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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coAzim Nov 21. 2024

자본으로부터의 해방

<진료실 자본론> 전영웅, 2024, 청아출판사

제주여행을 갔다가 마침 사려고 했던 책을 선물받았다. 마침 만날 예정이던 친구가 저자분의 병원에서 수액주사를 맞고 있다고 하여 (감기에 수액주사를 맞는 것은 책에 나와 있듯이 이윤율을 높이기 위한 비급여 진료임...;;;) 병원을 방문하여 저자사인도 받아올 뻔 했는데, 호텔방에서 자고 있던 딸내미가 좀처럼 일어나지 않아  결국 시간을 맞추지 못했다.


진료공간과 설비라는 생산수단을 마련하고 자신을 포함한 의료인의 노동을 더해 잉여가치를 창출하는 자본가로서의  삶을 그린 이 책은, 여지껏 상급종합병원이라는 틀을 거의 벗어나 본 적이 없는 내가 처음 읽는, 상당히 생소하고도 생생한 개업분투기였다.

사실 대학병원 교수들 사이에선 요즘 '탈출'이 화두이자 트렌드다. 안과, 정형외과, 마취과, 영상의학과 등 개업이 가능하거나 봉직의로서의 임금수준이 높은 과는 이미 몇 명씩 사직하고 개원가로 나갔다. 개업이 어려운 종양내과 의사들마저도 힘든 당직부담에 술렁이는 분위기다. 나 역시 개원은 여지껏 생각해본 적이 없고 종합병원에서만 가능한 종양내과라는 전공이라 앞으로도 할 가능성은 거의 없긴 하지만, 그래도 가끔은 힘든 당직과 조직생활의 고단함에 지칠 때면 '확 나가버려?'라는 생각이 불뚝불뚝 솟아오르는 것이 사실이라 솔직히 실무적인 부분은 꽤 관심있게 읽었다.  


책을 다 읽고 난 지금은..

아이러니하게도 얼마 있지도 않았던 개업할 마음이 깨끗이 (!) 정리되었다.

개업하기도 어려운 전공이지만 이 병원을 나가더라도 개업은 안되겠다... 싶다.

이 나이에 나가서 페이닥터를 하기도 힘들고... (나이든 의사는 좀처럼 개원가에서 고용하지 않는다)

개업을 위해 가져야 할 자본가 될 마음 (내 성향 및 신념과 관계 없이), 각종 시술경험, 대출, 그리고 주말에도 쉬지 못하고 일해야 하는 점, 휴식시간에도 매출을 생각하며 불안한 마음 등등을 생각할 때 어떻게든 현직장에서 가능하면 오래 일해야겠다는 생각이 굳어졌다. 어차피 20년간 종합병원의 필수과 진료에만 익숙해진 몸, 만약 이곳을 나가게 되더라도 차라리 몸이 견뎌낼 수 있다면 병동이나 응급실 당직 알바를 하면서 어느 정도의 소득을 얻되 내 시간을 충분히 사용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한가지 교훈이라면 아내분이 간호조무사 자격증이 있어 개업에 도움이 되셨다니 , 혹시 모르니 남편에게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따도록 권유해볼까 싶기는 하다. ^^ 앞일은 어찌될 지 모르는거니까....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주인은 자본 그 자체라고 했다. 노동자는 자본가에게 착취를 당하고, 자본가는 자본을 굴려야만 하는 존재다. 결국 노동자든 자본가든, 자본 그 자체의 노예일 뿐이다. 노예가 생존을 위해 발버둥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자본주의 아래 놓인 개원의가 봉사와 희생보다는 병원을 열심히 경영해서 돈을 벌고 자본을 굴리려 노력하는 일은 너무도 당연하다. '돈만 밝히는 의사 나부랭이'라고 비난하는 이들이 되려 이상한 사람들이다. 이쯤 되면 우리는 한국 사회에서 의사의 모습이 왜 이렇게 왜곡되어 있는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자본주의라는 구조에서 비롯된 현상일 뿐이다. 의사 보편의 비뚤여진 이미지들... 그것은 의사 보편의 심성이 비뚤어져서가 아니다. 구조의 문제이다."


자본가로서의 고단함을 이야기하는 책을 읽으며 노동자로서의 나는 과연 자본가에게 대항력을 가지고 있는가를 생각해보게 된다.

사실 진료가 고단하면서도 한편으론 진료만 하는 삶이 나름 안락(!)하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는데, 쌓여있는 약품박스들, 중앙공급실의 분주함, 늘 어디엔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독과 청소와 수리를 보다보면 이 많은 것들을 어딘가에서 조정을 하고 비용이 계산되고 있겠지 헤아릴 때다. 생산수단을 관리하는 것을 하지는 않아도 되고 내 노동만 제공하면 되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사실 노동자가 자본가 생각을 해주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없다만...  

실제 내가 홀홀 단신으로 나가서 이 병원에서 일하는 만큼의 교환가치 및 내재가치를 생산할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솔직히 자신이 없다. 내 노동의 가치는 숙련된 간호팀, 많은 논의를 거쳐 마련된 진료프로토콜, 잘 조직된 보고체계가 아니면 충분히 발휘될 수 없는 것이니 말이다. (비행기를 탈 때 닥터콜이 날까봐 두려운 것도 이것 때문이다! 나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할 것 같다는 두려움...) 사실 이런 무형의 자원들도 결국은 생산수단인 셈인데, 이렇게 생산수단에 의존적인 노동을 하는 나 자신의 대항력은 어디에서 생길 것인가 싶어 무력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저자분 역시 외과의사로서의 삶을 접고 일반의로서 출발해야 했을 때 비슷한 자괴감을 느끼셨을 것 같다.  


책에서는 여러 번 다른 소상공인과 비교하여 의사가 그래도 우월한 위치에 있다는 언급을 빼먹지 않는다. 건강보험공단이 정한 가격의 서비스를 하며 시장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은 부당한 측면이 있지만, 그럼에도 독점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며 국가로부터 서비스의 댓가를 지불받는다는 것이 상대적으로 다른 소상공인에 비하면 보호받는 것일 수 있으니까. 그러나 적어도 생산수단의 구입과 유지 보수는 국가가 관리 또는 지원을 해야 의사들이 의료라는 노동의 본질에 집중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의사를 위해서가 아니라 서비스의 대상인 국민을 위해서. 의사가 자본가가 되면 투입된 자본과 이윤율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그만큼 의료는 왜곡됨을 피할 수 없으니 말이다. 그나마도 상급종합병원에서 개원가보다 과잉진료가 덜한 것은 의사가 자본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적어도 임대료 걱정이라도 덜도록 공공택지나 학교부지, 관공서나 복지관, 청소년회관 등의 일부를 일차의료를 하는 기피과 의사에게 진료공간으로 제공하는 방법은 어떨까. 또한 저자가 책에서 말하듯 방문진료를 의료기관에 소속된 의사 뿐만 아니라 의사 면허만 가지고도 참여할 수 있도록 개방하면 생산수단에 투자해야 하는 부담이 없어지니 참여율을 더 높일 수 있을 것이다. 2주에 한번 휴진을 하여 방문진료에 참여하고 있는 저자가 페이스북에 올리는 이야기를 종종 읽는데, 환자를 진료실 안이 아니라 바깥에서 만날 때 얼마나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이 많을지 생각해보게 된다. 고령화시대에 점차 그 수요와 역할이 늘어나게 될 방문진료에 국가의 투자와 관심이 필요하다..고 얘기하는 것이 이 의료붕괴의 시대에 얼마나 울림이 있겠느냐만 말이다.


아무튼 책을 읽고서는 노동해방...이 아니라 의사를 생산수단과 자본부터 해방시키는 것이 (전부는 아니라 일부라도) 의료를 바로잡는 데 중요하다는 내 나름의 결론을 내렸는데, 현실은 반대로 가고 있으니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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