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그 안에서 가장 자유로웠는지도 몰라.
눈을 떴다. 뜨고 있다. 물속이었다.
물속에서 나는 몸도 눈도 떠 있다. 사지를 움직이고 있었다.
설마, 아마도 나는 무언가를 극복한 것이리라.
기적이다.
나는 이미 수영하는 법을 알아야만 하는 사람이었다.
탯줄 하나에 의지해 어머니의 양수 안에서 헤엄치고 있던 존재.
어릴 적 놀러 간 섬에서 깊은 바다에 빠질 뻔한 기억으로부터
나는 물을 무서워하는 아이가 되었다.
존재의 시작을 함께하며 나를 지켜주던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두려움은 물로 시작되었다.
두려움을 두려워하는 어른이 되어 버렸다.
눈앞에 바다를 두고 언제나 무섭다는 감각을 먼저 하게 된다.
수영 강습을 시도해도 진진 없이 실패한다. 열의도 열심도 없는 습관적 행위로써의 수영 배우기.
극복하려는 의지 없이, 누구나 하는 수영에 대한 열등감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몸부림 정도랄까.
나는 진전 없는 물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난다.
수영을 좋아하는 사람을 사랑하게 되면서부터다.
함께 하고 싶은 마음에 억지로 만들어낸 작은 용기가 그 시작이었다.
살금살금 들어간 낮은 물에서 즐거운 기억을 만든 후 더 이상 물을 무섭게만 보지 않게 된다.
수영을 제대로 배우는 노력 대신 물속에서도 숨을 쉴 수 있는 장비를 마련한다.
수영 그 자체가 아닌 수영을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하기를 생각하게 되면서부터, 나는 물과 연관된 모든 것에서 자유로워지고 있다. 실내 수영장에서는 수영하는 사람에게서 방법을 배우고, 실외 수영장에서는 못생겨지는 장비를 챙겨 어설프게 수영을 한다. 내 인생 목표는 수영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물을 즐기는 것이니까.
마침내, 물속에서 눈을 뜨고, 자유롭게 유영하며, 태고의 나와 그 우주를 품었던 존재를 생각하는 날이 오고야 말았다. '이것이야말로 성공한 인생이 아닌가' 하는 10년에 한 번 들까 말까 한 쓸데 없고 쓸모 있는 생각을 했다.
인생의 두려움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나만의 방식으로 두렵지 않은 것이 되게 만드는 것이 - 진짜 원하는 인생의 전개이므로.
나를 물의 두려움으로부터 꺼내 준 그녀. 그녀는 여전히 내 옆에서 해맑다.
나의 뱃속을 유영하던 그녀는 나의 수영 선생이 되었다.
보란 듯, 인생의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선생님이 되었다.
사랑. 사랑으로.