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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민 Jun 04. 2022

<나의 해방일지>

박해영 세계관의 평행이론

<나의 아저씨> 이은 해방의 메시지


박해영의 드라마는 두터운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다. 박해영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16년작 <또 오해영>부터다. 당시 <또 오해영>은 ‘역대급 로코’라는 찬사를 받으며 2005년 김삼순 열풍에 버금가는 신드롬을 일으켰다. 30대 여성들의 사랑과 애환을 고스란히 담으며 많은 여성들의 공감대를 불러일으켰다. 특히 연기자 서현진의 재발견으로, 이후 서현진은 '연기 잘하는 믿고 보는 배우'라는 수식어를 얻게 되었다.


이후 비슷한 로코물(로맨틱 코메디물)을 가지고 나올 것 같던 박해영은 장르의 변형을 가져왔다. 우리 사회의 어두운 일면을 내밀하게 분석해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 군상들의 이야기를 그려내었다. 2018년작 <나의 아저씨>는 현재까지 많은 이들의 ‘인생 드라마’로 손꼽히는 드라마 중 하나이다. 특히 <나의 아저씨>를 통해 '박해영 세계관'이라는 말이 만들어졌는데, 이는 극중 인물들이 깊은 어둠 속에서 평온과 안식의 길로 나아가는 방법에 주목하는 것이다.


<나의 아저씨>는 그 해 ‘백상예술대상’에 7개 부문 노미네이트되고, 작품상, 극본상을 수상하는 등 박해영 커리어의 정점을 찍게 했다. 드라마의 색깔이 시종일관 어둡고 스산하지만, 드라마가 완결되고 나면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뜨거운 전율이 올라온다.


박해영 작가는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여과없이 그려낸다. <나의 아저씨>에서는 대기업 파견직으로 근무하는 이지안을 통해 소외를 이야기함과 동시에 사채와 대부업자라는 범죄 소재를 활용했다. <나의 해방일지>에서도 마찬가지다. 서울살이를 갈망하는 경기도 산포시의 삼남매가 겪는 차별과 대중에게는 생소한 호스트바의 세계까지 상세히 보여줬다.


대중들이 불편할 수 있지만 호기심이 가는 소재를 활용하고, 인물들의 내면을 치밀하게 파헤쳐 직업이나 배경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색깔을 보여준다. 한 인간의 진짜 이야기를 통해 현실은 치열한 어둠이지만 종국에는 평온, 평화, 해방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 박해영 드라마의 참맛이다.


무엇으로부터의 해방일까


<나의 해방일지>도 타이틀에서 이미 느낄 수 있듯, 지겹고 어두운 삶으로부터의 ‘해방’을 논하고 있다. 극중 인물 대부분은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 채 방황하는 인물들이다.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일상이 얼핏 가장 평온해 보이지만 마음은 늘 방황이다. 미스테리한 인물 구씨는 쳇바퀴 같은 일상을 틈입한 외지인이다. 얼핏 해방된 듯한 모양새인데, 매일 마시는 소주 두 병이 아직 해방되지 못한 그의 심경을 대변한다. 결국, 그들 모두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해방’이다. 해방이 무엇인지, 무엇으로부터의 해방인지 그들도 모른다. 그저 이 모든 지겨운 것들로부터 해방되고 싶다.


염창희(이민기 분)에게 해방은 설사를 해버리고 싶은 마음, 그리고 오래 참은 설사를 하고 나면 찾아오는 그 시원함 같은 것이다. 염미정(김지원 분)은 한번도 채워지지 않은 자신을 사랑이 아닌 ‘추앙’을 통해 가득 채우고 싶다. 누구나 쉽게 쓰고 버리는 사랑이 아닌 추앙을 받고 싶다. 염미정은 구씨를 통해 이 가득 채워짐을 맛보고, 여느 다른 “개새끼(염미정이 표현한 옛 남친들)”들과는 다른 편안함을 느낀다.


술에 중독되어 맨정신으로 살아가기 어려운 구씨는 염미정을 통해 여러  건져 올려진다. 염미정의 외침 “내려!!” 의해 우연히 당미역에 내려서 목숨을 구한다거나, 화법도, 생각도, 취향도 무채색인 염미정에 의해 평온을 느낀다. 구씨는 맨정신에 우루루 몰려오는 기억속 인간들로부터의 해방, 하지만 순간의 해방이 아닌 영원한 해방을 꿈꾼다. 그것을 매개하는 사람이 염미정이고 둘은 서로를 망가지지 않게 붙잡아주며 함께 해방을 도모한다.


500원짜리 동전처럼, 우리에게도


솔직히 드라마의 서사 자체가 그리 친절하지는 않다. 해방을 향해 나아가는 주인공들의 여정에 기승전결이 없다. 그려지는 시간도 때론 앞뒤가 맞지 않거나, 판타지적이다. 갑작스런 구씨의 멀리뛰기가 그렇고, 염제호의 트럭 추격신이 그렇다. 하지만 이 모든 행위들은 각자의 생각과 방식으로 해방을 향한 첫걸음을 내딛는 행위들이다. 이러한 판타지적 행위 뒤에는 반드시 주인공들이 육체적으로나 심적으로 큰 변화를 맞이하기 때문이다.


<나의 해방일지>는 사실 거창한 엔딩도, 완벽한 해방도 없다. 등장인물 모두 앞으로 어떻게 1. 행복한 척하지 않을지, 2. 불행한척 하지 않을지, 3. 정직하게 볼지 모색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게 그 모습 그대로 어디선가 살아가고 있을 것 같다. 구씨는 굴러가는 500원짜리 동전이 바닥으로 완전히 떨어지지 않고 아슬아슬하게 걸려있는 모습처럼, 또 그렇게 삶의 새로운 변화를 예고했다.


작은 배역 하나하나에도 살아 숨 쉬는 캐릭터성을 선사했다는 점에서, 이번 <나의 해방일지>도 박해영 작가의 진면목이 강하게 드러난 드라마임이 분명해 보인다. 한편의 문학작품을 본 듯 꾹꾹 눌러 담은 대사들이 진한 여운을 남긴다. 드라마는 끝났지만, 추앙신드롬, 구씨앓이는 한동안 계속될 것 같다.


https://www.thecolumnist.kr/news/articleView.html?idxno=10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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