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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io 시오 Jan 02. 2019

소리 대신 공기

우리의 '함께'를 기억하는 방법

하루 일과 중 마음이 꽉 막히고 답답할 때면 응급처치로 기분 좋았던 순간들을 떠올린다.

기억이라기엔 너무 작은 조각들인데, 머릿속 구석구석 저장되어있던 이 기억 파편들은 소리가 없는 경우가 많다. 함께 나눈 대화는 물론이고 옆에 있던 사람의 얼굴이 떠오르지도 않는다. 그저 눈 앞을 꽉 채운 조용한 풍경. 공기가 실어다 주는 온도. 그리고 거리를 두고 앉은 누군가의 존재가 어깨너머로 느껴질 뿐이다. 언제 어디였던 건지도 구분하기 어렵다. 그 담담한 순간을 무한 재생시켜놓고 마음속으로 음미하다 보면 그 공간에 있는 것처럼 하아, 숨이 쉬어질 뿐이다.


그렇지만 내 매일의 대부분은 누군가와의 대화로 채워진다. 직업도 그렇고 내 생활 패턴도 그렇고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많다. 내가 말이 많은 편이기도 하고, 그와 나 사이에 무언가 오고 감을 확인해야 안심하게 된다. 관계란 모름지기 서로 주고받아야 하니까. 관계를 위해 가장 쉽고 빠르게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은 '말' 같았다. 이것이 대화에 대한 갈망 또는 강박으로 이어진다. 허전함을 참지 못하고 사이 빈 공간에 꽉 꽉 채워 넣는다. 초조할 틈도 없지만 숨 쉴 틈도 없다.


기분 좋았던 순간들을 다시 떠올려 보자. 그 짧은 조각들은 소리가 없다. 두 눈 가득 채우는 풍경이 있다. 화로 위 노릇해지는 주먹밥이 있고, 일렁이는 바닷가에 몸을 담근 몽돌이 있다. 토요일 오후 언덕 너머에서 내려오는 햇살에 부서져 앉는 먼지도 있다. 그리고 그 잔잔한 순간을 함께하는 누군가의 존재가 공기를 채운다. 눈을 바라보는 것도 아니고, 몇 마디 주고받지도 않는다. 그런데 공기가 우리의 함께함으로 가득 채워진다. 당신과 나 사이에 바람이 불지 않는 걸 보니 꽉 들어차 있나 보다. 따뜻하다.


우리가 말을 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 내가 나의 모습으로 담담히 당신의 옆을 걷는 것. 당신이 온전히 당신으로 내 옆에 앉아있어 준다는 것. 서로의 존재를 어깨 너머로 느낄 수 있다는 것. 때로는 낯설고, 때로는 익숙한 상대의 공기를 음미한다는 것. 마음이 울려서 고막까지 찌르르 한 내 천국의 순간. 기억이라 불리기엔 짧을지 몰라도 나를 숨 쉬게 하는 데에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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