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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백수 Sep 29. 2015

#5 자극

백수의 하루는 오후 3시에 시작된다

 모 포털 사이트의 지식 in 서비스에 '백수'로 검색해보면 수많은 백수들이 자신의 처지를 한심하게 여기고, 탈출할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쳇바퀴 같은 일상을 벗어나기 위한 '자극'을 필요로 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필자는 전공이 교육과 관련된 탓에, '자극'이란 단어를 들으면 '전기 자극'같은 단어를 떠올려버린다. 아마 교육심리라는 과목의 영향이 큰 것 같다. 흔히 '조건 반사'를 설명할 때 자주 인용되는 실험을 예로 들어보자. 개의 목구멍을 따서 침샘에 호스를 연결해놓고(어떻게 이런 잔인한 실험을 기획했을까) 밥 주기 전에 종을 딸랑딸랑 친 뒤 밥을 먹이면, 나중에는 밥을 주지 않고 종만 딸랑딸랑 쳐도(굉장히 잔인한 실험이다) 개가 침을 질질 흘리더라는 '파블로프의 개 실험' 같은 거 말이다. 이 때 종을 딸랑딸랑 치는 걸 '조건자극'이라고 했던 것 같다.


파블로프의 개 실험. 필자를 묶어놓고 실험하더라도 결과가 크게 달라지진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무조건 반사를 설명할 때에도 '자극'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피실험자를 의자에 묶어놓고 망치로 무릎을 가격하면 2단 옆차기를 구사한다는 내용의 실험에서 '망치로 무릎을 가격하는'행위를 자극으로 본다.


 필자가 '자극'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전기 자극'이라는 말을 떠올린 건, 아마도 전기 충격과 관련된 실험이 많았기 때문인 것 같다. 쥐가 버튼을 눌렀을 때 전기 자극이 가해지도록 하는 실험(벌에 의한 조건 형성을 설명하며 언급된 실험이다), 학생이 문제를 틀렸을 때 점차 높은 수준의 전기 자극을 가하도록 하는 실험(여기서 피실험자는 전기 자극을 주는 교사 역할을 한다. 학생이 전기 충격을 받는 것은 연기를 하는  것뿐이며, 학생이 죽을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피실험자가 연구원의 지시에 따라 버튼을 누르는지 누르기를 거부하는지를 확인하는 실험이다) 등 많은 실험에서 전기 자극을 사용했다.


 이쯤 되면 왜 작가가 백수주제에 유식한 척 하며  쓸데없는 지식들을 늘어놓는지 의문이 생길 것이다. 궁극적으로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다음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백수든 흑수든 일상이 지루하고 자극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목에 호스를 연결하여 밥을 줄 때마다 종을 흔들거나, 망치로 무릎을 가격하거나, 전기 충격을 가하라.

 분명 신선한 자극이 되겠지만, 본인에게도 유치장을 경험할 수 있는 신선한 자극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하자.


 인간은 본래 단순하고 반복적인 상황이 계속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느끼도록 만들어져 있다. 피시방에서 노래 한 곡을 무한반복으로 재생하는 사람이 있어, 그 사람에게 재떨이를 던진 원래 좋아하던 노래도 싫어하게 된 경험이 있을 것이다.


 물론 학생이나 직장인들도 똑같은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건 마찬가지겠지만, 낮과 밤, 평일과 주말의 구분조차 없는 백수의 경우에는  더욱더 그 상황을 벗어날 자극을 필요로 한다. 넘쳐 나는 게 시간인데 놀러도 가고 영화도 보고 운동도 하고 하고 싶은 거 다 하면 되지 않냐고 흑수들은 반발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침(혹은 오후 3시)에 눈뜰 때부터 잠들 때까지 모든 하루를 스스로 계획하고 많은 시간을 혼자 보내야 하는 백수에게 '넘쳐 나는 시간'은 단지 부담스러운 존재일 뿐이다.


자신의 상황을 벗어나고 싶다고 올라온 백수들의 글을 보면, 대체로 '외부에서의 자극'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백수에게 가슴이 설렐 만한 신선한 자극이 외부로부터 저절로 들어오기를 바라는 것은 마치 사과나무 밑에서 사과 f=ma의 속도로(맞나? 모르겠다. 이과 흥해라) 입에 떨어져주기를 기다리는 것과도 같다.


 백수 전문 컨설턴트 이백수(27세, 가명, 무직) 씨는 백수들이 새로운 자극이 필요하다고 말할 때, '도전'을 해볼 것을 권장한다. 그렇다고 콜라 1.5리터 코로 마시기 같은 기네스북에 오를 만한 도전을 하라는 말이 아니다. 실현 가능한 작은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라는 말이다. 예컨대 밤낮이 바뀐 백수의 경우, 밤에 일찍 자고 아침에 일어나 아침을 먹는 것에 도전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낮에 운동을 하거나 열심히 가사노동을 해 몸을 피곤하게 만든다는 부가적인 행동 목표도 세울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성취감이 생겨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이 높아지고 자신감도 생겨 백수를 탈출하는 시기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기억하자. 백수 생활은 '피니시 라인이 보이지 않는 마라톤'이라는 것을. 언제 끝날지 모르는 마라톤이기에 무작정 전력질주를 해서도, 그렇다고 막연하게 천천히 달려서도 안 된다. 결국 자기 자신과의 싸움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백수들은 항상 멘탈 관리에 신경을 써야 하고, '마라톤' 그 자체를 즐길 수 있어야 한다. 보이지 않는 피니시 라인만을 머릿속에 그리며 달리는 것이 아니라, 불어 오는 바람을 느끼고, 흐드러진 꽃 향기를 맡고, 새들의 노랫소리를 듣고, 멀리 보이는 풍경을 감상할 수 있어야 한다.


 21세기를 대표하는 백수 작가 이백수(27세, 가명, 무직) 씨가 남긴 명언이 있다.

백수는 욕하되, 백수인 자신은 욕하지 말라.



인생을 시니컬하게 바라본 백수의 이야기.

40만 백수가 공감한 '백수의 하루는 오후 3시에 시작된다' 절찬리 연재 중!

다음 편을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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