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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io 시오 Jan 13. 2016

시작은 일렉트로닉

전자음의 매력에 눈뜬 초딩



지금이야 축적된 정보 속에서 이런 저런 음악을 다양하게 듣게 되었지만 꼬꼬마 시절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악착같이 노래를 '수집해서' 들었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허허. 가장 많이 듣던 음악들을 크게 두 장르로 나눈다면  일렉트로닉 그리고 소울음악. 그 중에서도 시작은 일렉트로닉이었다.




그 시작은 초등학교 2학년, 내가 9살이었던 그 해 명절이었다. 새해가 가까워지는 시점이었을 거다. 가수들이 텔레비전에 나와서 화려한 의상을 입고 춤추며 노래했고, 나는 친척들과 주전부리를 먹으며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하늘에서 새둥지 같은 걸 타고 이정현이 내려왔다.


이정현 '와', 1999


황금색 둥지에서 황금색 옷을 입고 내려와서는 강렬한 가사와 춤과 컨셉으로 노래하는 이정현은 나에게는 너무 충격이었다. 집에 와서도 내가 뭘 본거지... 하는 생각에 혼란스러워 했지만 그 노래가 더 듣고 싶었다. 얼마 뒤 우리 가족은 다른 도시로 가던 중 휴게소에 들렀고, 나는 거기서 인생 첫 카세트 테이프를 사게 된다. 나는 이정현, 동생은 량현량하.




이렇게 나는 테크노 키즈가 되...지는 않았다. 이정현을 시작으로 장나라, 박정현, 이수영, 빅마마, 그리고 브라운 아이드 소울(이 앨범은 나에게 또 다른 취향의 물꼬를 터 준다)의 테이프를 차례차례 사 모으면서 슬픈 음악을 듣고 또 들었다. 그렇게 5년이 흘러 흘러 중학생이 된 나는 또 한번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노래와 운명의 만남을 가지게 된다.




익숙한 전자음이지만 이정현처럼 거세지 않았고, 내가 좋아하는 단조 듬뿍 들어간 곡 진행에, 많은 사운드가 촘촘히 들어가 있어서 그림처럼 묘사가 섬세한 음악. 인터넷을 뒤져 알아보니 클래지콰이였다.  

클래지콰이 1집 , 2004

생각해보면 내가 노래 들을 때 가사를 못 듣게 된 건 클래지콰이의 영향이 크다. 멜로디를 둘러싼 많은 소리들을 하나 하나 뜯어 듣다 보면 가사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진다. 클래지콰이 1집은 클래식, 재즈, 팝, 보사노바 등 많은 장르를 일렉트로닉 안에 완성도 있게 담아 국내 음악계에 큰 의미가 있는 앨범이기도 하다. 더불어 나에게는 다양한 장르를 접하도록 격려해준 요정 할머니 같은 존재. 아직도 생각난다. 와 어떻게 이렇게 만들었지 하면서 덩실덩실 어깨를 들썩이던 중학교 1학년의 나.  


허밍어반 스테레오 <Baby Love> 2007, 캐스커 <Skylab> 2005, 롤러코스터 <Absolute> 2002


클래지콰이로 시작된 국내 일렉트로닉 음악에 대한 관심은 허밍어반 스테레오와 캐스커로 이어진다. 세 그룹 모두 크게는 일렉트로닉으로 분류되지만 겹치지 않는 각자의 색깔이 있었다. 나는 여기에서 노선을 살짜쿵 벗어나 전설의 밴드 롤러코스터로, 롤러코스터의 보컬 조원선을 타고 윤상으로 향하게 된다. 윤상이 2008년 내 놓은 <Song book>에 수록된 '넌 쉽게 말했지만' 이라는 곡은 조원선의 목소리로 녹음되었다. 이 곡을 듣고 나는 두 가지 느낌을 받았다. 조원선의 목소리는 정말로 처연하고, 윤상은 정말로 전자음을 사랑하는구나. 나중에 알았지만 윤상은 전자음악을 공부하기 위해 유학을 다녀오기도 했다.   


윤상의 노래를 들을 땐 베이스를 잘 들을 수 있도록 이어폰을ㅎㅎ



해외에는 더 많은 뮤지션들이 있었다. 클래지콰이는 일본의 시부야케이와 공통점이 많아 FPM, M-Flo, 몬도 그로소, 프리템포, 토와테이와 같은 뮤지션들의 음악을 좋아하게 되었다. 많은 시도 후에 정통 일렉트로닉 보다는 펑키나 재즈를 기반으로 한 전자음악을 좋아한다는 것도 알았고. 검정고시를 치고 난 후에는 비슷한 취향의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면서 다양한 국적의 음악들을 들었다.




유럽쪽 팝/락에 관심이 많던 한 오라버니는 너무나 유명한 다프트 펑크를 나에게 선물처럼 소개해 줬다. 유럽 아저씨들의 전자음악이라니. 뭐 그들의 매력이라고 하면 말할 것도 없다. 색깔이 분명한 그들의 음악은 로봇 헬멧에서 보여지는 이미지와도 일맥상통한다. 한때 그들이 더 이상 좋은 음악을 내지 못하는 건 아닐까 걱정한 적이 있다. 그냥 느낌이 그래서. 2013년에 낸 앨범의 타이틀인 Get Lucky를 들고서는 내가 괜한 걱정을 했다고 말할 수 있었다. 다프트펑크의 행보와는 무관하게 나의 일렉트로닉 사랑은 2010년 끝을 맺는다. 안 좋아해서가 아니라 더 좋아하는 것이 생기는 시점이었다.  



<참고>

* 클래지콰이에 대한 리뷰를 찾아보면 그 당시 충격받은 건 나 뿐만이 아니었던 것 같다. 이 그룹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서 링크.  

* 롤러코스터가 어떻게 인디음악의 장을 열었는지 궁금하다면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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