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씩, 하나씩

출장지에서 문득

by 션샤인

나는 정리를 잘하는 사람으로 태어났다고 한다. 동의를 못하겠다. 책상, 차, 옷장의 상태를 떠올리면 정리를 잘하는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정리를 잘한다는 것도 상당히 주관적인 판단이긴 하지만.


나는 많이 치우쳐 있는 사람이다. 집중하는 분야가 확실하다. 좋아하거나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이 드는 순간 관심이 꺼져버린다. 이러한 자기 이해의 관점에서 나를 들여다보니, 나는 정리를 잘하는 사람이 맞는 듯하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영역에 한해서다.


물건 정리의 대부분은 내가 이해하는 수준에서만 하고, 여력이 되면 크게 한 번씩 정리를 한다. 그때 구조를 완전히 바꾸거나 대청소 느낌이 나게 한다. 주기도 들쭉날쭉하다. 반면 사람, 마음, 생각 정리는 복잡해지는 상태를 못 견딘다. 정리도 주기적으로 잘한다. 물건 정리할 때 수납장에 정리하고 비슷한 옷색끼리 정리하는 것처럼 나름의 규칙도 있고, 방법도 존재해서 흩어진 상태의 생각이 거의 없다. 정리력이 보이지 않은 분야로 치우쳐져 있는 것이다.


관계, 철학, 생각 이렇게 보이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매우 신중한 편인데, 물건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 보니 필요한 물건을 안 사고 버틴다거나 꽂히는 물건을 집중에서 구매할 때가 있다. 마음이나 생각, 사람은 버리기가 힘든데 물건에는 미련이 없다. 이 안에는 눈에 보이는 재화도 포함된다. 어쩌면 그래서 기부에도 망설임이 없는 건지도 모르겠다.


지금 이 내용을 쓰면서 무척이나 흐뭇하다. 시원하다. 이 또한 생각 정리의 일환이므로. 나는 물건보다 보이지 않은 것들을 정리할 때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 같다. 물건을 정리한 후에 느끼는 상쾌함보다 각종 상념들, 아이디어들, 부정적이고 긍정적인 생각들을 정리하고 난 후 느끼는 쾌적함을 훨씬 더 크게 느낀다.


이러한 특성이 좋은 점은 정리 안 된 환경을 비교적 잘 견디는 것이다. 참고로 더러운 것과 정리는 다르다. 더러운 건 되레 그때그때 없애는 편이다.(책상의 물건을 정리하는 것과 화장실 변기 청소의 차이) 정리 잘 못하는 사람도 그 상태가 너무 오래 가지만 않으면 받아들이는 편이다. 정리 잘하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다기보다는 정리를 잘 못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궁금해한다. 잔소리하고 구박하는 타입일까, 혹은 정리를 해주는 사람일까. 가까운 사람의 경우 나 대신 정리해 주기를 바라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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