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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백수 Aug 01. 2016

#14 컴백수

백수의 하루는 오후3시에 시작된다

 백수가 됐다.

그토록 기다리던 백수 복귀가 꿈처럼 찾아왔다.

이백수라는 필명으로 백수를 위한 글을 써오던 내가 백수를 탈출한 건 올해(2016년) 1월 말. 일본으로 넘어와서 약 일주일 정도 머문 뒤 바로 일을 시작했다. 마린스포츠를 주로 하는 회사이지만, 그 당시는 겨울이었기에 웨일워칭이라고 혹등고래를 보러 다니는 투어를 진행하고 있었다. 첫 출근부터 심한 배멀미와 중심잡고 서있기도 힘든 상태에서 손님을 보살펴야 하는 업무가 무척 힘들게 느껴졌고, 버티고 버티다가 결국 웨일워칭이 끝나는 4월 초에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결국 나는 설득당하고 여름시즌이 끝날 때까지 일을 해보기로 했다.


 4월이 되어 여름시즌이 시작되었고, 마린스포츠 업무는 생각보다 즐거웠다. 그리고 생각보다 많이 힘들었다. 웨일워칭 때에는 주로 스트레스 때문에 힘들었던 것에 비해, 마린스포츠는 육체적 노동이 상당했다. 스쿠버다이빙에 사용하는 공기통을 양손에 하나씩 들고 수십개씩 옮겨야 하기도 했고, 물을 머금은 웨트수트나 박스 가득히 들어찬 오리발을 들고 옮기다 보면 허리가 부러질 것 같았다.


 결국 나는 다시 6월 말까지 일하고 그만두겠다고 말했지만, 나 말고 다른 한국인 스태프가 개인 사정으로 한국에 돌아가 있었고 우리 회사는 한국 회사와 전세 계약을 맺고 있었기 때문에 결국 그만두지 못하고, 전세 계약이 끝나는 9월 말까지 일하기로 했다.


 그러나 전세 계약이 시작되고 나니, 나는 거의 휴일없이 일해야 했고, 퇴근이 늦어지는 일도 많아졌다. 견디기 힘들다고 느끼기 시작할 무렵, 한국에 돌아갔던 한국인 스태프가 돌아왔고, 나는 다시한번 그만두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더이상 붙잡을 수 없었는지 회사측에서도 7월 말까지 일하고 그만두는 걸로 이야기가 되었다.


니가 제일 잘해...


 사실 내가 그리 일을 잘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내가 가진 능력(한국어, 일본어, 영어, 컴퓨터 활용 능력 등등)은 다른 사람들이 따라올 수가 없었기에 회사에서는 계속 나를 붙잡으려 했다. 월급을 올려주겠다, 근무 조건을 조정해주겠다, 사무실에라도 남아있어달라는 제안까지 받았지만 이미 그만두기로 결심한 나는 그만둘 수 있을 때 그만두자는 마음에 냉정하게 거절했다.


 그리고 오늘이 찾아왔다.


 백수 복귀하고 맞이한 첫날. 아침겸 점심을 오후 2시에 먹으면서 '백수의 하루는 오후 3시에 시작된다'는 말을 되새기고, 그래도 한 시간 일찍 시작했으니 난 성공한거라며 파워긍정을 시전했다. 평소처럼 그냥 외출하려다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선크림도 바르고, 향수도 뿌렸다. 가까운 쇼핑몰에 가는 동안 '수영 못하는 손님을 끌고다녀야 하니까 다리를 아껴야한다'며 되도록 외출도 하지 않았던 지난 날이 옛날 일처럼 느껴졌고, 시간에 쫓기지 않고 느긋하게 여기저기 돌아다닐 수 있어 행복했다.


 무엇보다 행복한 건, 내일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나의 첫 취업은 반년만에 실패로 막을 내렸다. 이력서에 '경력'으로 적을 수도 없고(아마 앞으로는 전혀 관련없는 일을 하게 될 테니), 돈을 많이 번 것도 아니고, 무언가 특별한 기술 같은 걸 배운 것도 아니다. 단지 얻은 거라곤 실패가 주는 교훈. 직업을 고를 때에는 마트에서 아이스크림 고르듯이 고르면 안 된다는 것. 너무 이상을 높게 잡는 것도 안 좋지만, 너무 눈을 낮춰버리는 것도 안 좋다는 것. 이 회사에서 나는 필요이상으로 많은 능력을 가지고 있었고, 정작 필요로 하는 능력은 부족했고, 그렇기에 업무 시간이나 급여 등에 불만이 생기게 되고, 그만두는 데에 전혀 거리낄 것이 없었다.


 이제 나는 다시 백수로 돌아왔으니, 다시 백수의 입장에서 백수를 위한 글을 쓸 수 있게 됐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교훈을 전하고자 한다.


 '실패로부터 배우기 전에 그냥 배우고 실패는 아껴둬라'


나는 실패를 겪었지만, 이 글을 읽고 있는 백수들은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




인생을 시니컬하게 바라본 백수의 이야기.

40만 백수가 공감한 '백수의 하루는 오후 3시에 시작된다' 절찬리 연재중!

다음 편을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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