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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션샤인 Nov 02.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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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시작이 존재하는 새로운 우주, 2020. 11. 16에 쓴 글

쇼트커트, 귓볼을 한가득 메운 피어싱이며 귀걸이... 가녀린 눈매와 몸매를 가진 여성이 말을 걸어온다.


" 혹시 글쓰기 모임...? "


2018년 5월, 13년 동안의 조직 생활을 접고 반 백수 생활을 하면서 평일에 한번, 주말에 한번 글쓰기 모임을 시작했다. 모임 공지를 전문적으로 올리는 카페에 글쓰기 모임 참여 공지 올렸다. 작가도 아니고 관련 업계에 있는 사람도 아니고, 글쓰기와 관련해서 내세울 게 없는 운영장 혼자 하는 모임..." 글쓰기 이 좋은 시간". 세련되고 핫한 모임명을 짓고 싶었으나 쉽지 않았다. 이런 어설픈 모임에 누가 같이 쓰러 올까 싶어서 카페 공지에 댓글이 달렸는지, 공지에 시비 거리가 있지는 않은지 카페를 들락날락하며 마음을 졸였다.


평화롭고 무료했던 백수의 오후, 드디어 딱 1명의 신청자가 생겼다. 그녀였다. 나의 시작을 열어준 고마운 그녀. 외모만 보아도 그녀는 나와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을 것 같았다. 그녀와 글을 써야 한다. 자유로운 것 같은데 자유롭지 않아 보이고 예쁜데 슬픈 느낌이랄까? 그녀의 첫인상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녀는 간호사였고 직장에서 힘든 일들을 겪고 퇴사한 다음날이었다고 했다.


다음엔 남성분 혼자 글 모임을 신청했다. 그는 나보다 3살이 어렸다. 이상한 사람이 나오면 어쩌나. 어색하지는 않을까. 걱정을 하며 사람들이 북적이는 카페로 자리를 잡았다. 약간의 위압감이 느껴지는 인상이긴 했지만 겪을수록 귀엽고 친절한 분이었고, 품행이 방정 한 문학도였다. 모임을 할 때마다 SF 소설을 한편씩 토해내는 괴력의 글 솜씨의 가지고 있는 분이기도 했다.


두세 달이 지나면서 모임이 활기를 띠게 되었다. 많게는 9명 정도가 모였다. 모임의 절차를 고심하기도 했는데 글을 쓰는 순서를 생각하며 몇 차례 다듬었다. 공통된 화두를 가지고 서로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그 가운데 아이디어도 떠올리고 생각의 갈피를 잡는다. 글을 쓰되 30분 안에 쓴다. 쓰는 시간을 몇 분으로 할지가 가장 고민되었던 것 같다. 약간의 긴장감을 즐기면서 어떻게든 글을 마무리하기에 30분은 짧지 않은 시간인지 알게 되었다. 글쓰기를 마무리한 후 각자의 글을 낭독한다. 스스로 퇴고가 되는 시간이다. 낭독한 글을 듣고 글에 대한 피드백도 하고 궁금한 것도 묻는 소통의 시간을 갖는다.


글쓰기 모임의 화두를 매번 정해갔다. 밥 먹다가 문득 스친 생각들, 책 보다가 좋은 구절에서 건져 올린 단어, 관계에 이상이 생겼을 때 고민했던 이슈... 누군가와 연결된 삶 속에서 소소하지만 내밀한 사유의 단어들을 끌어올려 덩그러니 내려놓았다. 때로는 좋은 시와 함께 좋은 글과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와 함께. 직업도 다르고 사는 환경도 다른 우리는 30분 동안 글을 완성한다는 목표로 테이블 위에 올려진 화두를 함께 요리했다. 아무 이해도 없고, 강요도 없는 편안한 거리 안에서 우리는 글로 솔직했고, 또 솔직했다. 글로 서로를 위로했고, 또 위로했다. 이상해 보이거나 낯선 글이라도 좋은 점을 찾아냈고, 타인과 타인의 글에서 배울 점을 알아차리기 위해 애썼다. 잘못된 글도 잘못된 사람도 없다. 다듬어지지 않을 일상과 글이 있을 뿐.


누구나 흔들린다. 글 쓰는 사람들은 중심을 잡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었다. 30분의 행복한 정적이 흐르고 나면 테이블엔 푸짐하게 한 상 차려져 있었다. 자신만의 색깔과 모양으로 버무려진 글을 내어 놓는다. 같은 화두를 각자의 삶에 녹여서 다른 주제로 만들어낸다. 각자의 목소리로 마음을 표현했다. 떨리기도 했고, 덤덤하기도 했고, 슬프기도 했다. 말하는 것과 글을 읽는 것의 간격을 느꼈다. 배우 같았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무대에 귀 기울이고 다가갔다. 서로의 요리 덕택에 스스로 건강해질 힘들 얻는다. 이 시간만큼은 조금씩 마음이 밝아졌다. 선샤인 글쓰기로 이름을 바꾸게 된 이유다.


내게 글쓰기 모임은 시작의 시작이다. 모임을 시작한 후로 다양한 시작이 생겼다. 스타트업 CEO가 되었고, 새로운 지역에서 살게 되었다. 자전거를 다시 타고 있다. 이 중 가장 나를 설레게 하는 건 글쓰기로 만나는 인연들의 시작을 지켜보는 일이다. 그들은 새로운 직장을 잡고, 이직을 하고, 사업을 시작했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고, 작가로 등단을 했다. 글벗들의 시작이 나의 시작이 되고 있다.


시작이라는 화두 앞에서 글쓰기 모임의 끝을 생각한다. 글쓰기 모임은 매회마다 화두가 다르고 참여하는 사람들도 바뀐다. 어쩌다 화두를 반복해도 참여자가 달라지면 전혀 다른 분위기의 모임이 된다. 수많은 시작이 존재하는 새로운 우주다. 함께 쓰는 걸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어느 그룹에서 쓰느냐의 이슈지 마약처럼 함께 쓰는 시간과 공간을 찾게 될 것이다. 큰 결심 없이 220회가 넘게 글쓰기 모임을 이어오고 있다.


시작은 있으나 끝이 없는 행복한 미로에 빠져버렸다.



불특정 다수의 분들을 모집해가며 약 300번 정도 글쓰기를 하고, 최근 CEO의 글쓰기를 개설했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함께하시죠 ^^ (상세 내용은 링크를 참고해주세요)


https://naver.me/GwpJEH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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