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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백수 Nov 11. 2016

#15 이발

백수의 하루는 오후 3시에 시작된다

 "머리 좀 깎아라"

 최근들어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일본에서 일을 그만둔 뒤 '곧 한국에 갈 거니까...'라는 생각에 머리를 깎지 않고 길렀고

한국에 와서는 귀찮아서 이런 저런 핑계로 머리 깎는 걸 미루고 있다 보니,

어느새 머리가 덥수룩하게 자라버린 것이다.


요즘은 외출할 일이 별로 없다보니, 머리는 커녕 수염도 안 깎고 그대로 방치하기 일쑤였고,

오히려 길어버린 머리와 수염때문에 밖에 나가는 걸 더 기피하게 되어버리기까지 했다.


머리를 깎기 전, 흉측한 모습

 어느날 같이 식사를 하던 아버지께서 '왜 거지같이 하고 있냐'라는 말을 하기도 하셨고

위에 있는 사진을 카톡으로 받아본 친구는 '집에서 표류하고 있냐'고 묻기까지 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남자들이 머리를 짧고 단정하게 자르는 게 유행하고 있기 때문에

긴 머리로 돌아다니면 가끔 여자로 오해받기도 한다.

특히 시외버스 터미널 같은 공공장소에서 (남자) 화장실에 무심코 들어갔다가

당혹스러운 눈빛으로 어쩔줄 몰라하는 무고한 희생자를 발생시키기도 했다.


요즘은 친구와 필리핀에 여행가기로 한 날이 점점 다가오면서 이제 진짜 머리를 깎아야 한다는

압박감이 점점 커져 왔고, 마침 한국에 돌아와서 아직 한번도 못 본 친구가 시간이 났다며

같이 보자고 연락이 왔길래 드디어 머리를 깎기로 결심했다.


'내일 깎아라', '지금 가고 있으니 머리 깎지 말고 기다려라' 라는 등의

방해공작(?)이 있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머리를 깎고야 말았다!


머리를 깎고 난 후, 여전히 흉측한 모습


머리를 깎고 집에 오니 형이 '진짜 딴 사람 같다'고 했고,

방에서 컴퓨터를 하고 있는데, 외출하셨던 어머니께서 들어오시더니

'누구세요?' 하고 묻기도 했다.


머리를 깎고 나서 느끼는 게, 머리가 길었을 때는 죄지은 것도 없는데 괜히 부끄럽고

외출하기도 꺼려지고 사람 만나는 것도, 집에 손님이 오는 것도 싫었었는데

머리를 깎고 나니 근거없는 자신감이 생기고 마인드도 긍정적으로 변한것 같다.


백수가 되면 도서관이나 학원같은 데에 다니지 않는 이상, 집에만 있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면 필자처럼 평소에는 씻지도 않고, 머리도 안 깎고 수염도 안 깎고

스스로에 대한 관리를 소홀히 하게 되기 쉽다.


돈을 쓰는 게 부담스럽고 친구가 없어서 혼자 외출하기 싫을 수도 있겠지만,

되도록이면 이런저런 핑계를 만들어서 외출을 하도록 하자.

평일 오전에는 사람이 많지 않으니, 이 꿀같은 시간을 적극 활용해서

영화를 보러 가거나 운동을 하는 것도 좋다.


명심하라, 평일 오전은 백수의 특권이다.






인생을 시니컬하게 바라본 백수의 이야기.

40만 백수가 공감한 '백수의 하루는 오후 3시에 시작된다' 절찬리 연재중!

다음 편을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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