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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백수 Mar 26. 2016

#11 흑수의 휴일

백수의 하루는 오후 3시에 시작된다

 이번 화의 제목은 '흑수의 휴일'로 줄여 적었지만, 사실 '흑수의 휴일도 오후 3시에 시작된다'라고 적고 싶었다. 제목만 봐도 추측 가능하겠지만, 작가는 이미 취업에 성공해 흑수가 되어버렸다. '~해 버렸다'라는 표현은 일반적으로 유감을 나타낼 때 쓰는 표현이라고 하는데, 정확하게 그 뜻으로 쓴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조금 후회하고 있다. 일본에서 일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만으로 취업을 결정해버린 것이다. 업무 내용이나 내 적성, 장래성 등 고려해야할 많은 부분을 간과하고, '일본에서 일할 수 있다'라는 생각만으로 결정을 내린 것이다. '취업난'이라는 주어진 상황을 너무 의식한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 그렇게 열심히 취업활동을 하지도 않았으니, 취업난이라는 말을 쓸 자격도 없다고 생각한다.


 자조적인 일기 비슷하게 내용이 흘러가고 있지만, 사실은 본인의 이야기를 통해 교훈을 주고 싶었다. 한국에서 취업이 힘든 건 사실이다. 매년 쏟아져 나오는 졸업생들과 그동안 취직이 결정되지 못해 취업 준비생으로 지냈던 사람들은 대체로 굉장한 스펙을 가지고 있다. 갈 수록 그 스펙은 높아져 갈 것이다. 그리고 그 만큼 이상도 높아져 갈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기업들이 보여주는 현실은 그 이상을 충족시켜주지 못한다. 경제가 그리 좋지 않아 기업들은 고용을 늘리기가 여전히 부담스럽고, 구직자들의 최저 임금과 기대 임금 수준도 오르고 있다. 시장 경제 원리에 의해서 공급이 수요보다 많으면 가격이 내려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노동력 시장은 조금 특수한 양상을 보인다. 취업이 안 되니까 더 열심히 스펙을 쌓고 대학원이나 유학을 선택하기도 하기 때문에, 희망 연봉은 오히려 올라간다. 결과적으로 '거래가 성립되지 않는' 상태가 지속되는 것이다.


 예전에 청년실업이 '남얘기'였을 때, '다들 좋은 직장만 가려고 하니까 그런 현상이 생기는 거 아닌가? 조금만 눈을 낮추면 일할 곳은 충분히 있을 텐데...'라는 생각을 했었다. 아마 청년실업이 남얘기인 다른 사람들 중에는 여전히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취준생의 입장에서는 지금까지 해온 자신의 노력, 주위 사람들의 기대, 꿈꿔오던 미래 같은 걸 다 집어던지고 현실과 타협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나 역시 그랬고, 경쟁을 강요하는 교육속에서 자란 수많은 대한민국의 청년들 역시 대부분 '패배'보다는 '취준생'을 택할 것이다(물론 조건이 안 좋은 직장에 취직하는 것이 패배라는 말은 아니다. 단지 무한경쟁체제에 익숙해져 있는 청년들은 그걸 패배라고 느낄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하기 바란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뭘까. 일자리를 창출하지 않는 정부를 비난하는 것? 헬조선대한민국에 태어난 자신을 저주하는 것? 아니면, 재산과 빽으로 자신을 좋은 자리에 앉혀주지 못 하는 부모님을 원망하는 것?

 사실, 우리 백수로서는 로또밖에 답이 없다. 언어적 능력이 된다면 필자처럼 해외 취업은 생각해볼 만한 일이지만, 그게 답은 아니다. 결국 인내와 노력을 통해 바늘구멍을 통과하거나, 좋은 날이 오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다만, 이 글을 읽고 있는 다른 백수들은 필자처럼 '현실과 타협'을 너무 쉽게 생각하지는 않아줬으면 좋겠다. 백수로 있는 기간은 괴롭기도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자신을 돌아볼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어려서부터 시험 성적으로 모든 걸 평가받고 대학 이름과 좋은 직장에 목숨 걸며, 승리하지 않으면 패배자가 되는 '경쟁구도' 속에서 그걸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살아온 것은 아닌지, 자신이 지원하고 있는 직장이 정말로 자신의 꿈과 미래와 연결되는지(혹시 대학교에 입학하고 자신의 학교/전공 선택에 후회한 경험이 있다면 특히), 그 일이 주위 사람들의 평가가 아닌 스스로를 만족시키는 일인지에 대해 다시 한번 신중하게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혹시 잘 모르겠다면, 그냥 종이 한 장을 꺼내들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 최대한 많이 적어보기 바란다. 그 다음에는 자신이 잘하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원하는 회사에 입사하면 하게 될 일에 대해서. 그러고 나면 생각이 좀 더 확실해지거나, 혹은 생각이 바뀔 수도 있다.




인생을 시니컬하게 바라본 백수의 이야기.

40만 백수가 공감한 '백수의 하루는 오후 3시에 시작된다' 절찬리 연재중!

다음 편을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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