했는데 지금 돌아보면 그 때도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다. 많은 의사들이 전공의 때를 돌아보며 하는 생각도 비슷하다. 그 일들을 내가 어떻게 다 했는지 모르겠다, 는 느낌. 훈련받은 극도의 냉정함은 많은 일을 해낼 수 있지만 그걸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미그기가 사격을 하면서 뒤에 따라붙으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가끔은 임무와 임무 사이에 뚜렷한 이유도 없이 두려움이 끓어올랐지만 이내 평범한 관심사에 자리를 내주곤 했다. 중요한 건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할 수 없었던-소수의-조종사들이 있었지만 나는 결코 이유를 묻지 않았다. 그들은 어찌 보자면 추방된 자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만의 악몽과 불면과 감춰놓은 수치와 더불어 살았다.”
위험한 시술이나 수술, 상태가 안좋은 환자, 시끄러운 모니터 알람, 이 가운데서도 놀랍도록 냉정해지는 이유는 하나다. 그렇지 않으면 할 수가 없으니까. 중요한 건 앞으로 계속 나아가는 것이니까. 사회가 할 일은 그들을 그 자리에 계속 놓아두는 것이다. 임무와 임무 사이에 온갖 잡스러운 생각에 마음을 빼앗기며 두려움에 빠지게 하지 않는 것이다.
전공의들이 나간 지 6개월이 흘렀다. 차갑게 유지되었어야 할 그들의 머리가 불확실한 미래와 사회에 대한 불신으로 두려움에 잠긴 채 나오지 못할까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